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나의 하루를 열고 닫는 지하철에서

나는 이곳에서 많은 생각을 하고 꿈을 꾼다

by 이정인

오늘은 나의 창작시 2편을 소개할까 한다. 문예창작학과의 '시창작연습' 수업을 들으며 받은 숙제 2개. 바로 시 두편을 써서 제출하는 것이다. 시를 써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히고 나니 머리속에서 하나의 장면을 보고 조금씩 나만의 느낌을 쌓아가고 있는 나를 만날 수 있었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시 두편을 여러번 매만지고 보여주고 다시 생각해보고 하는 과정을 거쳤다. 전혀 다른 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 쓰고 보니 지하철에서 내가 본 것들이었다. 내가 지하철에서 참 많은 것들을 발견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편도 30분 거리의 지하철 안에서 사이버대강의를 듣기도 했고, 음악을 들으면 책을 보기도 했던 이 시간에 존재하는 것은 온전히 나였다. 지하철은 내가 나일 수 있게 지켜주고 있었고, 세상과 이어주기 위해 만들어진 창이었다. 수많은 사람들 중 눈에 띄지 않고 혼자서 생각을 키워갈 수 있는 숨어들기 좋은 공간이기도 했다.


지하철에서 만들어진 시 2편. 내 눈에 담긴 세상의 모습은 이랬다.





잿빛, 검정, 하양



잿빛, 검정, 하양

오늘 아침 출근길

지하철 4호선 대공원역으로 향하는

소년소녀들을 만났다


어쩌면 그렇게도 거리의 자동차를 닮은 거지

이리저리 둘러봐도 비슷비슷한 색의 옷을 입었다

남의 눈에 띄지 않고 싶은 마음일까

그저 익숙하고 편안해서일까

무채색 옷들이 멋지다고 생각하기 때문일까

그냥 궁금해졌다


어린 시절 병아리 같았던

화사했던 웃음과 색들은 사라지고

우리는 모든 면에서

모두 별일 없다는 듯 닮아가는 건 아닐까

잿빛, 검정, 하양


우리 앞에 놓여있던

세상의 색은 더 많을 텐데

왜 흔하디흔한 몇 가지 색만 더 많아지는 걸까

아이의 말이 생각난다

"왜 우리나라 동물들 색은 심심해?“


왜 우리는 심심해졌을까



** 시를 써야 한다는 생각에 내 눈에 들어온 소년소녀들의 소풍길을 보며 쓴 시. 왜 아이들은 어른들처럼 무채 색에 빠져드는가 생각하며 썼다.






너를 닮은 사람


너를 닮은 누군가를 만났다


내 시선을 한 참 잡아두는 사람

그때 너의 머릿결

눈, 코, 입까지 정말 닮아 보였다

너는 그렇게 생각난다

마지막 통화 속 음성의 냉기는 그대로이고

우리가 만나지 않은 지

너무 오래되어 가지만

그런데도

언젠가부터 이렇게 예상치 못한 공간에서

지난날의 네가 스쳐 간다

한때 친구였던 너를


나는 너와 헤어지지 못한다


앞으로도

너를 닮은 사람을 이렇게 만나게 될지 모르니


어쩌면 진짜인 너도


** 오랜시간 회사를 다니다보면, 퇴사로 헤어지는 사람들이 많아진다. 지하철에서 비슷한 사람을 보며 그 사람과 만나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시가 고쳐지면서 옛동료가 아닌 친구에 대한 감정으로 만듦새는 달라졌지만 출발은 지하철에서 마주친 사람이다. 자주 만나지 못해 이렇게라도 만나고 있다는 위로를 담아보고자 했다.



keyword
이전 06화함께라서 더욱 행복한 책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