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맥시멀리스트를 만났다

by 메이 이혜림

친구가 작년 여름에 집을 사고 유주택자가 되었다.

인테리어를 하면서 한참 집 꾸미기에 재미 들렸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얼마 뒤 집들이에 초대를 해주었다.

가기 며칠 전 뭐 필요한 거 없냐는 나의 질문에 친구는 이렇게 답했다.


“나 맥시멀리스트라서 집에 없는 거 없이 다 있어. 그냥 와.”


맥시멀 리스트의 집에 초대 받은 미니멀 리스트라니!

그 날 이후 어쩐지 친구 집에 가는 날이 더 많이 기다려졌다. 나와 완전하게 다른 취향을 가진 이의 집이니까. 어떤 집일지, 어떤 느낌일지 친구의 생활이 궁금했다. 집들이 선물은 먹을 것을 사가기로 했다. 내가 고심해서 실용성 있는 물건을 고른다고 한들, 맥시멀 리스트라는 친구의 집에는 분명 겹치는 물건이 있을 게 뻔했고, 예쁜 쓰레기로 전락해버릴 선물은 하고 싶지 않았다. 음식은 먹으면 흔적도 없이 사라지니까, 이보다 더 미니멀 리스트다운 선물은 없을 것이다. 카스테라 빵과 수입 초콜릿 세트를 들고 친구 집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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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을 열고 들어서자 기분이 좋아지는 은은한 향기가 풍겼고, 거실의 커다란 창으로는 커다란 산과 푸릇푸릇한 나무가 가득 차있었다. 이 집에 이사 온 이후로 어디 가고 싶지가 않다고, 집에 가만히 있게 된다는 친구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친구의 집은 성수기에는 몇 달 전에 시도해야 겨우 예약에 성공할 수 있을 것 같은 인기 많은 독채 포레스트 뷰 감성 숙소같았다. 좋아하는 물건들로 가득 채우고 예쁘게 꾸미고 사는 집은 친구를 닮아 정말이지 너무 사랑스럽고, 예뻤다.


그리고 친구의 말대로, 친구의 집에는 모든 것이 다 있었다! 필수적인 가전가구 뿐만 아니라 2030 여성들에게 로망인 브랜드의 살림기기들을 비롯해 처음 보는 독특하고 신기한 물건들도 많았다. 세 가지 향의 인센스 스틱을 차례로 태우고, AI스피커에게 원하는 음악을 틀어달라고 주문을 넣고, 건조기에서 갓 나온 뽀송한 호텔 수건의 향을 맡으며 그렇게 나는 신문물을 찬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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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무조건 밖에서 사 먹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음식들을 집에서 척척 만들어낼 수 있는 물건들이었다. 꼭 어릴 때로 돌아가 소꿉놀이를 하는 기분이 들어 신이 났다. 타코야키 기계로 타코야키를 만들어 먹었고, 와플 기계로 크로플을 구웠고. 카페처럼 하겐다즈 아이스크림을 올리고 메이플 시럽을 뿌려서 예쁜 포크와 나이프로 잘라 먹었다. (친구가 줄줄이 읊던 크로와상 생지 브랜드를 그곳에 앉아있던 그 누구도 알아듣지 못했다.) 원두도 세 가지나 있어 각자 취향을 골라서 드립 커피로 내려 마셨다. 원두는 제일 작은 용량을 사서 다 먹고 나서야 새로운 원두를 구입하는 나로서는 친구 집이 보물창고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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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 카페와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이었던 친구의 집은 밤이 되니 또 다른 공간으로 변모했다.


“보이차 마실래?”

그 말 한 마디에 친구의 집은 어느새 호젓한 찻집으로 변신.

다도세트 앞에 차례로 앉으니, 세상 힙한 물건들 다 사라지고 갑자기 효리네 민박에서 이상순 씨가 고즈넉하게 앉아있던 우아하게 차를 마시는 그런 집이 되었다. 지방을 분해해 준다는 말에 친구가 주는 보이차를 덥석 덥석 받아서 연거푸 몇 잔을 마셨다.


시간이 굉장히 편안하게 흐르는 느낌이 들었다. 분명 친구의 집에는 빈 공간이 없을 만큼 물건으로 가득 차 있었지만, 물건에 점령 당해 살고 있던 나의 과거와는 무척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많은 물건은 오직 답답함과 스트레스만을 만들어낸다고 생각했는데, 친구에게는 모든 물건이 기쁨이자 행복의 원천처럼 보였다.


더는 뺄 수 없을 만큼 더 간결하고, 더 단순하게. 최소한의 물건으로 적게 가지고 사는 라이프 스타일 속에서 내가 행복과 만족을 느끼는 것처럼 친구는 좋아하는 물건들로 집안을 가득 채우고 예쁜 것, 갖고 싶은 것, 신기한 것들을 구입하고 써보며 누구보다 즐겁게 살고 있었다. 인생을 재미나게, 진짜 진짜 행복하게!


하루가 온통 낯설었고, 새로웠고, 신기했다. 예쁘고, 아름답고, 즐거웠다. 그리고 맑고, 신선했다. 다른 이의 집을 경험한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미니멀이든, 맥시멀이든 우리가 물건을 대하고 취하는 방식은 우리가 행복을 느끼는 쪽이어야한다는 진부한 진실을 새삼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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