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배의 결혼식장에 다녀왔다
어른에 한 발짝 다가간다는 건 무엇일까?
화성에 가야 한다는 생각 때문인지 악몽을 꾸는 바람에 새벽 5시쯤 눈 떴다. 너무 일찍 일어나 어제의 피로가 채 가시질 않았다. 그래도 피곤한 몸을 어떻게든 일으켜 씻은 뒤 눈썹정리도 하고 손끝부터 발끝까지 오두방정 떤다 싶을 정도로 최대한 정갈하게 정리했다(평소에도 기본적인 관리는 한다!). 가족들은 네가 결혼하냐고 장난 섞인 핀잔을 줬지만, 이렇게까지라도 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아팠던 시기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내 주변을 떠나갔지만 괴로움이 나를 집어삼킬 때마다 낮이고 새벽이고 선배에게 전화하여 도움을 받았다. 귀찮고 번거로우셨을 텐데, 선배는 묵묵히 받아주셨다. 그 외에도 선배가 속한 모임에 초대도 해주셨고 다방면에서 도움을 받았었다. 언젠가 은혜를 보답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차에 선배가 결혼을 한다고 연락이 왔었다. 비록 당장 무언가를 해줄 여력은 없지만, 올해 나는 꽤나 많은 발전이 있었고 최대한 내가 몸도 마음도 건강해졌다는 걸 알려드리고 싶은 마음이 컸다. 가기 전에 시간이 꽤 많이 남아서 롯데시네마에서 예전에 책으로 봤던 <대도시의 사랑법>을 겸사겸사 예매한 뒤 일찍 화성으로 출발했다.
11월의 날씨라고 하기에는 초여름에 가까웠다. 날도 더워서 그런 건지, 화성이라는 글자가 보일 때부터 운전하는 내내 오랜만에 공황장애 증상이 있었다. 도착하면 괜찮을 거라 생각하지만, 영화가 끝날 때까지 지속적으로 괴롭혔다. 영화 내용도 개인적으로 원작에 비하면 불필요할 정도로 영화적 감정호소가 많아서 가뜩이나 집중이 안 되는데 공황증세도 겹치니, 도저히 영화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몇 번을 밖으로 나갔다 들어갔는지 모르겠다. 아직도 장소에 대한 트라우마가 몇년이 지났음에도 나를 너무나 무력하게 만들었다.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감히 극복할 수 없는 단단한 벽을 마주한 것처럼 허탈했다. 주말이라 인근 병원에 가서 임시 처방을 받을 수도 없어서 편의점에서 이클립스라도 입에 욱여넣으며 결혼식장으로 갔다.
결혼식장에는 선배가 걱정했던 것보다 많은 지인이 왔었다. 안심하면서도 당연한 건가 싶었다. 처음 선배에게 청첩장을 받은 날, '아는 지인이 몇 명 없어서 걱정이다'라고 말씀하셨을 때 나는 속으로 당신의 결혼식에 안 오는 사람은 천하의 죄를 저질러 교도소에 있는 사람뿐일 거라고 생각했었다. 주변 사람에게 베풀 줄 알고 분명한 목표가 있는 건강한 삶을 사는 당신을 싫어할 사람이 누가 있을까. 누구나 당신의 결혼을 축복하러 올 거라고 말하고 싶었다.
야외결혼식장 옆, 긴 소파로 된 임시 신부대기실인 곳에서 선배가 앉아 있었다. 사진사는 연신 선배와 지인들을 찍고 있었다. 누구보다 눈부신 웨딩드레스를 입은 선배는 정말 아름다웠다. 많은 신부가 웨딩드레스를 입고 싶은 로망이 생기는지 알 것 같았다. 선배와 사진 찍으려고 줄 서고 있는데, 앞에 모임의 사람들이 있었다. 1년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 취업 준비 때문에 만나지 못해 너무 어색할 것 같았는데 다들 환하게 맞이해 주셨다. 간단한 안부를 나눠 받고 다 같이 선배와 사진을 찍었다. 분명 좋은 결혼식이 될 거라 생각했다.
결혼식은 생각했던 것보다 주요 형식만 갖추고 끝났으나, 짧은 시간 동안 그간 몰랐던 선배의 인간미를 엿볼 수 있어 재밌었다. 입장 전 긴장하신 건지 한숨을 푹 쉬시며 신랑 눈을 마주하는 것도, 드레스가 어색한지 주변을 살피는 표정도, 행진 간 신랑이 먼저 인사하자 아차 싶어 하며 뒤늦게 인사를 하는 모습 등 이런 소소한 행복이 좋았다. 그때 문뜩 결혼식장에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식이 끝나고 뷔페에서 밥을 먹으려는데 다시 속이 울렁거려서 밥을 제대로 먹질 못했다. 선배와 인사하고 조금만 기다렸다가 집으로 갔다. 가는 길 내내 노을이 지고 있어서 그런지, 마음이 몽글거렸다. 11월, 한 해가 저물어가는 늦가을의 어귀에서 선배는 내가 아직 알 수 없는 어른에 한 발짝 가까워졌다. 언젠가 나도 당신을 따라 결혼이라는 것을 할 날이 올까, 나는 아직 어리기만 한 것 같은데 우리도 이제 어른이는 꼬리표가 당연해진 나이가 되었구나 싶었다. 그와 함께 한편으로는 여전히 무력한 이 병을 언제쯤이면 이겨낼 수 있을까 싶은 생각에 조금은 막연한 기분이었다. 이 기분을 이겨내 보고자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일기를 써봐도 일기장 속 모든 문장은 여전히 물음표만 가득했다. 여전히 모르는 것 투성이, 어른이라는 건 참 알다가도 모르겠다. 그저 오늘 느꼈던 행복했던 순간만으로도 충족이 되는 어른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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