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하루도 꿀꺽, 부드럽게 잘 삼켜낸 하루였다.
아이 셋과 남편이 무사히 집으로 돌아왔고, 다섯 식구 모두 끼니를 거르지 않았으며, 아이들 얼굴을 바라보며 고래고래 소리 지를 일이 없었으니 이 정도면 무탈하게 살아낸 하루가 아닐까.
이사와 적응이라는 큰 과제를 풀어내다 보니, 요즘은 아이들이 또각또각 일상만 잘 보내고 오더라도 기특하다, 참 잘했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아이들을 키우고 삶을 꾸리며 완벽주의를 쉽게 내려놓지 못해 아이들의 행동거지는 주로 못마땅하게 느껴졌다. 이건 왜 안 하는지, 이건 왜 못하는지, 그리고 왜 우리 아이들은 오늘도 놀고만 있는지….
하지만, 삶의 터전을 옮기는 큰 사건을 겪으며 우리 아이들이 그저 일상을 살아내는 것만으로도 대단히 큰일을 겪어내는 비범하고 멋진 아이들로 보인다. 거실에서 빈둥거려도 엉덩이를 토닥여 주고 싶고, 놀이터에서 깔깔거리며 뛰어노는 모습만 봐도 엔도르핀이 퐁퐁 뿜어져 나온다.
많은 5학년 아이들은 하교 후에 촘촘하게 짜인 스케줄로 바쁜 오후를 보낸다. 그 모습이 안쓰러우면서도 대단해 보이고, 대단해 보이면서도 아주 솔직히 조금 부럽기도 하다.
우리 집 첫째인 5학년 형아는 방과 후엔 일주일에 두 번 수영 강습을 가는 것과 저녁 시간의 태권도 수업을 제외하면 하품이 쩍쩍 나올 정도로 한가한 때를 보낸다.
누가 보면 체대를 보내기 위한 기초체력을 키우는 것만 같아 보일 정도로 사교육은 스포츠에 집중적으로 투자 중이다. 내가 완전히 동의한 것은 아니지만, 강남 8 학군 출신의 남편이 짜낸 스케줄이니 난 그저 그런가 보다 하며 지켜보는 중이다.
그러다 보니 우리 어린이는 화요일과 목요일, 그리고 금요일은 하교 후 아파트 잔디를 돌며 네잎클로버를 찾아다녀도 될 정도로 한가하다. 한가한 시간에 멍도 때려보고 자신의 미래도 상상해 보며 시간을 채우면 좋겠지만, 아이는 그날은 학원에 가지 않아도 되는 친구를 붙잡고 함께 놀고 싶어 한다.
개학 한 지 정확히 일주일이 되던 날, 아이는 하굣길에 전화를 걸어왔다.
“엄마, 친구랑 같이 놀아도 되나요?”
“응 놀아도 되지.”
“아, 그러면 혹시 우리 집에서 놀아도 되나요?”
“응 그러면 더 좋지.”
그랬더니 수화기 너머로 친구와 소곤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재현아, 우리 집에 같이 가도 된대, 우리 집에 갈래?”
“우리 집에 가도 되는데, 우리 집에 놀러 갈래?”
“너희 엄마 회사 다니셔?”
“응 우리 엄마 출근하셨어.”
“아, 그러면 너희 집에는 못 가. 우리 엄마는 보호자가 없는 집에는 놀러 못 가게 하시거든. 그냥 우리 집에 가자.”
“아, 그래? 그러면 우리 집에 가서 장난감 좀 가지고 가자.”
대화를 끝내고는 다시 수화기로 대화를 이어간다.
“엄마!! 재현이랑 같이 집으로 갈게요. 집에 있으실 거죠?”
“그래 어서 와!”
이렇게 해서 한가로웠던 두 5학년 아이는 우리 집으로 입장했다. 수화기 너머로 아이와 친구의 대화를 들으며 습관처럼 했던 아이에 대한 걱정을 슬며시 접어 넣었다. 아이는 투덜거려도, 생각 없이 장난만 치는 것 같아도 엄마 말을 잘 듣고 기억하고 있었다는 것을 실제 상황을 통해 그대로 보여주었다. 보호자가 없는 집에는 가지 않기, 그 약속을 아이는 우리의 중요한 룰로 기억하고 지켜내 주었다. 아이 친구가 오지 않아도 우리 집엔 이미 올망졸망한 아이들이 셋이나 있지만, 괜찮다. 보호자인 내가 있는 우리 집이 아이들에게도 안전하고 따뜻한 둥지가 될 수 있다면 괜찮은 거다.
우리 집이 좀 떠들썩하고, 작은 동생이 있어서 어떤 면에선 제약도 있지만 그래도 아이들은 크게 상관하지 않고 자유롭게 시간을 보낸다. 그런 아이들의 모습을 보는 나도 참 흡족하다. 지난주에 한 번, 그리고 이번 주에 한 번, 벌써 두 번째로 우리 집에 친구가 방문을 했다.
“엄마, 또 데려가도 되는 거예요?”
하고 아이가 믿기지 않는다는 목소리로 물어왔지만, 나는 뭘 그렇게 놀라냐는 듯 “당연하지.”를 외쳤다.
어렸을 적, 자주 아프셨던 엄마가 힘이 들까 봐 우리 집에 친구를 맘껏 초대하지 못했던 나는 우리 꼬마들의 친구들은 언제나 대환영이라는 선언을 했고, 우리 집은 어린 친구들의 사랑방이 되었다.
우리 아이들도 놀러 온 친구들도 그런 우리 집을 참 좋아하는 것 같다.
그러니까, 얘들아 우리 집으로 놀러 오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