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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릭 Oct 18. 2023

29년의 기다림

"암흑이라는 것은 결국 언젠가 빛을 만나게 되고요, 오래 기다렸기 때문에 더 그 찬란한 빛을 마주하게 됩니다."


LG TWINS의 2023년 정규시즌이 마침내 우승이라는 타이틀에 닿았다.

원정 게임을 하러 사직으로 이동하던 버스 안에서 우승을 확정 짓게 된 선수들은 잠실 홈경기에서 팬들과 함께 우승 세리머니를 만끽했다.


29년의 기다림.


그 목마름과 감격에 벅차오른 팬들은 선수들과 함께 우승의 감격을 나누고 싶어 너나 할 것 없이 구장으로 향했고 매진과 고가의 암표가 넘쳐나는 그날의 잠실에 나는 함께 하지 못했다.

대신 치솟는 광대와 내려갈 줄 모르는 입꼬리를 고정한 채 TV 속 잠실야구장의 모습에 빠져들었다.


경기 종료 후,

144경기의 길고 지난한 세월만큼이나 긴 현수막이 그라운드를 가로질러 펼쳐지고,

우승 티셔츠와 모자로 단장한 선수들이 그라운드로 쏟아져 나왔다.

하얗지만 화려한 우승 앰블럼이 새겨진 티셔츠에 덤덤한 척 하지만 상기된 기분이 그대로 느껴지는 표정으로 팬들을 바라보는 선수들의 눈빛엔 행복이 그득하다 못해 넘쳤다.

엘지가 암흑기에서 전성기로 향해가는 동안 본인 또한 암흑기에서 전성기를 맞이한 주장 오지환은 팬들에게 인사를 하러 나오면서부터 붉어진 눈시울로 울먹거렸다.

원정에서 샴페인 샤워를 할 때는 마냥 신났지만 매해 희로애락을 함께 했던 팬들 앞에 서니 어리광이 부리고 싶었던 걸까.

어리광이 아니라 자신과 같은 마음을 가진 팬들임을 알기에 미안하기도 좋기도 해서 울었던 거 같다.

한국시리즈 우승을 위해 남은 4승을 꼭 달성하겠다 다짐하는 그의 단단한 말투에 나는 너무 미더워서 울컥했다.


아마도 그때부터였던 거 같다.

웃는 얼굴에 눈물이 쏟아져 내리기 시작한 게 말이다.

신나 하는 선수들의 웃는 얼굴이 하나하나 눈에 들어올 때마다 눈물은 더 거세게 흘렀다.

감격에 오열하는 팬들의 모습을 마주하면 눈물의 강도는 걷잡을 수 없이 세졌다.


1994년, 남편과 연애를 하면서 접하게 된 LG트윈스의 야구는 세련되면서 박진감 넘쳤고 재미가 있었다.

그해 LG는 "신바람 야구"에 딱 맞는 플레이를 매 경기 펼쳤다.

외야에 앉아서 싸 온 도시락을 까먹으며 선수들의 뒤태를 주로 보고 있어도 너무 재미있고 신이 났다.

지는 경기 또한 결코 섭섭하지 않게 졌다. 져도 신나게 즐기고 웃으면서 집으로 갈 수 있을 정도였다.

그렇게 한 시즌동안 알차게 경기한 LG는 시즌 우승은 물론 한국시리즈 우승까지 거머쥐며 두 번째 통합 우승을 이뤘다.

그때의 나는 마냥 신나고 좋기만 했던 거 같다.

울컥임이나 눈물 없이 그저 웃고 또 웃었다.

그렇게 풋풋했던 LG 사랑의 시작은 극강의 행복이었다.


이후,

나는 1년 차 사랑에서 느꼈던 극강의 행복을 다시 느끼기까지 29년의 세월을 견뎌야 했다.

너무 어두워서 그 끝이 가늠조차 되지 않았던 길고 긴 암흑기.

LG는 DTD (Down Team is Down)라는 타팬들의 놀림이 너무 억울했던 아픔.

될 듯 될 듯 안 되는 LG에 대한 안타까움.

이런 것들이 버무려진 긴 세월이 가고 또 갔다.

그리고 2022년, 드디어 때가 왔구나 싶었던 그때 다시 마주하게 된 좌절.

작년 한국시리즈 좌절 땐 너무 힘들어서 진짜 하루하루 온몸의 세포가 분열 폭파되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그래서 올해는 최대한 내 감정도, 마음가짐도 조심 또 조심했다.

설레발 조심!

엘지팬들이라면 다들 144경기를 진행하는 내내, 마음속에 품었던 말이었으리라.


그렇게 경기 없는 월요일이 제일 평화로웠던 2023년을 버티고 기도하다 보니 드디어 LG는 정규시즌 우승에 올랐다.

매직넘버를 1개 남겨 둔 시점에서, NC와 KT가 지면서 LG의 우승이 확정되는 순간!

나는 코를 잡고 울음을 삼켰다.

한참을 코를 잡고 욱욱 울음을 자제하는 나를 보며 아들은 왜 우느냐 타박을 했고, 나와 같은 맘의 남편은 당연히 눈물 나지 하며 식탁 위에 배달되어 온 족발을 세팅했다.


방송 말미, 캐스터님의 마무리 멘트가 흘러나왔다.


"암흑이라는 것은 결국 언젠가 빛을 만나게 되고요, 오래 기다렸기 때문에 더 그 찬란한 빛을 마주하게 됩니다."


맞다.

내 가슴에 울컥이는 이것은 암흑을 견뎌낸 애정이 발하는 빛인 것이다.

그리고 우승을 만끽하는 선수들의 표정에서 그들이 견디고 이뤄낸 것들이 멋짐으로 빛을 내는 것이다.


아직 하나 더 넘은 목표.

2023년 한국시리즈 우승.

2023년 통합 우승.


다시 한번 담담히 마음을 다잡아 본다.

그리고 굳건히 믿어본다.


할 수 있지?

그대들은 무적 LG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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