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필기 시험 합격 후 오늘까지 자격증 실기 시험에서 두 번이나 떨어졌다. 5개월이 넘는 시간 동안 연습했을 때 지금껏 단 한 번도 실수한 적이 없던 곳에서 너무나도 어처구니없이 실격했다. 시험이 끝나고 30분 동안 멍하니 앉아있었다. 막막함과 공허함, 허무함이 뒤섞여 생각할 틈이 없었고 눈물조차 나오지 않았다. 시험이 끝나고 모두가 떠난 초겨울의 시험장에서 높은 창으로부터 내 피부로 비춰오는 햇살이 너무나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던 것만 기억이 난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도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집이었다. 현관문을 열고 작업복을 벗으려고 내 방 문 앞에 섰을 때 불현듯 모든 게 다 끝났다는 사실이 실감이 났다. 나는 또다시 실패했다. 이번만큼은 정말 자신 있었다. 연습하는 기간 동안에 자주 지적받았던 곳에서도 충분히 잘했고 저번 시험에서 떨어진 곳도 잘 해내었는데 오히려 시간이 남아서 기대에 차 있었다. 실수했던 것도 끝나기 전 다시 확인을 했었던 곳이다. 그런데도 떨어졌다. 스스로에 대한 혐오와 무능력함에 손이 떨렸다. 불과 몇 개월 전만 해도 행복할 거라 생각했던 미래가 그려지지 않았다. 그저 여기에서 남들은 앞서가는데 나만 계속 허우적거리고만 있을 것만 같았다. 또 1년을 이곳에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자 울컥하는 마음에 목이 메어졌다. 더 이상 생각을 하고 싶지 않았다. 방문을 열었을 땐 이미 해가 저물어 껌껌해져 방안의 크기가 가늠이 되지 않았다. 끝을 모르는 넓은 우주처럼 느껴졌다. 이 안에 오늘 느꼈던 감정들을 모두 풀어놓으며 곧바로 잠에 들었다.
잠에서 깰 무렵, 문 너머에 부모님이 티브이를 보시면서 웃는 소리가 들렸다. 그 틈새로 작은 빛이 들어오자 생각할 틈도 없이 감정이 쏟고 쳤다. 가슴이 답답하고 숨을 쉬기가 힘들었다. 방문 너머의 상황과 이 안에 내 모습은 무언가 어긋나 있었다. 나는 감정적으로 몰아세워져 있는데 이렇게 평화로운 게 옳은 건지. 나도 모르게 방 안에서 목을 조르고 토악질했다. 괴로움에 기침을 해도 큰 벽을 보고 허우적거리는 광대처럼 내 몸짓과 소리가 들리지 않은 것 같았다. 여전한 웃음소리가 마치 비웃는 것처럼 들렸다. 철없이 감정을 털어내며 웃지 말라고 안아달라고 말하고 싶어도 차마 얼굴을 마주할 용기가 나질 않았다. 그저 방문에 기대어 현재 내가 할 수 있는 게 무엇인지 생각이라도 하기로 했다.
당장 12월만 해도 시험을 준비할 돈도 시간도 마음의 여유조차 없었다. 원래라면 이번 시험에서 꼭 붙어서 반드시 가야만 했던 회사에 지원했어야 했다. 설령 내년 3월 무렵에 시험에 붙는다고 해도 모집 공고가 또 언제 올라올지 알 수 없다. 시기를 알 수는 없으나 대체로 1월에만 공채가 올라오고 그 이후로는 추가 모집 외에는 거의 올라오지 않는 곳이었다. 앞으로 몇 년 간 세웠던 계획도 이제는 아무 소용이 없어졌다. 이 자격증은 이곳 이 외에는 크게 효용성이 없기에 다음 공고까지 알바나 단기로 물류센터를 또 전전하며 살아야 할지도 모르겠다. 이런 생활을 대체 몇 년을 더 해야 할지 벌써부터 속이 메스꺼울 정도로 지긋지긋하다. 올해 자격증을 준비하면서 꽤 많은 대출을 받았는데 상환 일정이 다음 시험이랑 겹친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하나하나 풀어가야 할지 막막하다. 이 기분이 지속된다면 또다시 지난 몇 년 간 칩거하던 그때로 되돌아갈 것만 같은 불안감이 든다. 대체 무엇을 위한 1년이었을까 나라는 사람의 쓸모를 정말 모르겠다. 앞으로 한 달 뒤면 서른이 될 것이다. 내 인생 이대로 괜찮을까? 이렇게 무능력한 서른이 되기를 바랐던 건 아닌데, 살다 보니 너무나 많은 실패의 조각들이 하나둘 자리를 잡아가며 내가 있어야 할 자리가 좁혀지고 있다. 이대로 가면 정말 나로서 건강해질 수 있는 인생이 사라질 것만 같다. 그저 사람 냄새나는 곳에서 나 같은 사람도 사회에서 1인분을 하며 천천히 살아가고 싶을 뿐이었는데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죽지 않는 한 내일을 살아가겠지만, 막막한 기분을 떨쳐낼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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