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그레이스샘 Aug 19. 2024

가보지 못한 길

강금당한 나의 꿈

동녘바다에서 떠오른 태양이 방 안 가득 밀려오고서야  눈을 떴다. 

'아무도 나를 말릴 수 없어. 난 반드시 갈거야'

밤새 울어서인지 늦게 눈이 떠졌다. 서둘러 집을 나가야한다는 마음에 벌떡 일어서자 검은 머리털이 후두둑 떨어졌다. 머리에 손을 대자 듬성 듬성 잘려진 머리카락이 손에 잡혔다. 


집안 일에 마음을 못 붙이고 선머슴아처럼 동네를 휘젓고 다니는 막내딸 뒤를 밟은 엄마는 드디어 나의 그간의 행적을 확인하고 말았다. 

그즈음 경주중학교로 진학을 한 동네 친구를 따라 경주 나들이가 잦을 때였다. 교복을 입고 학교를 가는 친구를 따라 짧은 한복차림으로 학교주변을 어슬렁거리는 것이 나의 일과였다. 그러다 발견한 것이 바로 전봇대에 붙은 포스터였다. 


'여군 모집' 

국민학교(초등학교)졸업이상학력이면 된다는 큼직한 포스터가 나의 가슴을 뛰게 했다. 주변사람 몰래 포스터를 뜯어내 주머니에 넣었다. 그런 나를 본 친구는 군인이 된 네가 너무 멋질 것 같다며 더 호들갑을 떨었다. 

'그래, 난 변화가 필요해. 군인이 되면 집을 떠날 수 있잖아.'


친구와 난 포스터에 쓰여진 접수처 주변을 어슬렁거렸다. 

-니네 엄마한테 먼저 말해야지? 

-무슨 소리야? 그럼 보내주시겠냐? 아마 대갈통이 저 군인마냥 싹 밀리고 말껄

군인이 되겠다는 마음이 커서인지 이젠 동네 군부대가 마치 내가 갈 곳인냥 하루에도 수십번 주변을 어슬렁거렸다. 그런데 아무리봐도 여자군인은 보이질 않았다. 

'여자 군인이 적으니깐 모집하는거지!  이번이 기회야!'


그런 나의 계획을 들키고야 말았다. 몰래 감추어둔 포스터가 먼저 발각되고 그런 나의 뒤를 밟은 엄마의 용의주도함으로 인해 나는 내 방에 갇히고야 말았다. 남편과 큰 아들을 먼저 보낸 이후 자식에 대한 양육보다 강박증이 더 커진 엄마였다. 시퍼런 군복을 입고 사내들 사이를 휘젓고 다니는 딸은 자신이 그리는 미래 안에는 없었다. 

-살림이나 배워서 시집갈 생각이니 하지, 이게 무슨 광대짓이야?

엄마는 포스터를 구기는 것도 성에 안찬 지 박박 찢어서 내 얼굴에 던졌다. 


그 다음이 머리카락일줄이야!

나의 흑단같이 검은 긴 머리는 베어놓은 짚단 처럼 여기 저기 잘린 채 방 안 여기 저기 뿌려져있었다. 

짐승같은 소리가 방안을 뚫고 나갔지만 어느 누구도 반응하지 않았다.

바로 그 날이 여군 군무원 신청서를 제출하기로 한 날이었다. 

'어차피 군인되면 머리를 자를 생각이었어.' 

눈물로 얼룩진 얼굴을 훔치고는 방문을 세차게 밀어보았다. 문이 잠겨있었다. 

그렇게 나는 순식간에 머리가 밀리고 감금되었다. 


등교 길에 함께 경주를 가려고 대문 앞을 서성거리던 친구는 휫바람을 크게 세번 불어주고는 사라졌다. 짐승처럼 울부짓는 나의 소리에 화답이라도 하듯 너무 슬프게 들렸다. 혼자 중학교 간 것이 미안하다며 자기가 배운걸 나에게 다 가르쳐주겠다던 친구는 그 날 이후 보질 못했다. 꼭 군인이 되어 너보다 더 멋진 여자가 될거라던 나를 환하게 웃음으로 응원해주던 친구였다. 


엄마는 무슨 확신으로 나의 길을 그렇게 강하게 막았을까?

나라면 엄마처럼 하지 않았을까? 


미지의 세계로 나가는 첫번째 출구인 중학교 진학이 막혔지만 여군지원이 나의 새로운 출구가 될 수 있다는 꿈에 부풀었던 나는 엄마의 신념과의 전쟁에서 패하고야 말았다. 

그 패배는 가보지 못한 길에 대한 아쉬움으로 남아 삶의 길목길목 자주 조명되었다.  나뿐 아니라 엄마에게서도. 첫 딸을 낳고 고개를 떨구고 있던 그 어느날, 엄마는 혼잣말처럼 후회의 말을 흘렸다. 

-군에 보낼걸......


부모라고 자식을 다 알지도 세상을 올바르게 읽는 것도 아니다. 자신의 경험 렌즈로만 세상과 자식을 보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너무 대담하게 사랑과 보호라는 미명아래 자신의 생각을 강요한다. 

나의 엄마가 그랬듯이 나 또한 자식에게 알게 모르게 그랬다. 


아이들은 미숙하지만 가끔은 그 꿈이 어른을 깨우기도 한다. 어른이 발목잡혀 아무런 시도도 하지 못하고 있을 때 아이들은 몸으로 생에 도전장을 던진다.  

그럴 때 어른은 어떻게 반응해야할까?

어른은 아이의 꿈에 검사가 되려하지말고 변호사가 되야한다. 

판단과 분석보다는 지지와 격려가 더 중요한 존재말이다. 

꿈에 반응하는 아이도 어차피 판단과 분석이 중요한 걸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알게되기 마련이니깐. 


아이가 아주 간절히 바라는 무언가가 있다면 응원해주라. 

비록 그것이 실패로 가는 길이 뻔히 보일지라도.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오랜 경구가 아니라도 인생을 살아본 우리는 모두 그걸 알고 있지 않은가!


그럴 때 아이는 한 뼘 더 성장한다. 






이전 02화 불행은 도미노처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