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은 허무해도 남기고 싶은 내 이야기.
우리 인연은 회색 시멘트 길 위에서 시작됐다.
1995년인가 1996년인가. 어슴푸레 떠오르는 게 아마도 그때 즈음이다. 그로부터 약 30년이 지난 지금, 들쭉날쭉 포개진 기억들 속에서 '연도'는 흐릿하지만 그와의 추억은 엊그제 일처럼 맑고 또렷하다. 빛이 들지 않는 길모퉁이에서 시작한 인연이지만 그와의 추억은 여전히 한낮의 태양처럼 빛나고 있다. 그도 나와 같은 생각이었길 바라며....
내가 잡고 있는 '인연의 끈' 맞은편에는 털이 복슬복슬하고 헬리콥터 꼬리가 주특기인 길 위의 강아지가 있다.
어린 시절, 내가 살던 동네에는 떠돌이 개들이 많았다. 하루에도 몇 번씩 홀로 혹은 무리를 지어 다니는 강아지를 쉽게 볼 수 있었으니 말이다.
난 강아지를 좋아했다. 고양이도. 늘 그들과 함께 살기를 원했지만 꿈속에서나 가능한 일이었다. 어린 시절, 동물을 좋아하지만 함께 살 수 없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여다보면 종종 같은 이름의 '벽'이 등장한다. 그 벽의 이름은 '엄마의 반대'. 엄마의 반대라는 벽은 정말이지 '태산'처럼 높았다. 아니, 적어도 태산은 하늘 아래 있기라도 하지. 올라도 올라도 끝이 없다는 '천국의 계단'이라는 운동 기구가 더 적합한 비유겠다. 고난도 산행과 맞먹을 엄마의 반대. 아빠, 나, 동생의 총공세에도 우리 집에 있는 엄마는 꿈쩍도 하질 않았다.
그래서였을까. 그때의 난 참 이기적이었다. 매미인지 쓰르라미인지 때를 놓치지 않고 시끄럽게 울어대는 여름, 길 위의 그들은 축 처진 몸에 혓바닥을 연신 늘어뜨리며 한여름과 맞서고 있었다. 날은 무덥지만 그들 삶은 계절과 관계없이 하루하루가 한겨울 살얼음판이었을 텐데.... 미처 내 생각이 거기까지 닿질 못했다. 쓰다듬을 수 있는 그들이 집 밖에라도 있어서 난 생각 없이, 마냥 좋아라 했었다.
그날도 난 찻길 하나를 건너고 시장을 지나 또 찻길 하나를 건너는, 피아노 학원 가는 길 위에 있었다. 마지막 찻길을 건너면 양 옆에 크고 작은 건물이 줄지어 선, 폭이 꽤 넓은 길이 나오는데 이곳이 바로 길 위의 강아지들이 자주 출몰하는 곳이다.
나 홀로 강아지도 있고 무리에 속한 강아지도 있다. 무리의 형태는 꽤 투명했다. 서열을 알아볼 수 있었다고나 할까. 얼핏 삼각형 대형 무리의 1열은 이른바 '통'이 자리했다. 한 마리일 수도 있고 많아도 두 마리 정도가 1열에 있었다. 앞머리에 선 대장 강아지. 통의 자리는 한참 유지될 때도, 또 금세 바뀔 때도 있었는데 재미있는 건 통이라고 해서 반드시 몸집이 크고 눈빛이 매섭고 그런 건 아니었다는 거다. 어린 나는 통이 되는 조건이 조금 궁금했다.
그중, 어떨 때는 무리에 어떨 때는 홀로 다니는 곱슬머리 강아지 한 마리가 있었다. 어느 날 길 귀퉁이에서 정말 무언가의 귀퉁이처럼 '매가리' 없어 보이는 그를 만났다. 여태껏 봐 왔지만 그는 1열에 설 수 있는 통이 될 조건은 단 하나도 가지고 있지 않아 보였다. 3, 4열쯤에도 겨우 비집고 설 수 있을 정도로 나약해 보이는 그런 강아지였다.
붙임성은 있었다. 얼굴도 귀여웠다. 그리고 꽤 똑똑해서 한 번 먹을 걸 준 사람은 반드시 기억했다. 나와 내 동생 그리고 그의 인연이 시작한 계기다. 나와 내 동생은 각자 그에게 먹을 걸 줬고 그는 그런 우리를 기억했고. 그래서 우린 다 같이 친구가 되었고.
그에게 이름을 지어줬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미안한데.... '똥개 토드'라고. 왜 그땐 떠돌이 강아지나 믹스견한테 '똥개'라고 했는지 모를 일이다.
부드럽고 예쁘게 부를 수 있었을 텐데. 왜 요즘에 '시고르자브종'이라고 있지 않나. 난 이 말이 그렇게 좋더라. 처음엔 뭐? 시고르? 뭔가 <레 미제라블>을 쓴 프랑스 작가 '빅토르 위고르'가 떠오르기도 하고 발음도 부드럽게 둥글둥글 굴러가는 게 참 귀엽단 말이다. 아무튼 그때 시고르자브종이란 말이 있었다면 이 친구의 이름은 '시고르 토드'가 되었으려나.
앞에 '똥개'가 붙어서 그렇지, 사실 이 이름의 핵은 뒤에 붙은 '토드'다. 사촌 언니네 강아지 한 마리가 있었는데 그 친구의 이름이 '토드'였다. 그 당시 나와 내 동생에게 세상에서 가장 예쁜 강아지는 '토드'였다. 그래서 길 위에 있지만 그중 가장 예쁜 강아지에게 붙여준 이름, 바로 '똥개 토드' 되시겠다.
우리의 귀여운 친구 '똥개 토드'는 몸집이 아주 작진 않았다. 소형견과 중형견 그 사이 애매한 경계에 걸쳐 있었다. 털은 완전 장모는 아니었지만 중단모? 지금 생각해 보니 털의 길이도 애매하다. 털의 빛깔 역시 애매했는데 거리의 때가 묻어서 그렇지, 본연의 빛깔은 반짝이는 금빛에 중간중간 검푸른색이 섞여 있었다(콩깍지 때문에 빛나 보였을 지도). 얼굴이 작은 편은 아니었다. 그래서 멀리서도 귀여운 얼굴과 표정이 아주 잘 보였고 귀는 살짝 접혀 있었다.
지금도 생생하게 그 얼굴이 기억난다. 이걸 쓰고 있으면서도 실실 웃고 있으니 '똥개 토드'는 정말 너무너무너무!!! 귀여웠다.
'똥개 토드'는 피아노 학원 가는 길, 나의 단골 길동무였다. 찻길 하나를 건너고 시장 구경을 하면서 걷다 보면 어느덧 시장의 끝, 길 건너에 꼬리가 헬리콥터처럼 움직이는 친구가 서있다. 앞서 말했지만 얼굴이 좀 커서... 표정이 잘 보인다. 너무 좋아!!!! 나는 아래로 그는 위로 얼굴을 돌리며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보면 어느새 학원에 도착해 있었다. 그는 내가 끝날 때까지 그 주변에 있다가 내가 집에 가는 길에도 길동무 역할을 자처했다.
참 무지했지. 잘 알았더라면 더 좋은 거, 강아지 음식을 사다 먹였을 텐데... 난 과자 사 먹고 남은 돈으로 '천하장사 소시지'도 사 먹이고 '건빵'도 줬다. '똥개 토드'는 어떤 불만도 없었다. 늘 꼬리를 흔들며 맛있게 먹었다. 가끔은 친구 강아지를 데리고 오기도 했다. 그럼 여럿이서 맛있게 먹는 거였다.
그러던 어느 날, 정말 뜬금없이 갑자기 목욕을 시켜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아지 샴푸를 빌려 목욕도 시키고 수건으로 팡팡팡 털어주고 드라이기 바람도 쐬어주고 그렇게 샴푸 냄새 폴폴 나는 강아지로! 처음 하는 목욕일 텐데(아니었을지도 모른다) '똥개 토드'는 몸부림 한 번 치질 않고 샤워기 물도 잘 받아내며 거품도 향도 나름 잘 즐겼다.
추운 겨울에는 아파트 지하실(5층짜리 아파트였는데 당시 관리실 물품이나 주민들 잡동사니를 쌓아 놓는 지하실이 있었다)에 박스랑 옷가지를 쌓아서 간이집도 만들어줬다. 관리실 할아버지한테 들켜서 엄청 혼나긴 했지만 그래도 나름 관리실 할아버지와 친해서 꽤 오랜 기간 '똥개 토드'는 지하실에서 지낼 수 있었다. 우리의 추억은 꽤 많다. 여름의 기억도 있고 겨울의 기억도 있으니 말이다.
우리의 친구 '똥개 토드'가
떠돌이 강아지 무리의 가장 앞자리! 1열에! 그것도 원탑으로! 바로 '통'으로 걸어가고 있다.
'아! 무리에 있는 강아지들에게 소문이 났구나. '똥개 토드' 옆에 있으면 예쁨도 받고 배도 채울 수 있다고.'
다 몰라도 좋다.
우리의 '똥개 토드'가 무리 구성원들의 선택을 받고 맨 앞자리에서 빛나며 걷고 있었다는 사실이 중요하지.
얼굴이 작지 않아서 참 다행이었다. 늠름하고 자신감 넘치는 표정이 다 보였으니 말이다.
1열에 서있는 그를 봤을 때 난 아주 강렬한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어린 날, 우리의 친구 '똥개 토드' 이야기다. 그도 나와 같은 기억이었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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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이미지 출처:사진: Unsplash의 Heshan Weeramanthri
* 올 겨울도 모두 무탈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