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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월달 april moon Feb 17. 2020

철학하지 않는 유토피아는 행복이 강요된 디스토피아

『멋진 신세계』|올덕스 헉슬리 | 문예출판사


옛날에는 대단히 어려운 노력을 거치고 
오랜 수양을 쌓아야 겨우 도달되는 미덕이었지. 
그러나 이제 반 그램짜리 (소마) 두세 알만 삼키면 
그러한 수양의 경지에 도달한다는 말일세. 
이제 누구나 군자가 될 수 있다네. 


최근 유발 하라리의 인류 3부작(『사피엔스』, 『호모 데우스』,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을 흥미롭게 읽은 후, 다음 책으로 자연스럽게 택한 것이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다. 유발 하라리가 자신의 책에서 언급하고, 인터뷰에서 추천하고, 최고의 작품이라고 꼽은 책이었기 때문이다. 대체 이 책의 어떤 점이 미래의 인류를 걱정하는 저명한 역사학자에게 영향을 주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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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형 포드로 자동차 대중화에 앞장섰던, 기계 신봉자 헨리 포드가 통합한 세상. 포드 기원을 사용하는 이 세계는 가족이 존재하지 않는다. 한 번에 다수의 애인을 만나도 상관없지만 여성들은 절대로 임신할 수 없다. 심지어 어머니, 아버지라는 호칭은 불결함으로 인식된다. 생명은 철저한 관리 감독을 통해 병 속에서 대량생산 되며, 생산 후에는 계급(알파, 베타, 감마, 델타, 앱실론 등등)에 맞는 교육과 훈련으로 통제된다. 겉모습이 늙지 않으며, 죽음은 화장 후 인(P)을 남겨 식물에게 거름이 되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이들에게 행복은 감정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엄격한 통제에서 온다. 깨끗하고 일사분란하게 맡은 바 직분을 다 하는 것이 미덕이다. 이곳에서 ‘만인은 만인의 것’일 뿐 개인은 없다. 어떤 고민도, 선택도, 불행도 존재하지 않는 곳. 아니, 고민과 선택과 불행이 닥칠 것 같을 때마다 소마(신경안정제+수면제)가 해결해주는 곳. 아 얼마나 멋진 신세계인가! 


그러나 어디에나 돌연변이가 있듯이, 그 멋진 곳이 괴롭거나 의문스러운 이들이 있다. 알파 계급이지만 신체적 결함으로 존재를 고뇌하는 버나드 마르크스, 시와 노랫말을 쓰며 점점 인간적 감정을 품게 되는 버나드의 친구 헬름홀츠 왓슨, 그리고 원주민 보호구역에서 우연히 문명사회에 발을 들인 야만인 존이 그들이다. 특히 어머니의 뱃속에서 태어난 존은 문명세계를 받아들일 수 없다. 세익스피어의 작품으로 글을 배운 그는 영원한 사랑을 약속하지 않는 남녀관계를 혐오하고, 어머니의 죽음을 관람하는 아이들에 분개한다. 존은 총통에게 호소한다.  


“저는 안락을 원치 않습니다. 저는 신을 원합니다. 시와 진정한 위험과 자유와 선을 원합니다. 저는 죄를 원합니다.” 
“그러니까 자네는 불행해질 권리를 요구하고 있군 그래.”


『멋진 신세계』가 발표된 1932년은 인류 역사상 가장 급변하는 시기였다. 유례없는 세계 전쟁을 치른 폐허 위에서 제국주의가 득세했고, 공장은 대량생산 체제에 들어서 인간이 기계로부터 위협받던 때였다. 특히 세계1차대전을 경험하고 목도했던 사람들에게 전쟁의 공포는 남달랐다. 병사들이 육탄전을 벌였던 이전과 달리 과학을 등에 업은 최신 무기들에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것은 그야말로 생지옥이었을 테니. 그런 과학이 가진 공포를 작가적 상상력으로 그려낸, 인간다움을 잃은 미래 세계는 전쟁만큼 끔찍하게 다가온다. 그 지점이 바로 인간이 신의 경지에 오르게 될 미래를 우려하는 유발 하라리와 일맥상통한다.


21세기 현재. 우리는 과학혁명의 수혜를 입어 우주 탐사를 진행 중이고, 생명체 복제에 성공했으며, 스마트폰으로 전 세계와 소통하고 있다. 그뿐인가. 포드는 상상도 못했을 자율주행차가 거리를 메우기 직전이다. 인간이 신이 될 것이라는 일부의 전망도 허무맹랑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3세대도 전에 쓰인 『멋진 신세계』가 두려움으로 폐부를 찌르는 이유다. 


 과학이 완벽한 사회구성원을 생산하기에 이르렀다면 철두철미한 수면학습은 폭력과 협박 없이 유토피아를 건설하는데 유효했다. 계급과 기계적 삶을 세뇌시키는 과정에 공을 들임으로써 누구도 의심하지 않고 질문하지 않는 행복을 가져온 것이다. 우리 주변에서도 의심과 질문을 원천봉쇄하는 식의 유토피아를 꿈꾸는 ‘멋진 신세계’가 몇몇 발견된다. 김일성을 숭배하는 북한이라든가, 노조를 금하는 삼성이라든가, 성조기를 흔드는 태극기 부대라든가. 물론 그 세계를 옹호하는 이들보다 비난하는 이들이 많다고 하더라도 ‘돈’이라는 ‘소마’에 중독된 21세기는 인간다움을 지속적으로 상실해가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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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0년 전,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불경죄로 사형됐다. 젊은이들을 향해 ‘행복이 뭐라고 생각하는가?’, ‘기득권에 대한 불만은 없는가?’와 같은 질문을 끊임없이 던진 것이 불경이었다. 누군가는 불편하고 거북했을 그 질문들. 인간답기 위하여 앞으로 수천 년이 더 흘러도 필요할 그 질문들. 역사 곳곳에 소크라테스와 같은 이들이 존재했다. 질문이 끊임없이 되살아나고 묵살당하기를 반복했다는 뜻이리라. 『멋진 신세계』를 통해 철학하는 인간들이 만드는 유토피아를 꿈꾸며, 인간답기를 포기하지 않으려는 노력에 희망을 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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