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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끝찡 Oct 28. 2019

다시 만날 수 없는 이

다시 그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엄마 잠깐 병원에 입원하는데 도와줄 수 있나?"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자신의 병간호를 도와줄 수 있느냐는 물음이었다. 아버지는 밤늦게 까지 장사를 하시고, 남동생은 먼저 결혼해 바쁜 직장 생활, 부탁할 수 있는 건 나밖에 없었다. 나는 영화 연출부 생활을 하고 조감독 생활까지 한 후 감독 데뷔 준비한다고 시나리오만 쓰고 있는지 5년째, 준비만 한다면서 가족들에게 보여준 것 없는 그런 놈이었다. 그냥 간병인을 구해서 써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서른 넘어서도 쪽팔리게 용돈 받는 처지라 그 말은 할 수 없었다. 그래, 시나리오는 엄마가 입원한 대구에서도 쓸 수 있다고 생각하며 대구로 내려갔다.


 신부전증으로 매일 투석을 받아야 했던 어머니는 5년 전, 아버지의 신장을 이식을 받고 호전되었다. 5년이 지난 지금 이식받은 신장에 문제가 생겼나 보다. 여러 가지 검사를 해야 했다. 시간마다 소변을 받아야 했고, 시간마다 피를 뽑아야 했다. 보통 신장이식 5년 차에 이런 고비가 한 차례 온다고들 한다. 그래서 별 거 아닐 거라 생각했다. 어머니 역시 마찬가지였고 의사들 역시 그럴 것이라 하였다. 다시 투석을 몇 번을 받고 그래도 안된다면 최악의 상황엔 다시 신장이식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그 말을 들었을 때, 5년 전이 생각났다. 아무래도 아버지 신장보다는 내 신장이 더 건강할 것이라 생각했다. 아무리 혈액형도 아버지도 같다손 치더라도 어머니랑은 솔직히 생물학적으론 완전 남이지 않느냐, 맞더라도 내 신장을 이식하는 것이 나을 것이란 이야기를 했다. 그때, 엄마가 이야기했다.


 "네가 새끼 낳아봐라, 지 새끼 신장이식받고 싶은지!"  


 어머니는 절대 내 신장을 받지 않겠다고 했다. 결국 아버지 신장을 이식받았고, 5년이 지난 지금, 그 신장이 문제를 일으켜 어쩌면 다시 받아야 할지 모르는 상황이 생기고 말았다. 그때, 내가 조금 더 적극적으로 내 신장을 주겠다고 했어야 했는데, 라며 뒤늦은 후회를 했다. 그런데, 또 5년 전과 같은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엔 정말 내가 신장을 줘야 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느껴졌다.


 그 생각이 든 후, 신기하게 담배를 끊게 되었다. 끊더라도 한 달을 채 항상 넘기지 못했었는데 담배를 끊게 되었고 살을 빼면서 건강관리를 하게 되었다. 그토록 하고 싶었던 금연과 다이어트인데 이런 명분으로 하기 되다니, 참 웃긴다. 대구에 친구들이 별로 없다 보니 술도 안 먹게 되었고 운동하며 어머니 병간호하면서 그렇게 며칠을 지냈다. 그런데 아마 다시 이식해야 할 상황이 생긴다면 어머니는 분명 내 신장을 받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괜찮아질 거란 의사의 말관 다르게 엄마는 호전되지 않았다. 매일매일 피는 뽑고 소변검사를 받으면서 괜찮아질 거란 말만 반복한다. 피를 뽑은 곳은 아물지 않고 시퍼런 멍이 들어온 몸이 멍투성이었다. 피를 뽑을 곳이 없자 간호사는 엄마의 발가락을 선택했다. 엄마는 고통스러워했다. 그래도 엄마는 아픈 티를 내지 않는다. 소변 검사마저 부끄러워 차마 나에게 보여주지 않고 혼자 커튼을 치고 해결을 한다. 엄마는 그런 엄마였다.


 열흘이 지났다. 호전될 거라는 의사들의 말을 믿고 서울로 올라가길 결정했다. 엄마는 집에 있는 고양이 두 마리를 걱정했다. 두 녀석 다 내가 키우다가 일 핑계로 엄마에게 맡겼던 녀석들이다. 엄마는 극진히 고양이들을 돌봤다. 두 녀석들을 일단 내가 서울로 다 데리고 올라가겠다고 했다. 괜스레 엄마를 두고 서울로 올라가는 것이 불안했지만 언제 잡힐지 모르는 회의와 시나리오 준비를 게을리할 수 없었다.


 서울로 올라가기 전 새벽 3시, 갑자기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걱정된 마음에 바로 병원으로 달려갔다. 무슨 큰일이 났나 싶었다. 겨우 병실 가까운 곳에 주차를 하고 엄마에게 달려갔다. 엄마는 나에게 종이컵에 물과 칫솔을 달라고 했다. 겨우 양치를 하고 싶었던 것이다. 양치질을 할 힘은 없고 답답한 마음에 새벽 3시에 나에게 전화를 건 것이다. 종이컵에 물을 담아 칫솔에 치약을 묻히고 엄마에게 가져다줬다. 양치질을 한 후 엄마는 나에게 이제 가보라고 이야기했다.


 솔직히 속으로 화가 났다. 겨우 양치 때문에 새벽 3시에 불러놓고 이제야 가라고? 화가 났지만 겉으로 표현하지 않았다. 화난 마음에 결국 다음 날, 병원에 들리지 않고 바로 서울로 올라갔다. 그런데... 그게 엄마와 마지막 만남이었다.



<사진첩을 보니 엄마와 찍은 사진이 별로 없더라. 같이 찍잔 말을 못해 엄마 몰래 착칵했다. 이게 생전에 찍은 마지막 사진이 될 줄 알았다면 흔들어서라도 깨워서 사진 찍을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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