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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신혼록 0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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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상욱 Mar 17. 2023

신혼록(神魂錄)

04_ PM 20:25 일요일. 기록 4시간 전(3/3)

 “괜히 집주인이 해 놓은 비밀번호로 해 놔 갖고….”

 얼른 전자 도어 록 비밀번호를 바꾼 뒤에 다시 화장실로 들어왔을 때 아내는 눈을 감고 욕조에 누워 있었다. 

 “일어나라. 장난치지 말고 일어나라고!”

 아내를 있는 힘껏 흔들었지만 그녀는 온몸에 힘을 쭉 뺀 채 아무 미동도 하지 않았다. 왠지 모르게 좀 전에 부동산 중개업자가 한 말들이 머릿속을 스쳤다. 

 ‘제기랄, 괜히 재수 없는 소리를 들어서 찝찝하게….’

 그때 갑자기 머리털이 설 정도로 오싹했다. 혹시나 해서 주변을 둘러봤지만 역시나 아까와 똑같이 아무도 없었다. 결국, 아내를 대충 씻기고 침대에 눕혔다. 

 “되돌리기에 너무 늦어서 그러는 것 같은데 용서해 줄 테니깐 이제 그만해라. 마지막 경고야.”

 아내의 감은 눈이 마치 대답이라도 하듯이 위아래로 움직였다. 그러자 괘씸한 생각이 들었다.

 “좋아. 끝까지 해 보자 이거지!”

 나는 냉장고에서 얼마 전에 선물로 받았던 레드향을 꺼내 들었다. 얼른 껍질을 뜯은 뒤에 손가락으로 그녀의 눈꺼풀을 열고 즙을 튀기기 시작했다. 

 “이래도! 이래도 안 일어날 거야!”

 아내는 끝까지 잘 참아 내는 듯 보였다. 어느 순간 상황이 심각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자 갑자기 공포가 찾아왔다. 

 ‘어떡하지. 어떻게 어떡하지? 침착하자. 어떻게 침착하지?’

 혼란에 빠져 아무 행동도 하지 못하는 그때 아내가 토악질을 해대기 시작했다. 그녀가 침대에 누운 상태라 이물질은 마치 분수처럼 천장까지 솟아올랐다. 너무 놀란 나는 어쩔 줄을 몰라서 뒤로 발라당 누운 채로 그 모습을 넋을 놓고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얼굴에 잔뜩 토사물을 뒤집어쓴 그녀가 고개를 내 쪽으로 돌렸다. 빨개진 두 눈에 그렁그렁 맺힌 피눈물이 옆으로 흘렀다. 그리고 아내는 떨리는 입에서 힘겹게 한마디를 뱉었다. 

 “… 뭘 봐?”

 이 얘기는 아내가 항상 장난처럼 내게 하던 말이었는데… 예상외로 일이 빠르게 원래대로 돌아오는 듯했다. 정신이 돌아왔는지 아내는 나를 알아봤다. 그리고 내게 지금까지 있었던 자초지종을 듣고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화장실에 들어간 이후로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나는 내심 공포에 질렸다. 가끔 술을 마시고 집 비밀번호를 잊어버려서 10분 동안 밖에서 기다린 적은 있었지만 이렇게 자기가 한 일에 대해서 까맣게 모르고 있었던 적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내 얘기를 듣고 그녀가 뱉은 말은 나를 더 충격으로 몰아갔다. 

 “씨발… 존나 배고파.”

하긴 노란 물이 나올 정도로 토를 했는데 배가 고플 만도 하다고 생각했다. 결국, 가스레인지에 물을 올리고 아내가 샤워를 할 동안 천장과 침대에 묻어 있는 이물질(?)들을 치웠다. 청소를 다 마쳤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헛구역질이 올라왔다. 하지만 가장 찝찝한 것은 바로 좀 전에 아내가 귀신이 보인다며 가리켰던 방구석이었다. 청소를 하면서도 정말 이 방에 뭔가가 있는지 몇 번을 돌아봤는지 모른다. 몸이 허약하면 헛것이 보인다는 말이 떠올라 재료를 찾아봤다. 요리를 자주 하지 않는 터라 텅 비어 있는 냉장고에서 딱히 뭔가를 찾지는 못했다. 이때, 작년 아버지 제사 때 올리다 남은 꽝꽝 얼린 북어를 발견했다. TV 프로그램에서 강아지들에게 북엇국이 최고의 보약이라고 나왔던 편을 본 적이 있어서 쾌다 싶었다. 결국, 북엇국 대신 북어 라면을 끓여 주자 아내는 젓가락을 몇 번이나 떨어뜨리며 허겁지겁 그것을 먹었다.

 “얼마나 배고팠으면 젓가락을 집을 힘도 없고… 이거 먹고 얼른 힘내.”

 아내는 걸신들린 사람처럼 미친 듯이 라면을 흡입하기 시작했다. 아니, 먹는다는 것보다는 입안에 음식들을 쑤셔 넣는다는 표현이 더 맞겠다. 마치 TV 프로그램에서 강아지들이 밥통에 코를 박고 먹는 모습이 떠오를 정도였으니 말이다. 나는 너무도 낯선 그녀의 모습을 멍하니 쳐다봤다. 사실 아내는 욕도 잘하지 않았고 아무리 배가 고파도 배가 나온다며 야식은 일체 사절했었는데 말이다. 정말 사람은 결혼하면 다른 사람이라는 말이 맞나 싶었다. 나는 국물을 들이켜는 아내에게 조심스럽게 질문을 던졌다. 

 “근데… 언제부터 그랬던 거야?”

 “…”

 “언제부터 헛것이 보인 거야?”

 아내는 미소를 지으며 웃기 시작했다. 그 미소를 봤을 때가 내가 결혼하고 아내에게 느꼈던 가장 무서웠던 순간이었다. 

 “네가 나랑 이혼 준비하고 있을 때부터다. 이 씨발놈아!”

 낄낄대는 아내 앞에서 나는 충격 때문에 벌어진 입을 닫을 수가 없었다. 도대체… 어떻게 알았는지. 내가 이혼을 생각하고 있었던 때는 불과 열흘 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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