애 셋 엄마가 애 셋을 키우며 스스로에게 하는 말
"엄맘, 엄맘마, 엄마? 아빠?"
오전 7시 15분. 틀림없는 셋째 딸 목소리다.
생후 18개월을 넘어서며 할 수 있는 말들이 많아졌지만 아침 첫마디만큼은 언제나 동일하다. 일주일에 한두 번은 엄마를 울며 부르짖지만, 대부분의 날들은 자기 목소리가 얼마나 청명한지 확인이라도 하듯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엄마 아빠를 부른다. 아이 덕분에 예쁜 아침을 맞는다.
아이를 번쩍 들어 올려 둥개둥개 흔들어 주다가 아빠에게로 토스하고 나서 다시 아이들 등교 및 등원 준비를 시작한다. 빛의 속도로 식구들을 집 밖으로 환송하고 나면 몇 시간이나마 혼자가 되어 나의 하루를 시작한다. 다른 사람과의 교류도 너무 좋지만, 혼자만의 시간도 너무 좋은 나는 대부분은 혼자서 외출도 하고 집콕도 하고 분주하게 떼굴거리며 하루를 보낸다. 낯선 지역으로 이사 온 지 두 달째에 접어들었지만 아직 동네 친구를 사귀지 못한 것도 나 홀로 생활을 지속하는 데 한몫한다.
아이들의 이쁨을 보며 아침에 충전받은 에너지는 오후 대여섯 시가 되면 방전 위기를 맞는다. 아이들을 통해 받은 에너지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아이들을 돌보며 빠르게 소진되는 것도 이 에너지다. 저녁 식사를 끝내고 나면 이미 몸과 마음은 녹초가 되어 아이들에게 이런저런 잔소리를 늘어놓기 시작한다. 학교에 다녀와서 벗어둔 가방이며 옷가지, 그리고 어질러 놓은 책과 장난감 등이 그 시간이 되어서야 내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오자마자 막둥이를 안아 주느라 거실에서 가방을 휘리릭 던져놓은 남편도 그제야 내 눈치를 살핀다. 정리를 해가며 아이들이 해야 할 공부를 챙기고, 오늘 하지 못한 일들에 대한 아쉬움과 후회와 원망 같은 것들이 한꺼번에 몰려온다. 가족들은 오늘 하루도 그저 최선을 다해 살아내고 집으로 돌아왔을 뿐인데, 엄마와 아내의 기준에서는 아직도 할 일이 많고 아직도 고쳐야 할 것들이 태산이다. 어떤 날은 내 눈을 감고 스윽 넘어가기도 하지만, 실은 그러지 못하는 날들이 더 많다. 아이들이 모두 잠든 밤, 지루한 노래의 후렴구를 꾸역꾸역 찾아서 다시 또다시 부르듯 매일밤 하루치의 부끄러운 엄마노릇을 끄집어내 반성과 후회로 척척 버무리다 잠이 든다.
셋째 아이가 막 들어섰을 때, 이젠 과거의 나와 이별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막연한 기대감이 있었다. 어설픈 완벽주의자 성향 때문에 매일 집을 쓸고 닦던 습관과 종종 남편과 두 아들을 들들 볶던 일을 이제는 좀 멈출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마음에선 여유가 퐁퐁 솟아났다. 아이 셋을 건사하려면 집을 깨끗하게 유지하는 일이며 아이들 하나하나를 꼼꼼하게 챙기고 입을 댈 만한 여력이 없을 거라 생각했다. 하고 싶어도 에너지며 시간이 충분치 않아 아이들에게 더 많은 자유를 허락하고 나 스스로도 조금은 느긋해질 것을 기대했었다. 그런 면에서 셋째의 등장이 너무 반가웠다.
그러나 거기에는 큰 오해가 있었다. 식구와 주름은 늘어도 사람의 성격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막내 아이를 숨풍! 낳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아주 조금은 청소나 아이들의 학습에 대해 느슨해진 부분도 있지만, 대체적으로는 나의 기준이나 깔끔을 떠는 습성, 그리고 급한 성격까지 크게 달라진 게 없었다. 잔뜩 조여든 마음으로 수시로 나와 가족을 향한 채찍질을 해댔다. 자주 몸이 피곤해졌고, 마음이 괴로워졌다. 그리고 어떤 날은 가족들을 모두 등지고 나 홀로 빈방에 숨어들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어느 날 밤, 이러다간 진짜로 병이 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24시간을 해야 할 일들에 대한 생각으로 머리를 채우며 사는 일, 뒤에 누가 쫓아오지 않아도 빨리빨리를 외치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가는 삶이 무너져 내릴 것만 같았다. 이런 맘으로는 도저히 아이 셋을 키우며 일상을 지속하기가 힘들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렇게는 도저히 아이 셋을 키울 수가 없다. 더 적게 웃고 더 힘들게 살 작정을 하지 않으려면 불편한 습성들을 털어내야 했다.
식구들을 각자의 생활 터전으로 내보내고 곧바로 집을 나왔다. 집은 여전히 엉망이고, 자꾸만 해야 할 일들이 생각나지만 우선 집을 뒤로하고 나왔다. 홀로 놀거나 먹거나 글을 쓰거나 책을 읽을 작정을 하고 나섰다. 하루 세 시간은 출근하는 사람이 되어 집 밖에서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집밖으로 나와서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하며 기분 전환을 하고, 미래를 위한 준비도 하고 집안일은 오후의 나에게 맡기기로 했다. 오늘이 그 첫날이다. 세 아이를 조금 더 행복하게 키우며 살기 위한 마음을 만드는 일이, 셋째를 낳은 지 18개월 만에 시작되었다. 조금 늦었다고 생각되는 오늘이 가장 빠른 날이다. 일등 하지 않아도 괜찮으니 조금 더 웃고 조금 더 행복하게 살아보자. 저녁 메뉴가 조금 형편 없어지더라도 아이들의 눈을 한번 더 마주치는 일에 무게를 두고, 앞뒤가 안 맞는 둘째의 수다에 귀를 좀 더 기울여 주자. 그런 마음이라야, 오래오래 셋째도 키우고 내 마음도 키울 수 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