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대청소가 휩쓸고 지나간 주말 이야기
대청소를 하는 날이면, ‘미니멀 라이프’를 추구하는 B형 아빠와 웬만해서는 잘 버리지 못하는 AB형 쌍둥이 간의 실랑이가 벌어집니다.
가장 많이 대립을 보이는 품목은 아무래도 책이 아닐까요.
식탁 옆에 지인이 준 전집이 있었는데, 오늘 결국 버리고 말았네요.
오래된 책이긴 했지만 출판사도 좋고 준다는데 또 거절하기도 그렇고, 아이들에게 어떻게든 읽히겠다는 마음으로 받아두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기존에 가지고 있던 전집이랑 소재가 겹치기도 했고, 책꽂이에 꽂을 때도 없고 해서 포장도 풀지 않고 있었네요.
그런데 아빠는 식탁의자에 발을 집어넣을 때마다 부딪힌다며, 불편함을 호소했는데, AB형 엄마 역시 애써 외면해 왔었죠.ㅠㅠ. 아직은 엄마 바라기인 아이들도 '(언젠가는 읽을) 우리 책'이라며 함께 반대해 주었죠. 아빠는 계속 언젠가는 버리겠다며 선언을 했었는데요.
참다 참다 아빠는 오늘 '대청소령'을 내리고, 쌍둥이들은 아빠가 또 무얼 버릴까 노심초사. 아빠는 과감히 그 전집을 킥보드에 싣고, 엘리베이터로 향합니다. 쌍둥이들은 "아빠 안돼! 버리면 안 돼!"절규합니다. 뚝뚝 눈물을 흘려보지만, 아빠는 신념을 굽히지 않습니다. 엄마도 이제는 포기했습니다.
진짜 제가 어렸을 때는 전집이 이렇게 흔하지 않았었는데. 그 시절엔 전집을 들인 엄마와 이를 반대하는 아빠들의 부부 싸움이 회자되고는 했었는데. 이제는 개똥이네며 중고시장 등을 통해 전집이 소통되다 보니 수십만 원하는 전집이 몇만 원이면 구입할 수 있습니다. 물론 시간이 5년 이상 경과된 경우가 많지만 내용면에서는 지금 읽어도 크게 무리가 없습니다.
집안을 가득 채운 책들을 정리했을 때도 중고책을 구입했던 분께 책을 그냥 드렸는데, 그분도 제가 드린 책 중에 너무 오래된 것 그냥 바로 버리셨다고 하더라고요. 책들이 이렇게 쉽게 소비되는 세상이 되었네요.
대청소 품목에서 또 하나 아이들과 아빠의 충돌되는 지점은 아이들이 끄적인 그림들과 망가진 아이들의 작품들. 아이들의 흔적을 보관하면 좋겠지만, 다 보관하기에는 현실적으로 어렵더라고요. 그리고 온전하게 보관되어 있으면 괜찮은데 찢어지고 망가지고. ㅠㅠ
어린이집, 유치원, 초등학교 때까지 거의 대부분의 수업이 만들어보고 그려보는 수업이다 보니 그 양들이 더 어마어마한 거 같아요. 쌍둥이다 보니 작품 수도 2배. 아이들은 내가 얼마나 열심히 만든 건데 하면서 버티고, 아빠는 마지못해 다시 꺼내놓고 마는데요. 그러다 아이들의 관심권 밖으로 밀려날 때를 기다렸다 버리는데요.
가끔 아이들이 찾는 것들이 보이지 않으면, 아빠가 버린 것 아니냐며 오해의 시선을 종종 받기도 합니다.
쌍둥이들은 웬만해서는 잘 버리지 못하는 건 엄마를 닮은 듯한데요.
암튼 말처럼 쉽지 않은 심플한 삶, 아빠가 주도하는 대청소가 폭풍 스치듯 지나가고, 집안이 정리됩니다.
우리는 왜 이렇게 붙잡고 싶은 것이 많은 걸까요. 쌓이다 보면 감당도 잘 안 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