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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이 이혜림 Jul 22. 2022

Day24. 수녀원 도난사건

산티아고 순례길 이야기 



5유로짜리 공립 알베르게. 이곳은 수녀원에서 운영하는 알베르게다. 오래되고 낡은 건물이지만 먼지 한 톨 없이 깨끗하고 정갈하게 관리 되어 있는 모습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다른 알베르게와 다르게 모두 단층 침대로 이루어져 있어 위층 아래층 침대를 신경 쓰지 않고 마음 편히 내 공간을 누릴 수 있다는 점도 좋았다. 특히 온화한 표정의 수녀님들이 함께 계셔서 그런지 그냥 이상하게 다른 나보다 마음이 편안했다. 대부분의 순례자도 이곳에 와서 나와 비슷하게 느꼈나 보다. 모두가 경계와 긴장을 풀고 조금씩 느슨해졌다. 그리고 그 틈에 아무도 없는 룸에서 충전 중이던 두 개의 핸드폰이 도난 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오후에 룸을 들락날락하는 내내 눈에 띄었던 핸드폰 두 개를 떠올렸다. 평화롭던 수녀원은 이내 소란스러워졌고 경찰이 찾아왔다. 순례자 행세를 하며 공립 알베르게만 공략해 고가의 물건과 현금을 훔쳐가는 사람이 있다고 했다. 아마 핸드폰 도둑을 잡기는 힘들 거라는 말도 덧붙여졌다.


얼마 안 있어 수녀원 곳곳을 돌아다니며 애처로운 표정으로 도움을 청하는 여자를 보았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누군가 순례자가 샤워하는 틈을 타 가방 깊숙한 곳에 숨겨둔 현금을 몽땅 훔쳐 갔다고 했다. 모두들 핸드폰 도둑과 동일 인물일 거라 수군거렸다. 현금을 도둑 맞은 순례자는 몇 개월간 모아온 돈을 가지고 아주 빠듯하게 순례를 이어오고 있는 가난한 학생이라고 들었다. 모든 전의를 상실하고 울고 있는 청년을 위해 여자는 조금씩이라고 도와달라며 복도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도둑을 잡아 돈을 되찾을 수는 없으니, 다른 순례자들에게 도움을 받기로 한 것이다.



"제 친구를 위해 우리가 조금씩 돈을 모아준다면 친구는 순례 여정을 끝까지 이어갈 수 있어요. 한 사람당 1유로씩 100명이 모아 주면 100유로라면 큰 돈이 돼요. 조금만 도와주세요."



안 지 며칠 안 됐다는 친구를 위해 이렇게 온 방을 돌아다니는 그녀의 용기가 멋졌다. 더 멋진 장면은 그 다음에 나타났다. 도난 당한 핸드폰의 주인인, 방금 전까지 여기저기 전화하느라 정신 없던 아저씨가 10유로짜리 지폐를 꺼내 들고 현금을 도난 당했다는 청년을 찾아 다니고 있었다. 아, 마음이 찌릿찌릿. 이상했다.


그 모습을 보자마자 돈을 건넬가 말까 망설이고 있던 나는 얼마 안 되는 돈을 가지고 수녀님을 찾아갔다. 청년에게 직접 주는 것보다 수녀님을 통해 전하는 편이 훨씬 부드러운 방법일 것 같았다. 수녀님은 이미 나와 같은 마음으로 본인을 찾아온 순례자가 많다고 했다. 청년에게 건네 줄 하얀 봉투를 손에 꼭 쥐고 있던 수녀님은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안아주셨다. 그저 아주 작은 것을 나누었을 뿐인데, 되려 내가 더 많은 것을 받은 기분이었다. 함께 길을 걷는 동지들 덕분에 그 청년이 다시 힘을 내어 자신의 길ㅇ르 마저 완주할 수 있을 것 같아 다행이었다.


그날 밤, 자기 전에 우연히 주방에서 현금을 도난 당했다는 그 청년을 만났다. 내향적인 나는 망설이다가 청년 옆에 용기 내어 앉았다. 하고 싶은 말을 있다고 했다. 언뜻 보기에도 속이 빈약해 보이는 샌드위치를 먹다 말고 청년은 나의 눈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내가 전할 말을 기다렸다. 그때 그의 눈은 참 맑았다. 나는 솔직하게 오늘 느꼈던 마음을 전했다.



"내게 새로운 감정을 알게 해줘서 고마워. 나는 네가 꼭 이 길을 완주했으면 좋겠어. 잃어버리는 것을 걱정하지 마. 너의 곁엔 언제나 지금처럼 함께 걷는 사람들이 있을 거야."



그는 나를 가볍게 포옹해주었고, 연신 고맙다는 말을 건넸다. 어쩐지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위로를 주려고 했는데, 내가 더 큰 위로를 받은 기분이 들었다. 순례길은... 참 신기하고도 이상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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