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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동일 Apr 25. 2024

언어와 권력 18

<눈물의 여왕> 백현우와 홍해인의 서사 다시 보기

1. <눈물의 여왕> 백현우 대사 “사랑했고 사랑하고 사랑할게” 그게 장안의 화제였다는데.. 구문 형태만 가져와서 저의 일상을 감정이입해서 말해보면 이것만 남네요. “읽고 썼고, 읽고 쓰고, 앞으로도 읽고 쓸께."


2. <눈물의 여왕>은 묘한 TV극입니다. 처음엔 주연 배우가 너무 예뻐서 넋놓고 봤는데 (생성형 AI 도움을 받아서 극본 작업을 했는지) 익숙하지 않은 기발한 사건의 연결이 황당하기도 하고 재밌기도 했습니다.


3. 가장 흥미진진한 것은 결혼한 부부가 애타게 사랑하는 장면입니다. 결혼을 하면 대개 사랑의 관계는 깨어집니다. 젊은 남편/아내는 대개 서로의 타자성을 인정하지 못하죠. 타자를 자신의 소유로 만드는 건 불가능하기 때문에 갈등하고 도망갑니다. 그러나 백현우-홍해인 커플은 서로를 바라보며 꿀이 떨어져요. 


4. 균열된 주체 홍해인은 종종 울긴 해도 너무 침착해 보입니다. 남편 백현우는 인간의 감정과 감각을 드러내지만 제가 교회에서 만난 신과 같이 배우자를 보듬어요. 이걸 둘만의 위대한 심리적 실체로 보면 말도 안되고.. 저는 나름 즐겁게 시청하기 위해서 사회정치적 관계로 보고 있습니다. 


5. 그들의 사회적 정체성과 권력관계는 그만한 감정의 긴장을 유지시킬 법도 합니다. 아내는 예쁜데 왕싸가지이고, 재벌 딸인데 불치병 판정을 받아요. 남편은 시골 출신이지만 명문대 출신의 잘 생긴 재원이고, 소심하고 왕따를 당하지만 강직하게 사건을 처리해야만 합니다. 그들을 둘러싼 사회문화적 자원이 갈등적이고 균형적이라서 서로를 향한 거절과 집착의 욕망이 잘 작동됩니다. 


6. 만약 <눈물의 여왕 2>가 기획되어서 기적적으로 다시 살고 사랑하는 부부의 삶을 사실적으로 보여줄 것이라면, 그처럼 갈등과 모순의 권력관계가 모두 소진된 상태에서 밋밋한 일상을 살아가는 플롯이 좋을 듯합니다. 알랑 드 보통의 소설 <낭만적 연애와 그 이후의 일상 >처럼 말입니다. 다만 사랑의 판타지가 우리 삶에 감기약처럼 필요한 터이니 그런 속편은 기획되기도 힘들 것입니다.


7. 백현우-홍해인 부부가 번영과 소유의 욕망을 성찰하면서, 인문학 공부를 개시하고 결국 타자와 사회적 약자에게 개방적 자세를 갖게 된다는 속편은 어떤가요? 그토록 사랑한 사람도 언제든 우상화될 수 있으며, 타자를 소유하려는 것이 폭력이 될 수 있다며 '텅 빈 존재'의 통찰을 나누는 것이죠. 그러나 사랑의 윤리학, 미학적 존재론에 관한 <눈물의 여왕 2>는 뭔 말인지 모르겠다는 혹평과 함께 시청률 1% 미만을 감당하지 못하고 조기종영될 것입니다. 


8. 제 삶에 잠시 적용해보니.. 제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소유와 위계와 경계를 두고 크게 다투지 않은 건 제가 교수라는 사회적 위치를 가지고 있으며(혹은 그런 이유때문에) 별로 가진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교수라는 위치에서 공부만 해서 그렇습니다. 종속절에 묘한 전제가 있죠? 저를 잘 아는 분은 “니가 왜 가진 것이 없냐?” 호통을 칠 것 같기도 한데.. 그렇게 주장하신다면 할 말은 없네요. 아무튼 규범적인 인생을 지향하는 듯하지만 누군가에게 섣불리 도덕적 칼을 휘두르지 않는 삶을 살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9. <눈물의 여왕>과 같은 로맨스는 역시 사랑의 주체끼리 밉지만 그리울 때, 싸우지만 사랑할 때가 제일 재밌습니다.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고 불확실성이 모두 사라지면 시청의 재미도 소멸됩니다. 이항의 형식성은 대립이 될 때 의미가 극적으로 생성되고 강화되거든요. 그래서 지난 주말에 백현우와 홍해인이 사랑한다며 울고불고 껴안을 때, 의심없는 순결한 사랑이 완결될 때, 지루하기 시작했어요.  


10. 사랑하는 관계성을 폄하하는 것이 아니라.. 제가 지금 말하려는 건.. 울퉁불퉁하고 징글징글한 인생, 밉지만 그리운 사람, 지금 살아가고 있는 우리 삶의 갈등과 모순은 사실 신(시청자)의 시선으로 보자면 꽤나 멋지고 흥미진진한 캐릭터이고 플롯의 한복판일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럼 우리 모두 무슨 일이든, 어떤 관계든, 죽고 못살건 없다는 생각을 해볼 수 있지 않을까요? 위험과 위기는 또 지나갈 것이고.. 흠 많은 지금은 견디어 볼 만할 때일지도..


11. 많은 분들이 잘생긴 배우로 감정이입하고 자신의 생애사를 하나의 선형적인 구도의 서사로 상정하고 그럭저럭 살아가기도 하죠. 물론 그런 인생이라서 그런 서사로 설명되는 것이 아니라, 그런 서사문법을 주입하면서 복잡한 인생을 단순하게 살아가려고 애쓰는 것이겠지만.


12. 그럴 때 부작용이 있다는 걸 기억하셔야 합니다. 인생의 개별성과 이질성을 다양한 문헌과 경험으로 바라보지 못한다면 남의 서사를 성급하게 흉내내며 엉뚱한 인생을 살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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