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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사하는 아침, 좋은 하루를 위한 준비

꼭꼭 눌러쓰며 깨달아갑니다

by 이정인

이사가 결정되고 통 집중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하나 통과해야 할 관문처럼 처리해 나가야 할 일이 있고, 혹시 잘 되지 않는 것은 아닐까 조바심이 납니다. 해결이 되기 전까지는 그것만 생각하는 성격 때문일까요.

그래서 시작한 것이 있습니다. 서평을 쓰기 위해 받은 책이 있었는데 베스트셀러의 좋은 문장을 수록해 둔 책인데 출근하자마자 랜덤으로 펼칩니다. 그날의 문장을 눈으로 보고, 손으로 적습니다. 그리고 꼭꼭 눌러 그 문장들을 음미해 봅니다. 익숙한 단어들의 배열 속에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삶의 의미와 깨달음이 탄성과 함께 내게 들어옵니다. "맞아, 그렇지. 왜 미처 생각해내지 못했을까?"


차분한 하루를 시작할 수 있습니다. 거칠었던 어제의 기억과 정리되지 못한 마음이 조금 다듬어집니다. 문장을 쓰는 그 순간은 평화롭습니다. 좋은 친구와 대화하듯, 좋은 어른에게 위로받듯. 삶을 반짝이는 순간들로 채워갑니다.


내가 좋아하는 문장을 노트에 적는 일도 좋지만 필사를 할 수 있도록 구성된 책에 나만의 손글씨와 나만의 느낌을 채우는 일도 참 재미있는 일입니다. 한 권을 다 채우고, 돌아볼 때 저는 그 시간 안에 필사를 하고 있었던 저와 마주할 수 있겠지요.

필사는 하나의 의식입니다. 정하지 않은 문장들 속에 기대하지 않았지만 기어코 마음속에서 번지는 좋은 기운을 간직할 수 있습니다. 어쩌면 또 다른 측면의 감사일기 같기도 합니다.


그런데, 제가 너무 좋아하는 작가이자 스승이시기도 한 고수리 교수님께서 필사할 수 있는 책(쓰는 사람이 문장 필사)을 곧 출간한다고 합니다. 이 책을 통해서도 꾹꾹 그 문장들을 제 머릿속에 마음속에 담을 생각하니 기분이 좋습니다. 얼마나 멋진 말이 찾아올까. 너무 기대됩니다.

내 손끝에 닿아 기분 좋은 필기구 하나 있으면 더 즐거울 수 있다는 것은 덤입니다. 필사를 어떻게 안 좋아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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