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많은 추억들을 어쩌란 말인지
이사가 불과 한 달도 안 남았다. 짐을 정리하다 보니 12년 전 이곳으로 이사 왔을 때 박스로 밀봉해 둔 카세트테이프 2박스가 보인다. 학교정문을 나서며 지하철역까지 걸어가던 길에 있던 레코드샵에서 내가 하나둘 사모은 카세트테이프.
나는 그때 음악을 친구로 삼았던 모양이다. 조규찬, 이승환, 신승훈, 토이, 전람회, 김민종 등. 나는 적어도 한 달 이상은 그들의 노래와 데이트를 했었고, 빠짐없이 그들의 테이프를 사모아야 했던 것 같다. 시간이 지나 10년이 넘어 꺼내지 않아도 내 삶의 아무런 변화가 없었고 그들과의 데이트는 그렇게 박제만 되어 있었다.
봉인된 박스에는 내 기억에 너무 분명히 남은 앨범도 있었지만, 미스터리처럼 남은 앨범도 있다. 나는 그들(그룹이라 편의상 그들이라 부른다)의 노래를 일부 좋아했던 기억은 있지만, 앨범은 살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1개가 아니라 다음 앨범까지 2개를 가지고 있었던 걸 보면 나는 남용을 하고 있었던 것인지, 아니면 그래도 1번 더 그들에게 애정을 보였던 것인지. 내 기억은 대답하지 못한 채 증거만 남았다.
이 오래된 어쩌면 더 이상 재생할 곳이 없어 보였던 카세트테이프가 유통되고 있는 좀 신기한 광경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승환, 서태지처럼 1집 앨범이 비싸게 판매되고 있는 가수들을 보며 내 수집물이 헛되지 않았다는 으쓱함도 들지만, 지금은 사라져 잘 기억해주지 않는 가수들을 보면 쓸쓸해지기도 한다.
당근마켓에 박스 맨 윗부분을 찍어 보여주며, 200개 넘게 카세트테이프가 있다고 글을 올렸다. 몇 번 대화가 오고 가더니 퉁쳐서 7만 원이라는 가격을 제시한다. 이렇게 팔기는 아까울 것 같아 좀 더 정리후 다시 말하자고 했다. 그런데 너무 많아서일까. 도통 이 추억들을 분류하고 몇 개가 있는지 정리하기가 엄두가 안 나는 게 현실이다. 지금도 바쁘게 살기 힘든데 나는 이 추억들을 다 어쩌란 말인지.
엄두가 나지 않는 추억들을 되돌아보며, 좀 더 가볍게 살았으면 좋겠는데 왜 나는 이토록 소유에 집착하는지. 이제는 다르게 살아야 하는데 하는 마음이 든다. 내 본성이 쉽게 변하지는 않겠지만. 너무 많아 많은 것을 누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누리지 못하고 짓눌리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한편으로는 과감히 버리고 과감히 정리해야겠지만 여전히 많은 나의 추억들 앞에 어쩐지 마음이 안쓰럽기도 한 건 왜인지 모르겠다. 갖고 싶은 것이 많은 내가 보여서일까.
** 금요일 발행을 넘겼습니다.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