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_ PM 23:55 일요일. 기록 30분 전
‘그것’이 발작을 일으켰다. 갑자기 입에 거품을 물더니 잠시 뒤에 혀를 깨물며 자해를 했다. 겨우 입을 벌리게 해서 손수건을 물리자 호흡이 가빠지는지 주먹으로 자신의 가슴과 배를 번갈아 때리기 시작했다. 잠시나마 119를 불러야 하나 심한 고민에 빠졌다.
‘그래도 그분을 한번 믿어 보자!’
때마침 벨 소리가 울리고 기다리던 법사님이 도착하셨다. 그분은 어머니가 20년이 넘게 알고 지낸 – 한 때 모시기도 했던 – 스님으로 과거 동국대학교에서 한의학을 전공하신 이력이 있었다. 그는 범상치 않은 외모를 갖고 있었다. 호랑이같이 치켜 올라간 눈썹, 황소 같이 씩씩대는 콧김을 내뿜는 큰 콧구멍, 앵두같이 앙다문 입술…, 무엇보다 그의 크고 긴 눈 속의 동자는 항상 아래에서 위로 향하고 있어서 마치 사람의 속마음을 꿰뚫어 보는 것 같았다. 법사님은 ‘그것’의 상태를 보고는 혀를 차더니 자신이 갖고 온 보자기에서 밧줄을 꺼냈다.
“… 그게 뭐예요?”
“자네 귀신을 믿는가?”
“… 귀신이요?”
“전통 한의학에서는 영혼과 귀신의 존재를 믿지. 『동의보감』에도 귀신을 언급하는 구절이 백 곳이 넘네. 물론, 귀신을 쫓는 처방을 포함해서 말이야.”
법사님은 밧줄로 ‘그것’의 팔과 다리를 묶고 바닥에 눕히더니 그 위로 양손을 펼쳐 8자를 그렸다. 마치 기운으로만 진맥을 보는 것 같았다. 나는 그 모습을 넋을 놓고 바라보고 있었다.
“그거 아는가? 지금 자네 아내는 정상이 아니야.”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늦은 밤에 법사님께 연락드린 겁니다.”
“잘했네. 약속대로 어머님이 걱정하실까 봐 말씀드리지는 않았어. 내가 여기 온 이유는 딱 하나뿐이지.”
“그게… 뭔가요?”
이때 ‘그것’이 법사님을 노려보며 발광하기 시작했다. 손수건을 재갈 식으로 물려서 무슨 말을 하는지는 잘 안 들렸지만 우리에게 저주를 퍼붓는 것만은 확실했다. 그는 개의치 않고 법복 안 품에서 뭔가를 꺼냈다.
“내 할 일을 마치고 빨리 퇴근하는 것.”
법사님이 꺼낸 것은 바로 팔뚝만 한 길이의 대침이었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는 대침을 ‘그것’의 이마에 조준하고 마치 망치로 말뚝을 박듯 그대로 내려찍을 기세였다.
“안 돼!”
나는 ‘그것’의 위로 몸을 던졌다. 그러자 내 아래에 깔린 ‘그것’은 숨이 막히는지 캑캑거리며 괴로워했다. 보조 법사는 그런 나를 잠시 동안 가만히 보고만 있었다.
“과학적인 방법이 싫다면 비과학적인 방법도 있어.”
“이게 무슨 과학적인 방법이에요?”
“과학적인 방법이 예로 들면 이런 거야. 일반인들이 가장 기를 쉽게 받을 수 있는 방법이 뭔지 알아? 항문 수축법이야. 회음혈이 자극을 받아 자연스럽게 기 충전이 되지. 더 쉬운 방법은 기지개를 크게 켜는 거야. 그러면 받기 싫어도 기를 받게 돼. 이것은 귀신에게 육체적인 충격을 줘서 빠져나오게 하는 하나의 기술이었어.”
“… 그럼 비과학적인 방법은요?”
“아니야! 질문이 틀렸네. 손가락을 보지 말고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있는 것을 봐야지.”
이때 내 아래에 있던 ‘그것’이 입에 물고 있던 굳은 선혈이 묻어 있는 손수건을 법사님에게 뱉었다.
“어이, 빡빡이. 노모는 잘 계시는가? 꼬락서니를 보니깐 곧 돌아가실 것 같던데?”
“저것의 손과 발을 잡아! 절대 눈 마주치지 마!”
법사님의 말을 따르자 ‘그것’은 반항을 하며 몸을 심하게 비틀었다. 역시나 내 힘으로는 역부족이었다. 법사님이 육중한 몸으로 누르고서야 약간의 효과가 있는 듯했다.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이 있어. 어떤 거를 먼저 알려 줄까?”
순간 고민을 했지만 항상 맛있는 반찬을 먹기 위해 맛없는 반찬을 먼저 먹어 버리는 성격상 내 대답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나쁜 소식이요.”
“처음으로 현명하군. 귀신은 한 번 사람 몸에 자리 잡는 데에는 최소한 3년 정도가 걸리지. 그래서 한 번 들어온 귀신들은 쉽게 빠져나가지 않아.”
“… 좋은 소식은요?”
“하지만 언젠가는 결국에는 떠나게 돼 있지.”
“… 언젠가요?”
“귀신이 들어온 몸의 주인이 죽거나, 아니면 나를 만나거나.”
법사님은 아내가 누군가의 원한을 샀거나 과거 가족 문제로 골머리를 썩이었는지를 질문했다. 내가 알고 있는 한은 없었지만 부부라는 사이는 모르는 것이기에 두루뭉술하게 대답했다. ‘그것’은 힘이 생겼는지 다시 저주를 퍼부으며 반항을 이어 갔다. 나는 답답한 마음에 ‘그것’을 바라봤다.
“여보, 정신 좀 차려!”
그러자 갑자기 법사님이 내 뺨을 후려쳤다. 나는 놀란 눈으로 그를 봤다.
“자네야말로 정신을 좀 차리게! ‘여보’는 지금 귀신한테 사로잡혀 있다니깐!”
“… 어떤 귀신이요?”
“빙의를 하려고 이승을 떠도는 귀신들의 존재가 셀 수도 없이 많아. 이제부터 빙의 치료를 시작할 거야. 자네는 과학적인 방법을 별로 안 좋아하는 것 같으니 비과학적인 방법으로 해 봐야겠어. 눈에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지만 지금은 그런 설명을 할 시간이 없네. 아내가 이상하다고 느꼈던 첫 증상이 뭔가?”
“그냥… 다 이상했어요. 눈이 풀린 것 같은데 눈동자가 흔들리지 않고 빛이 나고 불안하고 초조해 보였는데… 좀 전에는 천장에 붙어 있었어요.”
“혹시 며칠 동안 잠을 못 잤다거나 감기에 걸렸는데 상갓집에 갔다거나 산이나 계곡 같은 곳에서 과음을 한 적이 있나?”
“… 아니요.”
법사님은 빙의 치료는 영적인 능력을 다루기에 너무나도 고된 작업이라 기가 세고 법력이 높은 사람이 필요하다고 했다. 얘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그에 대한 의심만 커져 갔다. 사실 나와는 그리 친한 사이가 아니었고, 겉으로 보기에도 약간 사짜(?) 같은 느낌이 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머니가 과거에 몇 년간 모시던 분이기도 했고 아버지의 예상치 못한 죽음을 예견해서 지금까지도 천도재를 지내 주시기도 한 의리를 높이 사기에 일단은 계속해서 믿어 보기로 했다. 그는 내 의심을 느끼기라도 했는지 힐끔 눈치를 보더니 미간을 찌푸렸다.
“증상을 보니 확실히 빙의된 상태는 맞는 것 같은데… 어떤 영이 자네 아내의 몸속에 들어왔는지, 또 왜 들어왔는지를 알아야 그것을 몸속에서 꺼내서 하늘로 올려 보낼 수 있어. 그래야 앞으로도 자네들이 고통받지 않게 되는 거야.”
얘기를 듣다 보니 과학적인 방법도 괜찮다고 했지만 법사님은 아내의 빙의 상태를 보니 생각보다 훨씬 심각해서 더 강한 방법을 사용해야 한다고 했다.
“귀신은 인간의 육체를 숙주로 삼아 빌리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어. 가장 안타까운 것은 몸을 아프게 해서 그 사람을 의지대로 살 수 없게 만들지. 육체는 과학적이라 할 수 있지만 영혼은 비과학적이야. 두들겨 패서 못 내보낸다면 어르고 달래서 내보내야지.”
“어르고 달래요?”
이때 ‘그것’이 무슨 염력이라도 부리는지 방 안에 있는 물건들이 바닥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스탠드와 화병, 그리고 벽에 걸린 결혼사진까지도 말이다. 나는 떨리는 눈으로 ‘그것’을 봤다. 그러자 다시 아내로 돌아온 ‘그것’이 떨리는 눈동자로 말을 건네 왔다.
‘도와줘.’
아내는 입을 벌리지는 않았지만 나는 그 말을 분명히 들었다. 귀가 아닌 마음으로 말이다. 법사님은 점점 힘이 벅찬지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재미있는 건 귀신은 저승에 가는 걸 두려워하지. 저승이 춥고 어둡다 생각해서야. 그런데 저승은 이생의 다음 생인 환생이라 할 수 있어. 다음 생을 살아 본 귀신은 없으니 이승이 천당이고 저승이 지옥이라는 말은 앞뒤가 안 맞지. 그냥 떠나면 되는데 이승에 집착해서 구천을 떠돌다간 환생을 할 수 없다고 알려 줘야 돼. 천당과 지옥이 죽으면 가는 곳이 아니라 바로 이 이승에 같이 존재하는 건데 말이야.”
그의 말은 설득력이 있었다. 문득 이것은 흔치 않은 경험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아내에게 내가 지금 겪고 있는 이 일들을 공유하고 싶은 욕구가 생겼다. 아무리 꼴 보기 싫을 때가 있더라도 1년 가깝게 지내면서 엄청난 일들부터 아주 조그마한 일들까지도 항상 나눴던 습관 탓인 것 같았다. 아내가 정신이 돌아온다면 내가 생각했던 지옥보다 더한 지옥이 있었음을 마치 무용담처럼 얘기할 수 있을 것이고, 혹시나 아내가 목숨을 잃고 귀신이 돼서 구천을 떠돈다 하더라도 꼭 다음 생으로 갈 수 있음을 마치 가르침처럼 얘기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방법이 뭔가요?”
법사님의 눈이 마치 번개가 치듯이 번뜩거렸다.
“아니, 질문이 틀렸어. 하지만 우문현답을 하겠네. 예전에 어린 여자애의 몸에 이상한 귀신이 들린 적이 있었어. 그 빙의령은 여자애의 죽은 엄마였는데 딸이 걱정돼서 저승으로 가지 못했다는 거야. 하지만 딸은 점점 쇠약해져 갔고 급기야 둘 다 죽기에 이르렀어.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내가 귀신을 쫓거나 사람을 살리는 데에 실패한 유일한 과거였지. 그런데 여기서 해답을 찾을 수 있어. 무엇인 것 같아?”
“… 저희 장모님 아직 안 돌아가셨는데….”
이때 ‘그것’은 고개를 숙이고 있는 법사님의 목에 걸려 있는 염주를 혀로 핥으며 그를 도발하기 시작했다. 차마 그런 아내의 모습을 두 눈 뜨고 볼 수가 없었던 나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방에서 나가려고 문을 열었다. 그때, 나를 돌아보게 만드는 소리가 귓등을 타고 들려왔다.
“바로, 자네의 전생 때문이야.”
원래 부부는 전생의 원수끼리 만난다는 말이 있지 않던가. 그렇지 않고서야 도무지 부부 관계는 이해할 수가 없기에…. 나는 고민 끝에 법사님의 도움을 받아 전생 체험을 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