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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문예창작학과에 편입한 이유

현재의 커리어에 대한 답답함을 벗어나 진짜 나를 찾아가는 과정

by 이정인

올해 내가 한 일 중 가장 잘한 일은 무엇일까? 바로 문예창작학과에 편입한 일이 아닐까 싶다. 육아휴직 이후 적성에 맞지 않는 일을 한다고 참 투정이 많았다. 신뢰하는 선배와 동료에게 고민을 털어놓기도 했었지만 내가 가고 싶은 부서에 돌아가는 일은 더욱 멀어져 갔다. 마음을 다독이는 과정 중에 스스로 결심하게 된 것은 나를 위한 글을 쓰자는 것이었다.


왜 가만히 앉아 회사가 날 선택해 주기만을 기다렸을까. 내가 스스로 갈 수 있는 길이 있는데. 사실 육아휴직 이후 블로그를 통해 글쓰기를 지속적으로 해나갔지만 그게 다였다. 목표 없이 그냥 달리고 있었다. 언젠가 이러다 보면 무엇이든 될 거라는 막연한 꿈만 꾸었나 보다. 또 문예창작학과를 다녀야겠다는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조금 나중의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아이들의 학업이 중요한 시기이기 때문에 엄마로서 도와주어야 할 일이 많다고 여겼다.


그러던 중 문득 내가 열심히 사는 것이 더 중요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속에 품었던 생각이 어느 날 이렇게 갑자기 굳은 결심이 먹어지는 걸 보면 신기했다. 아이들을 도와주는 게 지금의 내가 해야 할 일은 맞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니까. 그동안 학부 졸업 이후 대학원에 사이버대학교 한국어학과 등 가방끈을 놓지 않았는데 다시 한번 도전해 보자는 마음이 들었다. 더 늦으면 왠지 후회할 것 같다는 생각이 강했다.


문예창작학과에서 한 학기 수업을 듣는 내내 행복했다. 내가 좋아하고 관심 있는 분야의 것을 배운다는 것이 나에게 커다란 동력이 된다는 사실을 체감할 수 있었다. 관련도서도 수집하고 가급적 꼼꼼히 읽으려 노력했고, 정말 수십 알의 영양제를 먹어도 이렇게 도움이 되나 싶을 정도로 나를 다시 세우게 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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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제를 통한 마감 있는 글을 쓰고, 퇴고를 거듭해 나가면서 내 글에 집중하는 한편 수없이 이게 맞는 말인지 되뇌는 시간들은 소중했다. 교수님의 피드백을 받으면서 내가 무의식적으로 쓰는 말들, 인터넷에 가볍게 올리면서 나도 모르게 든 이상한 문장부호 쓰기 등을 지적받으면서 정말 제대로 잘 배우고 있구나 싶어 기뻤다. 무엇보다 나의 정체성, 내가 내세울 것이 무엇이 있나 진지하게 고민하게 되었고, 그 답도 찾는 계기가 되었다.


글쓰기 외에도 제대로 책을 읽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이 부분에서도 많은 도움을 받았다. 특히 단편소설의 매력이 이렇게 대단할 줄이야. 사실 그동안 단편소설을 거의 안 읽었는데 소설 한 편 한 편마다 다양한 인생을 만날 수 있으며, 그 안에 담긴 풍성한 생각거리를 알게 된 것이 큰 수확이었다. 수업에 임하기 전에 최소 2번 이상 읽었으면 좋겠다는 교수님의 부탁은 진짜 중요한 메시지였다. 한 번 읽는 것과 두 번 읽는 것이 이렇게 차이가 많은 줄 진짜 몰랐다.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보이고 느낌이 더 생생해졌다. 또 줄거리에 연연하기보다 그 장면과 순간에 집중하면서 읽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시의 최근 경향과 감상법을 배우면서 시를 읽는 눈을 조금은 넓힐 수 있었다. 하지만 시란 무엇일까. 시는 어떻게 써야 하는 것인가라는 이 물음표는 내내 나를 따라다녔다. 짧은 글이어서 손쉽게 접근할 수 있을 것 같지만 그게 다가 아닌. 묘한 매력의 시. 계속 알아가야 할 숙제처럼 남았다.


한 번도 소설을 써봐야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과제로 엽편소설 두 편을 내고 나니 그냥 잘 쓰고 못쓰고를 떠나 내가 기특했다. 에세이 같은 소설 형식이 되었지만 엽편소설에 도전해 봐도 좋겠다는 조그마한 마음의 불씨가 생기는 것을 보면 의외의 성과가 아닐까 싶다.


이제 긴 겨울방학으로 접어들었다. 한 한기동안 읽고 싶었으나 읽지 못했던 책들이 잔뜩 쌓였다. 수업 중간에 참고자료로 쓰인 책을 한 권씩 한 권씩 사다 보니 제법 모였다. 그리고 교수님들이 추천해 준 책도 빼놓을 수 없다. 그 책들을 한 권 한 권 읽으면서 보내다 보면 매일 조금씩 달라져있을 나를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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