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둥이네 필수품 1
오랫동안 꿈꾸던 가구를 들였다.
미니멀리스트를 꿈꾸는 나는 가구를 들이는 것에 매우 신중한 편이다. 가구뿐만 아니라 우유, 요플레, 라면과 같은 식품에서부터 롤휴지, 치약 등의 생필품도 필요 이상으로 대량 구매 하는 것을 경계하고 살림의 규모를 최소화하는 쪽을 선호한다. 조금 덜 가지고 조금 더 불편하게 사는 것이(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조금 덜 가지고 대충대충 살아간다는 이야기.) 나에게는 맞는 편이다.
이런 마음을 품고 사는 중에 꼭 갖고 싶은, 그리고 꼭 가져야만 하는 물건이 생겼다.
6인용 식탁.
11년 전, 신혼 때 마련했던 2인용처럼 보이는 작고 귀여운 4인용 식탁은 더 이상 우리 가족이 한상에 둘러앉아 식사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세월이 흐르며 두 아들은 덩치를 키웠고 거기에 막내까지 태어나니 그 작은 식탁에 다섯 식구가 둘러앉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래서 끼니때가 되면 아이들을 먼저 먹이고 우리 부부가 식사를 한다거나, 교자상을 펴 놓고 온 식구가 둘러앉아 식사를 하곤 했다. 교자상을 펴고 접는 일이 귀찮기도 했지만, 이 많은 식구가 식사를 한번 하는 일이 늘 복잡하고 혼란스러웠다. 반찬을 새로 담고 식은 국을 다시 데우고, 부족한 계란말이를 다시 부치고…. 게다가 식사를 하는 모양에 폼이 나질 않았다. 화목한 5인 가족의 저녁 식탁이라기보다는 바쁜 급식소의 빨리빨리 식사 풍경이라고 하는 게 더 어울리는 그림이었다.
첫 번째 이유만으로도 6인용 식탁을 들이는 것은 꽤나 설득력이 있었다.
그러나 식탁 구매를 위해선 나 자신에게 더 납득할만한 이유가 필요했다. 식구는 많아도 나는 미니멀리스트인 것에 변함이 없고, 자식 욕심은 많아도 나는 여전히 미니멀리스트였으니까.
거실 공부의 비밀을 경험하고 싶었다.
아이들이 때가 되면 동굴 같은 각자의 방으로 쪼르르 들어가 공부하는 풍경은 어쩐지 호감이 가질 않는다. 알려주거나 강요하지 않더라도 때가 되면 알아서 자기 방으로 숨어드는 것이 사춘기 시즌의 표준행동 아닌가. 각자 자기 방으로 흩어지다 보면 자연스레 엄마와 아들 사이에 얼굴을 바라볼 일이 줄어들 것이고, 그러다 보면 서로 대화를 나눌 시간과 기회도 줄어들 것이다. 대신 거실에서 공부를 하다 보면 부모와 자녀가 함께하는 시간을 늘릴 수 있게 된다. 공부를 하다 만나게 되는 어려움을 같이 풀어나갈 수도 있을 것이고, 형과 아우는 서로의 페이스메이커가 되어 줄 수도 있을 것이다. 때론 잡담의 꽃이 무성하게 피어나기도 하겠지만 이 모든 것들은 아이들에게 공부에 대한 좋은 추억을 남겨줄 것이다.
거실 공부의 필수품은 서로를 방해하지 않을 정도의 너른 식탁, 그러니 우리 집도 이젠 6인용 식탁을 들일 때가 된 것이다.
그렇게 납득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들어 6인용 식탁을 구입했고, 약 한 달째 우리 집에서 온 가족에게 사랑받는 가구로 활약 중이다. 6인용 식탁에서 하루 세끼의 식사가 차려지고, 독서와 색칠공부, 글쓰기, 그리고 우리 집 초딩 오빠들의 저녁 공부까지 못하는 것 빼고 다 할 수 있는 만능 식탁이 되었다. 때론 식탁 아래의 공간이 근사한 독서공간이 되기도 하고, 또 다른 때엔 식탁이 막둥이의 놀이터가 되어주기도 하기에 우리 집 식탁은 집에 들인 지 한 달 만에 이미 제 할 일을 다 해낸 셈이다. 오래 고민 한 만큼 참 잘 산 가구라는 생각이 든다.
최근 아이들 교육에 관한 고민이 참 많았다.
고개만 돌리면 이 학원 저 학원에서 양질의 교육을 받는 아이들이 넘쳐나는데, 우리 집 아이들은 엄마 아빠표 공부를 한답시고 집에서 빈둥거리고만 있는 것 같아 수시로 마음이 흔들렸다. 이때에 놀지 않으면 언제 놀겠냐는 마음과 지금 이 시간에도 학원에서 진득하게 앉아 공부하고 있을 우리 아들의 친구들 얼굴을 떠올리며 가슴이 턱 막히는 그런 두 가지 마음이 틈날 때마다 갈등을 일으켰다. 그리고 그 고민아래 비슷한 결론을 다시 한번 내렸다. 아직은 엄마, 아빠와 함께 공부하고 함께 책 읽기에 마음을 모아 보기로.
그리고 가장 먼저 한 것이 6인용 식탁을 들이는 일이었다.
식탁이 바뀌고 가족이 함께 모이는 횟수가 늘었다. 주말마다 거실 여기저기에 흩어져서 드렸던 가족 예배는 식탁이라는 한자리에 모여 할 수 있게 되었고, 아이들은 평일이면 매일 저녁 비슷한 시간에 식탁으로 모여들어 각자에게 주어진 공부와 말씀 큐티의 시간을 갖는다. 어떤 날은 간식을 꺼내서 먹고 떠드는 시간이 공부하는 시간보다 길고, 식탁 위에 공부할 책 보다 간식이나 만화책 등이 더 많이 흩어진 날도 있지만 중요한 것은 아이들이 비슷한 시각이면 모여든다는 것이다. 그리고 아이들이 모여들어 각자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알게 되었다는 사실이 가장 큰 변화다. 이렇게 습관이 시작되는 것인가 보다.
6인용 식탁이 모든 고민과 문제를 해결해 주지는 않았지만 아이들의 공부와 우리가 함께 식사하는 일, 그리고 우리가 함께 시간을 보내는 방법에 대해서도 조금씩 힌트를 건네는 중이다. 참 고맙다.
이제는 우리가 매일 모이는 이 널찍한 식탁에 턱을 괴고, 팔꿈치를 세워가며 우리의 세 아이가 잘 성장해 나가기를 소망한다. 서로에게 고마워하는 마음, 미안해하는 마음, 그리고 서로를 사랑하는 마음까지 든든히 배우고 채워가며 멋진 청소년, 그리고 청년에서 성인으로 잘 자라나 주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