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겨울에 있었던 일이다. 사람 손이 부족해 늘 야근에 시달리던 우리 팀에 친절한 신입사원이 등장했다.
다른 팀에서 뽑은 신입사원이 1주일만에 우리 팀으로 오니 이유를 불문하고 과중한 업무를 덜어 줄 구세주라 여겼다. 직접 대면해 보니 그는 "뭐든 맡겨주세요. 제가 하겠습니다"라며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으며, 근무환경도 너무 좋다며 만족감을 드러냈다. 그동안 직속 상사인 팀장에게 직원 충원을 얘기했지만 무시당하기 일쑤였는데 어느 날 갑자기 신입사원이 뚝하고 하늘에서 떨어지니 영문을 알 수 없었다.
사장님은 서로 잘 지내고, 업무를 많이 알려주라고 신신당부 했다. 그런데 팀장의 표정은 영 좋지 않았다. 인사팀의 친한 직원에게 물었다.
"왜 우리 팀에 온 거예요?"
"잘 모르겠습니다"라며 얼른 자리를 피했다.
신입사원의 존재는 점점 미궁으로 빠졌다.
단순한 행정업무부터 A에게 알려주려고 하자 팀장이 조용히 부른다. "그냥 그대로 둬. 보통이 아닌 거 같으니 조심해. 그게 좋아"라고 말한다. 뭘 조심하라는 건지. 다시 인사팀의 직원에게 재차 물어보니 포기한 듯 귀띔한다. "직장 내 괴롭힘으로 신고했데요. 그래서 선조치로 다른 팀으로 보낸 거예요"
구세주가 아니었다. 정말 인생이 도와주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말로만 듣던 '직장 내 괴롭힘'이라는 단어가 내게 성큼 다가왔다. 선의로 건넨 말 한마디가 잘못 왜곡될까 걱정해야 했고, 스스럼없이 나눈 얘기도 녹취될까 봐 전전 긍긍해야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걱정은 현실이 되었다. 다른 팀 직원의 제보들이 답지했다. 복도에서 자신의 조사를 담당하는 노무사와 엄청나게 싸운다, 지난 번 사무용품을 빌려주면서 위 아래로 쳐다봤다며 가만 안두겠다고 했다, 화장실 문 앞에서 어깨를 부딪힌 사람에게 사과하지 않으면 폭행죄로 고소하겠다며 으름장을 놓았다는 이야기까지. A는 내가 보지 못한 다양한 장소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향해 고소의 날을 세우고 있었다.
나도 낚일뻔 했다.팀장이 너무 정신이 없다 보니 점심시간을 깜박했다. 11시 58분쯤 부장이 밑에 가서 혼자 일하고 있는 나를 도와주라고 했단다. A는 나를 보자 마자 "저 점심시간에 밥 먹지 말고 일하라는 거죠?"라며 말하는데 말투가 범상치 않았다. 잘못 걸렸다가는 점심시간에 밥도 안 먹이고 일 시키는 악덕 상사가 될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정신 차려야 했다. "누가 그래요? 밥 먹지 말고 일하라고 하던가요? 얼른 점심 먹고 오세요!" 라며 놓아주었다. A는 다시 한번 나를 향해 낚싯줄을 당겼다. "아, 과장님도 점심 식사 안 하셨잖아요. 제가 도와 드리고 갈게요"라고 나를 생각하는 듯 얘기를 건넸다. "아. 아니에요. 얼른 점심 먹고 오세요". 나의 머릿속에는 나를 엮을 혹시 모를 시나리오가 보이는 듯했다.거절하는 나의 말에 포기하듯 "제가 아침 식사를 못 했네요. 죄송하지만 먼저 가볼게요"라며 재빨리 사라졌다.
정말 세상에 이런 사람도 있구나 싶었던 A와 꾸역꾸역 시간을 보내고 나니 어느덧 3개월이 지나갔다. 정식 채용 여부를 결정하는 인사위원회가 열리던 날. A는 이미 자신의 운명을 알고 있었다. 팀장을 비롯해 나의 얼굴도 보지 않고, 자리에 앉아서 굉장히 빠른 속도와 파워 넘치는 손놀림으로 타이핑을 해나갔다. 자신을 불쾌하게 만든 사람을 새끼줄에 굴비 매달듯 직장 내 괴롭힘으로 조사해 달라고 온라인으로 요청하고 있었던 것이다.
괴롭고 힘들다는 것은 주관적인 감정이기에 주장하면 그만이었다. 무리하게 회사내 다수의 사람들을 직장 내 괴롭힘으로 엮고, 고소카드를 꺼내들었다. 심약한 사람은 정신과 상담을 받아야 했고, 조사를 받았던 사람들은 얼마간의 불명예를 감당해야 했다. 물론 한바탕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직장내에서는 관계의 우위라는 위치에 대해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사적으로 다정하게 얽히는 것도 관계가 틀어지면 칼날이 될 수 있기에 일정 거리를 두었으며, 업무시간 외에 직원에게 문자를 보내거나 일을 지시하는 것에도 예전보다 더 조심했다. A가 던진 그물에 우리는 걸려들지 않았지만 우리 안의 작은 변화가 있었음은 부정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