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한때는 시인이었던 아들이 생각났다.

정재학<아빠가 시인인건 아는데 시가 뭐야?>를 읽고

by 이정인

한때는 시인이었던 아들이 생각났다.


한 때는 시인이었고 지금은 약간 거리가 멀어진 아들이 생각났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기전 ㄱ ㄴ ㄷ과 ㅏ ㅑ ㅓ ㅕ를 레고블럭처럼 연결해 읽어냈을때가 생각났다. 글자들이 짝을 만나 '가'가 되고, '거'가 되는 것은 정말 우리모두가 약속한 소리였으며, 아들은 순조롭게 읽어나갔다. 아이가 책을 스스로 읽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기발한 표현들을 척척 뱉어내는 걸 보면 아이는 세상에 둘도 없는 시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표절을 할 일도 없는 아이는 세상에 없는 자기만의 표현법을 담아 머리속에서 새로운 집을 지어내고 있었다. 집 뒤 공원길의 서로 맞대어 하늘을 다 가리고 있는 가로수를 보고 '구름나무'라고 표현하고, 그 나무가 바람에 흔들릴 때 "엄마! 나무가 자꾸 나를 보고 인사해"라며 나를 놀라게 했던 때가 기억난다. 엄마를 향해서는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고향'이라고 했으며, 도서관옆 밤길 가로등을 보며 자유롭게 시를 만들어 조잘거렸을 때 우리는 무척 즐거웠다.


아빠와 아들의 대화를 통해 우리는 '시'를 통해 숨쉬고, 노래가 되고, 두근두근 뛰게 되기도 하고, 꿈을 꿀 수 있다는 것을 새삼 들려준다. '시'는 그저 짧은 글이 아니라 어쩌면 많은 말을 감춰둔 비밀상자 같다는 사실도 알려준다. 그리고 어린시절 시인이었던 아이와의 추억을 소환해주는 것은 더할나위없는 선물이다.



달팽이 속에도 글자가 숨어 있고 매미 날개에도 글자가 숨어 있고 기차 소리에도 글자가 숨어 있고 미끄럼틀 속에도 글자가 숨어 있단다.

- <글자의 생> 부분



공부가 전부인 것이 아니라는 걸 알지만 공부가 전부라고 알려주고 있는 학창시절. 영어, 수학 공부를 하느라 국어공부가 조금 밀려난 지금. 공개수업에서 천천히 걸으며 <오우가>을 읽게 하는 국어선생님처럼 시의 그 느낌과 정서를 살려 글자의 생을 따라가게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글자는 숨을 쉬고, 뱀과 지렁이이라서 읽는 사람마다 다르게 보는게 진짜 매력이라고.



# 발행이 늦어졌습니다. 다음에는 꼭 금요일에 글을 발행하겠습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