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_ PM 15:00 목요일. 기록 열흘 전
(상설 고해소 고해성사 녹취록 중에서)
“죽고 싶습니다… 아니, 죽었으면 좋겠습니다.”
“… 따라 하십시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아멘.”
“자, 이제 죄를 고백하십시오.”
“… 죄요?”
“… 하느님의 자비와 은총을 굳게 믿으며 그동안 지은 죄를 뉘우치고 사실대로 솔직하게 고백하십시오. 모든 잘못을 진심으로 뉘우치고 주님의 은총으로 속죄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 성사 본 지 얼마나 되셨나요?”
“좋습니다. 솔직하게 말씀드리죠. 성사는 처음입니다. 저희 집은 불교입니다. 제가 절에 가지 않고 여기에 온 이유는 누구한테 말할 곳이 없어서 답답해 미치기 직전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이것 또한 죄라면서 나가라고 하신다면 나가겠습니다.”
“고해성사만 한다고 해서 죄가 해결되지는 않습니다.”
“죄를 해결하고 싶은 게 아닙니다. 아내를 죽이고 싶습니다!”
“… 그런 문제라면 차라리 부부 상담소를 찾아가시는 게,”
“안 그래도 지금 변호사 사무실에 다녀왔습니다. 인터넷을 보니 앞으로 있을 일들을 증거로 남기기 위해 따로 녹음을 하라더군요. 그렇게까지 비겁하게 해야 하나 싶습니다. 그래서 이곳에서 제가 정말 죄인인지 신부님께 여쭤본 뒤에 이혼을 할지 말지 결심할 계획입니다. 사실 여기 들어온 순간부터 녹음을 시작했습니다.”
“녹음이요? 교우님, 이곳은 법정이 아닙니다. 나가 주세요.”
“이 앞에 들어와 보니 카탈로그가 하나 있더군요. 프란체스코 교황님도 보름마다 고해성사를 받는다고 들었습니다. 교황님도 죄가 있는데 저따위 것이야말로 오죽하겠습니까? 신부님, 한 번만 제 얘기를 들어주십시오.”
“죄송합니다. 고해성사는 죄를 용서받아야겠다는 마음이 설 때 하는 것입니다.”
“지금 이 얘기를 하지 않으면 법정이 아니라 아마 감옥소에 먼저 들어갈 것 같습니다. 살인죄로요! …라고 생각했다는 것을 용서받고 싶습니다.”
“… 아멘….”
“승낙의 표현으로 받아들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저희 처가댁은 교회를 믿습니다. 이 때문에 종교 문제로 결혼을 승낙받기가 힘들었습니다. 양가 모두에게 요. 물론 지금 제가 말하려는 요점은 종교가 아니라 부부 사이의 성격 문제입니다. 시작부터 꼬였다는 서두가 길었습니다. 신부님, 심판 없는 축구 경기 보셨습니까? 아주 난장판이 되겠지요. ‘내가 골을 넣었느니, 네가 다리를 걸었느니…’ 결국 격투기 싸움으로 번져서 힘세고 목소리 큰 팀이 이길 것입니다. 저희 부부가 바로 그렇습니다. ‘내가 맞고 네가 틀리다, 내가 맞고 네가 틀리다…’”
“어떤 문제 때문에 주로 싸우시나요?”
“어떤 문제인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사실 잘 기억도 나지 않습니다. 큰 싸움은 원래 기억도 나지 않을 정도로 사소한 일에서 시작됩니다. 말투, 항상 말투 때문입니다. 나를 무시하는 그 말투요. 그런데… 아내에게 이에 대해 따지면 자기는 무시한 게 아니라 그냥 물어본 거랍니다. 예를 들겠습니다. 아내와 즐거웠던 추억 얘기를 하며 기분이 좋아서 질문을 던집니다. ‘여보, 그때 우리 갔던 데 있잖아, 거기 너무 좋지 않았어?’ 그럼 아내는 저에게 정색을 하며 이렇게 물어봅니다. ‘거기가 어디야?’ 일단 여기서 기분이 잡칩니다. 말만 들으면 별문제 없죠. 괜찮아요. 제가 예민한 걸 수도 있죠. 하지만 아내의 그 특유의 표정이 있습니다. 갑자기 로봇처럼 굳어 버리는 눈과 입 주변의 피부 근육들, 그리고 일정한 톤과 끝에 반 톤만 올리는 어미 처리. 이 둘의 조합은 기가 막힙니다. 저는 우리의 추억이 담긴 장소의 이름을 말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마치 죄인 취급을 당합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죄인 취급을 당하는 느낌을 받습니다. 신부님께서 초면에 저에게 죄를 고백하라고 말씀하실 때도 – 심지어 저는 죄를 지지도 않았습니다 - 저는 조금도 기분 나쁘지 않았습니다. 무시하고 추궁하는 말투가 아니었으니까요. 아내는 제가 대화를 하다 기억이 잘 안 나서 혼잣말로 ‘그거 있잖아. 뭐야, 그거…’라고 할 때마다 특유의 그 표정과 말투로 ‘… 뭐가 뭐야?’라고 되물으며 마치 제가 뭔가 죄인이라도 된 것처럼 추궁합니다. 아니, 자세히 말하자면 추궁당하는 느낌을 받습니다.”
“잠시만요…, 듣다 보니깐 이상합니다. 그게… 아내 분을 죽이고 싶을 정도로 문제가 되나요? 대부분 바람을 피웠다거나 도박을 해서 집문서를 날렸다거나 알코올에 중독이 돼서 가출을 하거나 정도의 사유는 돼야 살인 충동을 느끼지 않나요?”
“결혼을 하시지 않으셔서 확실히 잘 모르시네요. 대부분 그런 일이 일어나면 저처럼 이렇게 종교도 다른데 집 앞 성당에 와서 미래 계획을 얘기하진 않습니다. 이미 살인을 저질렀거나 살인을 저지르는 계획을 실행 중일 테니까요. 신부님, 미국에선 이혼을 해도 친구가 되지만 우리나라에선 원수가 될까요? 대한민국 법정에서는 미국과는 다르게 그동안 있었던 시시비비를 일일이 따지기 때문이죠. 끝장을 본 관계로 만들어야 끝장이 난다는 말입니다. 아까 부부 상담소에 가라고 하셨죠? 사실, 저는 심판이 필요한 게 아닙니다. 그냥 제 얘기를 들어줄 사람이 필요한 거죠.”
“아까와는 말씀이 다르시네요. 좀 전에 본인께서 정말 자신이 죄인인지 제게 물어보시고 이혼을 할지 말지 결심한다 하시지 않았습니까?”
“원래 손톱 밑에 보이지 않는 작고 얇은 가시가 아파요. 이런 얘기는 어디 가서 못합니다. 남자가 쪼잔하다거나 자격지심이 있냐는 비난만 돌아올 뿐이죠. 게다가 그 상대가 바로 가시 같은 사람이라면 더더욱 깊숙한 아픔만을 줍니다. 마지막으로 너무 죄송하지만 신부님이 제 아내라고 생각하고 한마디 하고 떠나겠습니다.”
“… 네?”
“당신! 매일 나보고 사랑이 벌써 식은 거 아니냐고 했지? 그건 사실이 아니야. 왠지 알아? 나는 당신을 사랑해서 결혼한 게 아니거든. 그냥 결혼해야 되니깐 결혼한 거지. 원래부터 식을 사랑이 없었던 거야. 나도 몰랐어. 결혼하고 나서 알았으니깐. 이게 바로 당신이 나한테 무시하는 말투를 사용하는 이유지. 나한테 사랑을 못 받으니깐 화가 난 거야. 그래서 내가 제일 싫어하는 행동을 계속하면서 나를 자극한 거지. 그렇게 해서라도 사랑을 확인받으려는 거야. 내가 제일 싫어하는 행동을 함에도 불구하고 사랑받아야 한다는 무의식적인 요구를 하는 당신. 좋아! 지금 얘기하면서 또다시 확인했어. 내 밑바닥 속 당신에 대한 사랑은 눈곱만큼도 없다는 사실을 말이야. 이제 신부님이 뭐라고 하건 말건 상관없어. 결심했거든. 너와는 끝이야. 아니, 이미 끝이 나 있었는데 그동안 몰랐던 거지. 항상 내가 결혼생활에 있어서 무책임하다 느꼈었는데 그 느낌이 맞았어. 이제 사랑이 없는 이 결혼에 대해 책임을 질게. 우리 이혼하자. 그리고 각자의 사랑을 찾아서 떠나자. 찾도록 놓아주자. 감사합니다, 신부님! 제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기 위해서 제 말을 들어줄 누군가가 필요했어요. 아내는 제 얘기를 도통 들어주지 않거든요. 아멘입니다! 맞다! 이밖에 알아내지 못한 죄도 모두 용서하여 주십시오. 이상입니다!”
“… 이 교우의 죄를 사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