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에 맞는 집에서 산다

by 메이 이혜림

여행 간다고 집을 처분하고 한국에 돌아와서 다시 집을 구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남편의 직장이 정해지고 그 근처에 집을 구하기 위해 매일 부동산을 돌아다녔다. 우리가 가진 돈으로 머물 수 있는 집의 상태는 생각보다 열악했다. 햇빛이 하나도 들지 않아 퀘퀘하고 스산한 1층 빌라부터 담배 냄새에 찌들고 곰팡이가 가득 피어있는 노후된 주택까지, 내 마음에 드는 집은 하나도 없었다. 일주일 넘게 직장 근처를 샅샅이 뒤져보았지만, 수준은 모두 비슷했다. 게다가 집을 구하러 다니면서 보는 눈은 나날이 높아져갔다.


마침 집을 구하던 시기에 부동산 정책이 바뀌면서 집값이 크게 올랐고, 그 여파로 전세 매물이 없었다. 여기저기서 부동산 이야기로 떠들썩했고, 더 늦기 전에 집을 사야 한다는 분위기가 삽시간에 퍼졌다. 너도 나도 ‘영끌’해서 집을 샀다는 후기가 곧잘 들려왔다. 부동산에서는 우리도 이왕이면 이번에 대출을 일으켜 집을 사라고 부추겼다. 그게 돈 버는 길이라고 했다.


마음이 흔들렸다. 나는 언제나 내가 가진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하며 살았는데, 집을 보러 다니면서가진 것이 한없이 부족하게 느껴졌다. 가진 양은 똑같은데 마음이 괴로워졌다. 빈곤하다 느껴졌고, 더 빨리, 더 많은 돈을 벌어야 한다는 생각에 조급해졌다. 집값이 더 오르기 전에 우리도 어떻게든 대출을 끌어모아 집을 한 채 사둬야 마음이 편해질 것 같았다. 매일 밤마다 발을 동동 구르던 나에게 제동을 걸어준 것은 다름 아닌 남편이었다.


“워워, 여보. 세계여행하며 배운 가치를 떠올려봐. 집 없어도 우리 지금까지 충분히 만족하며 잘 살았고, 앞으로도 그럴거야. 당장 집을 못산다고 해서 우리가 가진 게 충분하지 않은 게 아니야. 알고 있잖아.”




IMG_2388.JPG 캠핑카에 간소한 살림살이로도 너무 충분해서, 되려 놀랐던 한 달간의 뉴질랜드 캠핑카 여행


남편의 말에 한껏 팽창된 나의 마음이 비로소 안정을 찾았다. 현 상황에서 대출을 자동차 기름 가득 채우듯 풀로 당겨 받는다면, 근처에 아주 오래된 구축 아파트 한 채 정도는 살 수 있다. 그러나 스스로 무리라는 걸 알면서, 감당 안될 만큼 터무니 없이 많은 빚을 지어가면서까지 그래야 할까. 현실적인 부분들을 헤아려보니, 지금 당장 집을 사고 싶은 내 마음은 분수에 맞지 않는 욕심이라는 게 느껴졌다.


집을 사기(buy) 위해서 집에서 살아갈(live) 나의 삶을 쥐어짜고 싶진 않다. 삶을 살기 위해 집을 사는거지, 집을 사기 위해 삶을 살아가는 게 아니다. 내 삶의 중심을 다시 바로 세웠다. 우리의 삶에는 언제나 여유와 빈틈이 함께 하기를 바란다. 일상의 여유 제 1조건은 여유 있는 통장 잔고. 그게 무리한 대출 빚과 이자를 떠안고 싶지 않은 이유다. 다른 사람들과 다른 노선을 걷게 될지라도, 지금의 이 선택이 혹여라도 미래의 우리를 힘들게 할지라도 포기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현재 내가 원하는 것은 분명하나, 수중에 그것을 가질 만큼의 돈은 없다. 그렇다면 내가 할 수 있는 선택은 한 가지다. 원하는 것을 가질 수 있을 만큼의 돈을 모을 때까지, 분수에 맞는 집에 사는 것. 욕심을 비우고 지금 분수에 맞는 집을 골랐다. 신축 건물, 투룸 이상의 집, 직장까지 걸어서 출근하는 가까운 거리 등, 수많은 조건을 포기해야 했지만 덕분에 꽤 마음에 드는 작고 깨끗한 집을 구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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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다시 시작된 우리 부부의 원룸 생활. 이삿짐을 들여오기 전날 입주 청소를 위해 간단한 소지품만 챙겨서 미리 왔다. 종일 청소를 하고, 캐리어를 엎어놓고 밥상으로 쓰고, 요 하나 깔고 수건을 베개 삼아 잠을 청했다. 없는 게 많아 불편할 법한 상황에서도 이상하게 마음이 편안했다.


외부의 광고와 자극, 경쟁과 비교에 시선을 두고 지낼 때는 채워지지 않는 갈증과 욕망이 생긴다. 아무리 더 좋은 것, 비싼 것, 유명한 것을 얻게 되어도 온전히 만족하기가 힘들다. 부동산을 알아보며 나의 시선은 줄곧 밖을 향했다. 너도 나도 ‘영끌’해서 집을 사는 분위기 속에서 나 역시 욕망쟁이가 되어 마음이 조급하고 불안했다. 작은 원룸으로 이사 오고 나서, 한동안 다시 나의 중심을 오직 내 안에 세우는 시간을 보냈다. 강렬하게 원했던 것을 포기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꽤나 괴로웠는데 막상 내려놓고 나니 아 모두 나의 욕심이었구나 깨닫는다.


새로 이사온 곳은 지내보니 안전하고 편안한 동네였고, 집은 산뜻하고 깔끔했다. 부담스럽지 않은 집세를 내며 편안히 쉴 수 있는 공간에서 살고 있다. 매달 버는 돈으로 충분한 저축을 하면서도 먹고 싶은 것도 사 먹고 하고 싶은 것은 할 수 있는 생활. 무리 없이, 편안한 마음으로 사는 삶. 요즘은 이거면 이미 충분하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나의 중심이 내 안에 머문다면, 나는 언제나 이것으로 충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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