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갈등 상황에 놓인 당사자가 되기도 하지만, 갈등을 겪는 사람들 사이에 있을 때도 있다. 그들끼리 주거니 받거니 하던 뾰족한 말이 우리를 향해 방향을 튼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보고 체계 때문에 동료들이 갈등을 겪는 상황
○ 심판의 화법
"그건 아니지. 아냐, 아냐, 그건 잘못된 거야."
"아유 참, 왜 그래~ 그래도 A씨는 B씨를 많이 생각하던데."
당사자는 어느 순간부터 내 말이 들리지 않았다고 밝혔다. 자신을 몰아가는 말에 화가 폭발하기 일보 직전이었기 때문이다. 이렇듯 옳다고 생각하는 길로 상대를 이끌려고 하면 곤란하다. 지극히 주관적인 '심판의 화법'은 실패로 끝날 확률이 높다.
○ 동행인의 화법
"보고 채널이 2개여서 헷갈렸을 것 같아요. 그럴 만하네요."
당사자는 그 말을 듣는 순간 마음에 쌓인 억울함이 녹아내리는 느낌이었다고 회상했다. 내 말이 자신의 마음을 찌르는 것 같지 않다며 신기해했다. 문제가 아니라 사람에게 집중하는 '동행인으로서 화법' 덕분이다.
자신이 충분히 이해받는다고 느꼈던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생각해 보면 저와 갈등을 겪던 그도 자신의 역할에 충실했던 거잖아요. 제가 전달해야 할 부분부터 확실히 파악하고 신경 써서 공유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갈등을 겪었던 상대의 마음까지 헤아리려고 노력한다. 어떻게 가능할까?
앞의 대화에는 없으나 뒤의 대화에 있는 것은 상대의 감정을 헤아리는 과정이었다. '당신 입장이었다면 그럴 수 있겠다.' 당사자가 감정을 헤아리도록 도와주는 편이 관찰자로서 최선이다. 당신 말이 맞다고 무리해서 동조할 필요도 없이 짧고 굵게 건네는 한 마디는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살다 보면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게 의미가 있나 싶은 일들이 벌어진다. 각자 다른 상황과 입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스포츠 경기를 할 때처럼 명확하고 상세한 규칙을 적용하기 어렵다. 비디오 판독을 할 수 없는 노릇이다. 사각지대는 인간관계에도 존재해 왔다.
갈등이 가까이에 있을 때 우리는 2가지 화법을 '선택'할 수 있다. 앞에 있는 사람에게 어떤 말을 건넬 것인가?
오늘의 치트키
상대가 갈등을 겪는다면
○ 동행인의 화법으로 감정을 헤아리는 과정 필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