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무를 떠넘기며 공을 가로채가는 사람들
얼마전 막을 내린 '언젠가는 슬기로운 전공의생활'에서의 명은원을 기억하시죠? 회사를 다니다보면 꼭 그런 인물들이 있습니다. 얼핏보면 말도 예쁘게 하고 착할 것 같은데, 알고 보면 요리조리 미꾸라지 빠지듯 얄미운 그런 사람. 또 그런사람들이 실속을 잘 차려, 성실하게 자기 일에 몰두하는 사람들을 허탈하게 합니다.
극중에서도 명은원은 구도원과 공동저자로 논문을 쓰자고 제안합니다. 구도원이 거의 모든 내용을 작성했지만, 명은원은 본인이 다시 쓰다시피한 내용이 많다며 본인을 제1저자, 구도원을 제2저자로 해 논문을 제출했는데 깜빡있고 말을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계속 말 합니다. "내가 말 안 했지?" 본인의 의도가 아니가 아니라 단순 실수라며.
그 장면을 보면서 회사에 도사리고 있는 빌런들이 떠올랐습니다. 명은원과 구도원의 관계와 꼭 닮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비슷한. 얼마전에 회사에서 모 기업과 업무협약을 맺었다며, 저희 부서로 협조문이 날라왔습니다. 이 분이 진짜 영업활동을 하고 있는 분인지만 확인해주면 된다는 것입니다. 언뜻 들어보면 상당히 단순한 업무인 것 같은데, 그 이면에는 여러가지가 얽혀 있습니다. 민감한 개인정보 문제와 이 확인하는 양이 얼마나 될지에 대한 검토가 전혀 이뤄지지 않은 것입니다.
"단순한 영업사실 확인을 몰라서 우리 부서로 협조문을 넘긴 건가요? 그 부서에서 하세요" 날을 세우며 말했습니다.
"아니, 그걸 왜 우리가 합니까?"
"저희랑 사전에 협의하셨나요? 아무말 없다가 무조건 협조문 넘기면 다 입니까? 개인정보며 하루 어느정도의 조회건수가 얼마나 되는지 확인은 해보셨습니까?"라고 물었는데 대답을 들으니 탁 맥이 더 풀린다.
"글쎄요. 그건 실무진 분들끼리 논의해보시죠. 일단 내일부터 하기로 했으니 해보고 말씀하시죠"
정말 기가 찼다. 해당 부서에서 처리하지 않을 일을 사전에 논의하지도 않고 정확하게 내용 설명도 해주지 않는 것입니다. 시행도 내일부터랍니다. 개인정보와 관련해서는 자신도 우리의 어려운 점은 충분히 설명했답니다. 그것뿐입니다.
그래서 대안을 제시했습니다. 기존의 통상업무도 많은데 일일이 조회하는 것은 불가능하니 서류로 갈음해서 업무협약하는 곳에서 확인하도록 하자고 건의했습니다. 본인은 실무적인 것 까지는 정확히 모르니 우리 부서와 협약한 곳끼리 직접 이야기하라고 합니다. 기자들을 모아놓고 호기롭게 발표해놓고 실제 업무를 담당할 부서의 확인도 제대로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업무협약을 맺은 기업의 변도 가관입니다.
"개인이 발급받은 서류를 저희가 일일이 확인할 수 없어요."
"그러면 저희보고 일일이 확인하라는 소리인가요?"
"그것때문에 업무협약 한 것입니다."
할말이 없다. 협약을 했다고 하니 협조를 해주어야겠지만 얼마나 많은 양의 일이 생길지 가늠도 할 수 없고, 막대한 책임도 걱정이 됩니다.
그야말로 직장생활에서 가장 재미없는, 가장 힘빠지는 경험을 하고 있는 중입니다. 명은원 같은 빌런은 어찌할 수 없겠지만 오이영처럼 말해주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오이영은 명은원에게 일갈합니다. 구도원에게 사과하지 않았다고. 마지못해 사과하는 명은원의 모습에 조금 위로는 되더라구요. 저도 빌런에게 진정어린 사과라도 받으면 마음이 좀 풀릴까요. 그런데 현실의 빌런은 슬슬 피합니다. 그래서 씁쓸합니다. 어떻게든 협조해줘야 상황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니까요.
-사진출처:tv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