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아래꺼풀에 보이지 않는 벽이 있다
어느 날 예고 없이 불어온 바람은 날을 가진 바람,
바람이 머문 자리에 쪽바른 붉은 선이 피어났다
그날부터 그곳에는 벽이 서있다
날을 가진 바람이 불 때마다 벽의 키는 자랐다
무딘 빵칼에 일 센티, 면도날에 삼 센티
겉보기엔 예쁜 과도는 오 센티
뭐든 썰 것만 같은 식칼은 십 센티
폴짝 뛰어넘을 수 있을 것 같던 보는
고개를 젖혀야만 끝을 가늠하는 댐이 되고,
가는 골짜기에 고여있던 개울물은
속도 모르고 마냥 불어나
끝을 모르는 벽을 타고 올라간다
*
눈으로부터 낙하하는 물은
부피가 커야 감정이 큰 걸까
무게가 무거워야 마음이 무거운 걸까
새카맣고도 하얗게 질린 어둠을 먹고 자란 물은
그래서 벽을 타고 오르는 물은
또르륵, 또롱
방울져 흐르지 못한다
또르륵, 똑
소리를 내지 못한다
안간힘을 써 벽을 타야 하는 물은
마음대로 떨어지지도 못하는 물은
그렇게 눈에서부터 이미 짓이겨져 나온 물은
그제야 벽 너머
상앗빛 들판에 넓고 엷게 번져
눈물인지 땀인지도 아무도 모를
여름날의 그 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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