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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신혼록 0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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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상욱 Mar 17. 2023

신혼록(神魂錄)

07_ PM 23:25 일요일. 기록 1시간 전(2/2)

 이때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신들 중 한 분께 기도가 먹힌 것 같았다. 거실에서 익숙한 음악 소리가 들려왔는데 바로, 인터폰 소리였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그 막돼먹은 아래층 아줌마 - 분명 그녀였을 것이다 - 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하여튼 이 소리 때문인지 갑자기 밖이 조용해졌다. 나는 벌벌 떨리는 다리를 양팔로 감쌌지만 이내 팔도 같이 떨렸다. 이때 아내의 떨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 여보… 나 몸이 이상해…, 나 너무 무서워.” 

 다시 찾아온 공포심 때문에 나는 아무런 대꾸도 할 수 없었다. 

 “… 나 지금 잠깐 정신이 돌아와서 말하는 건데… 사실, 여보 나랑 살기 싫어서 이혼 준비하고 있는 거 다 알고 있었어. 나 저번 주에 성당 봉사하러 갔다가 동네 사는 어떤 미친놈이 이혼한다고 고해성사했다는 소문 들었거든.”

 이때 갑자기 욕조 배수구에 꽂혀 있는 임신테스트기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아까 정신없이 청소를 하다가 흘린 모양이었다.

 “어떻게든 여보 마음 돌리고 싶었는데 그건 나 혼자만의 욕심이었던 것 같아. 그러기엔 이제 나는 몸도 마음도 너무 지쳤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떠날 거면 차라리 그냥 지금 떠나 줄래? 그러면 나도 여보한테 조금이라도 미련 안 가질 수 있을 것 같아서….”

 아내의 말을 듣고 있던 나는 마치 뒤통수를 한 대 세게 얻어맞은 것처럼 멍하니 입을 벌리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바로, 임신테스트기에 선명하게 박혀 있는 두 줄을 확인했기 때문이었다. 

 ‘아니야…, 아닐 거야….’

 나는 아내가 정신이 이상해졌다는 이 상황을 인정하기가 힘들었다. 이런 상태에서 어찌 우리 사이에 아이가 생겼다는 사실까지 받아들일 수 있을까? 지금 이 믿을 수 없는 순간을 확인하는 방법은 단 한 가지, 일단 저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는 것이었다. 하지만 선뜻 용기가 나지 않았다. 괴물처럼 변한 아내에게 다시 두들겨 맞을까 봐 하는 이유는 아니었다. 바로, 저 문밖에 서 있는 그녀가 내가 알고 있던 아내가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문 열어 봐. 나 또 이렇게 계속 혼자 내버려 둘 거야?”

 어차피 계속해서 화장실에 스스로를 가둬서 현실을 피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결국, 나는 떨리는 다리를 부여잡고 욕조에서 나와 화장실 문을 천천히 열었다. 아내는 문 앞에 쭈그려 앉아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은 눈물과 콧물로 범벅돼 있었다. 그런 모습을 보자니 왠지 모를 애잔함과 함께 미안함이 올라왔다. 

 ‘그래, 잘해 주자. 그래도… 나와 결혼한 사람이 아닌가. 그뿐인가? 이제는 우리 아이의 엄마가 될 사람이기도 하다.’

 생각이 바뀌자 그동안의 치욕감은 사라지고 못 해 줬던 죄책감이 물밀듯이 밀려왔다. 내가 한 잘못들을 책임지기에 아직 늦지 않았다고 판단한 나는 아내를 부축해서 소파에 눕히고 안정을 취하게 했다. 귀신에 들렸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저 멀리 날려 버린 채로 말이다. 위액까지 다 토해서 빈속이기도 했고 혹시라도 뱃속의 아이에게 문제가 생길까 싶어 얼른 쇠고기 죽을 만들어서 한 숟갈 떠 줬다. 언제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이 아내는 죽을 씹으며 내게 억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어찌나 그 모습이 사랑스럽던지 나도 모르게 그녀의 정수리에 입을 맞췄다. 잠시 동안이었지만 이 평온한 시간이 영원했으면 싶었다. 하지만, 내 바람이 산산조각 나는 데에는 딱 3분이면 족했다. 

 “상용아, 4학년 때 너희 엄마가 주정뱅이인 네 아빠랑 너 버리고 집 나가려고 했을 때 있잖아. 기억나? 그때 계집아이처럼 엉엉 울면서 엄마 바짓가랑이 잡고 발버둥 쳤잖아. 너 바지에 오줌 지려서 다음날 옆집에 키 쓰고 소금 받아 왔지?”

 얼마나 충격적이었는지 들고 있던 숟가락을 떨어뜨릴 정도였다. 그 사실을 아내가 어떻게 알고 있었는지를 전혀 몰랐었다. 스스로도 가슴 깊숙이 묻고 잊고 있었던 과거였기 때문이었다. 

 “… 뭐, 뭐라고?”

 “약해 빠져 가지고! 그래서 앞으로 이 험한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려고!”

 “… 네가 그걸 어떻게….”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아내는 내가 중학교 1학년 때 아이들에게 따돌림을 당했고, 짝사랑에 실패해서 술에 취해 좋아하지도 않은 후배에게 들이댔다가 변태로 찍혀서 학교를 휴학까지 했으며, 교통사고로 돌아가시기 바로 직전에 내 얼굴 한번 보고 싶다고 3년 만에 갑자기 모습을 드러낸 아버지에게 욕지거리를 퍼부었던 얘기까지 줄줄이 읊어 댔다. 그녀의 날카로운 혀끝은 딱지가 져서 아문 줄 알았던 나의 상처들 속을 점점 후벼 파고들어 왔다. 죽음 중에 가장 고통스러운 죽음은 바로 몸이 불에 붙어서 타 죽는 것이라 들었다. 겪어 보지는 못했지만 내 마음에 마치 불이 붙은 것처럼 고통스럽게 죽어 가는 듯했다. 그런 나를 비웃기라도 하듯이 그녀는 볼에 보조개가 들어갈 때까지 한쪽 입꼬리를 들어 올렸다.

 “네가 그런 게 아니야. 네 잘못이 아니었어. 그건 다 날 만나기 위한 거였거든!”

 그 얘기를 듣고 분노가 극에 달했다. 그러자 오히려 아무 생각이나 감정이 들지 않는 아이러니한 경험을 했다. 머릿속이 하얘지면서 오히려 차분해졌다. 아무래도 극한의 감정을 겪게 되자 몸속 세포들이 리셋(Reset)되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일단 이 지옥 같은 집을 떠나야겠다는 생각에 자리에서 일어나 짐을 챙겼다. 이 정도면 이혼 사유로 충분하다고 판단했기에 다시 장 변에게 전화를 걸었다. 통화 신호음만이 들려오던 그때였다. 내 몸과 마음속 가장 깊은 곳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앞에 있는 사람은 분명 네가 알고 있는 그 사람이 아니야. 너도 몰랐던 너의 과거를 그녀가 어떻게 알 수 있겠어?’

 이때 전화기에서 장 변의 목소리가 들렸다.

 “상용 씨, 괜찮아요? 혹시 무슨 일 있으면 경찰 부를까요? 얘기하기 힘드시면 ‘네, 아니요’로만 말하세요.”

 이때 갑자기 예전 어느 주말 낮에 TV에서 봤던 타조에 관한 프로그램이 떠올랐다. 생존을 위해 조류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것도 포기한 채 사막에서 생활하는 타조는 위험을 느끼면 모래 속에 머리를 파묻는데 이런 이유 때문에 대부분 사냥꾼들에게 잡혀서 목숨을 잃는다고 했다. 위험에서 벗어나기 위해 문제를 직시하지 않으면 결국 죽는다는 교훈이었다. 문득 지금 내가 타조와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눈앞에 보이는 아내가 정상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는 상태로 그녀를 떠난다면 아물지 않을 상처를 하나 더 안고 살아가게 될 것이었다. 내가 앞으로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이 상처 또한 기억 속에 파묻을 뿐이라는 생각이 들자 한숨이 절로 나왔다. 결국, 나는 두 손에 들고 있던 짐을 바닥에 내려놨다. 

 “… 아니요…, 저, 내일 못 갈 것 같아요. 그 말씀드리려고 전화했습니다.”

 전화를 끊은 나는 결연한 눈빛으로 내 앞에 있는 그것(*앞으로 아내에게 빙의된 귀신을 '그것'이라 칭하기로 한다)을 노려봤다. 

 “너… 누구야? 너 강신이(*아내의 이름) 아니지? 그렇지?”

 그러자 ‘그것’은 내게 손가락질을 하며 기괴하게 웃어 댔다. 그 웃음소리는 사람이 아니라 마치 수컷 동물이 발정기 때 내는 괴성 같았다. 나는 먼저 ‘그것’이 누구인지를 밝히고 다음으로 ‘그것’에게서 내 아내와 우리 아이를 반드시 구해 내겠다는 결심을 했다. 그때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딱 한 명이 있었다. 그 사람은 바로, 보조 법사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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