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 그 순간을 기다려온 사람처럼, 어쩌면 마치 그 순간을 주최한 사람처럼.
분리(?)된 무리 속에서 가장 신난 사람은 아마 나였을지도 모른다.
그날 아침, 강렬한 빨간 사인이 뜨고 2-3초 정도 시간이 지났으려나. 순간, 소리 없는 파티가 열렸다. 초대장을 받은 적도 없고 파티가 열릴 거라는 누군가의 예고를 들은 적도 없다. 준비물이 있다는 파티라는 것도 시작과 동시에 깨달았다. 파티의 들어선 우리들은 눈이 마주쳤고 서로의 손바닥을 확인했다.
시간이 정해져 있는 파티, 정해진 시간은 아주 짧다. 우린 서둘러 파티를 즐기기로 했다.
우린 서로의 얼굴을 처음 봤지만 무엇을 지나야만 서로에게로 갈 수 있는지 알고 있었다. 서로의 동공은 약속한 적 없지만 어쩐지 알 것만 같은, 허공의 한 점을 향했다.
점을 통과하는 잠깐의 시간, 우린 서로의 질감이 익숙하다는 걸 느꼈다. 멈춰 서서 내 것 같은 질감을 더 느끼고 싶었다. 하지만 우린 그대로 통과했다. 눈빛은 어깨를 가진 듯 했다. 두 개의 눈빛이 가진 어깨가 서로 부벼지는 느낌, 그렇게 서로의 어깨를 잠깐 느낀 후, 우린 서로의 눈에 도착했다. 우리는 서로를 서로에게 초대했고, 서로로부터의 초대에 기꺼이 응했다.
쨘!
눈빛을 부딪힐 순 있었지만 손이 닿을 순 없다. 웃고 있다는 걸 알고 있지만 너의 웃음소린 들리지 않았고 나의 웃음소리 또한 네 귓가에 닿질 않았다. 그렇지만 우린 알고 있다. 서로를 바라볼 수 있는 투명한 벽을 사이에 두고 우리들의 눈빛이 포개어지는 그 순간, 우린 아주 행복했다는 걸.
우린 같은 공간이지만 어쩌면 다른 공간에 있었다. 눈을 마주칠 순 있지만 서로의 곁에 자리할 순 없었다.
하지만 지금 나의 자리가 네 곁이 아니라고 해서 눈물 흘릴 사람은 없었다. 그 시간에 눈이 서로를 향했다는 것만으로 그래서 파티가 열렸다는 것만으로, 그것만으로도 충분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분명히 분리되어 있지만 또 하나의 무리이기도 했다. 달리 말하면 그날 내 곁에 있었던 볼캡을 쓴 남자는 나와 같은 무리가 아니었다. 그는 이 파티가 흥미로워 보였는지 파티를 즐기고 있는 나와 그들을 번갈아 쳐다봤지만 발을 떼 우리의 무리로 들어오진 않았다. 다시 말하지만 그와 나는 한 공간에는 있지만 분리되어 있었다.
분리되어 있지만 하나의 무리인 반대편에 볼캡을 쓴 그와 같은 누군가가 있었다. 그와 나의 눈은 자주 마주쳤지만 또 자주 벗어났다. 그는 잔잔하고 가늘고 또 얇게 흔들리고 있었다. 그의 진동 주기는 너무나도 촘촘했다. 그래서 누군가에게는 움직임도 없이 한자리에 묵묵히 서 있는 나무처럼 보였을지도 모른다.
눈빛은 나무가 될 수 없었다. 눈빛은 '꾸밈'이라는 말을 모른다. 눈빛은 깊은 몸 안의 가늘고 얇은 진동도 꾸밈없이 반사한다. 내가 본 그는 쉴 새 없이 이쪽과 저쪽 사이를 오가며 헤매고 있었다. 이 파티에 들어올지 말 지. 그들과 나의 무리 안에 자신의 발자국을 찍을지 말지를.
그의 곁에 있는 사람들은 이미 파티를 즐기느라 그의 눈을 볼 수 없었다.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만 같은 눈빛은 반대편에 있는 오직 나만의 것이었다. 흔들리는 그의 눈빛을 따라다녔다. 이따금씩 마주치는 눈빛은 정지, 정착이라는 단어를 이름 모를 역에서 놓친 듯했다. 한 손만으론 부족해 보였다. 마치 하나인 듯 하지만 쉴 새 없이 칼날이 닿은 듯한 진동의 조각들을 모으려면 두 손이 필요했다.
난 쉬고 있던 한 손을 마저 들었다. 그에게 나의 두 손바닥을 보여줬다. 그의 눈빛은 나의 두 손바닥을 향했다. 더 이상 흔들리지 않고 고정돼 있다. 그리고 천천히 내게 찍혀 있는 점들을 선으로 이으며 마침내 나의 눈으로 자리를 옮겼다. 두 손을 펼쳐 놀라지 않게 그를 붙잡았다. 서로에게 정착된 눈, 그의 입가가 움찔거렸고 난 그의 손바닥 하나를 보았다.
매우 즐겁지만 조금은 버거운 파티다. 반대편에 사람이 많다. 그렇지만 너무 즐거워. 옆에 있는 사람의 몸을 밀어내면서 까지 내게 눈을 맞추는 사람이 있었다. 파티의 막바지, 누군가의 얼굴은 아래를 향하던 콧구멍이 옆을 향해 있기도 했다.
(((((((((깔깔깔)))))))))
괄호 안에 갇혀 들리지 않는 웃음소리였을까.
LP 바 천장에 매달린 사람의 몸만 한 스피커를 타고 흘러나와 온몸을 헤집고 다니는 그런 천둥 같은 웃음소리를, 그날 난 들었다.
강렬한 빨간 사인이 점점 흐릿해지고 검게 변했다. 파티를 즐기는 무리들은 서둘러 허공에 찍은 점을 찍고 본래의 자리를 찾아갔다. 동시에 다시 앞을 향해 나아갈 수 있다는 초록 사인이 떴다. 파티는 끝났다.
나의 양손을 본 그가 뒤돌아 나를 바라봤다. 점점 그와 내가 멀어진다. 더 멀어져 우리의 눈빛이 흐릿해지기 전에 난 다시 한번 내 두 손바닥을 그에게 펼쳐 보였다.
그렇게 순간의 파티는 완벽하게 끝났고, 아마도 우리는 또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
어떠한 준비도 없이 짧고도 긴 그리고 완벽한 파티를 즐긴 아침이었다.
마치 그 순간을 기다려온 사람처럼, 어쩌면 마치 그 순간을 주최한 사람처럼.
*
*
이번 주 화요일? 수요일이었던가. 두 시간도 채 잠을 자지 못한 아침이었다. 운전을 할까, 버스를 탈까 고민을 하다가 정신이 완벽히 돌아오지 못한 거 같아 버스를 탄 날이었는데, 신호 대기 시간에 아주 행복한 경험을 했다.
빨간 신호가 켜지고 내가 탄 버스 옆에 노란색 유치원 버스가 섰다. 투명한 유리 창문 두 개를 사이에 두고 한 아이랑 눈이 마주쳤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우린 손을 흔들며 인사를 했다. 인사 놀이는 유치원 버스 안에서 빠르게 전염됐고 내 손은 바빠졌다ㅎ 그렇게 인사(보다 놀이...)에 열중하던 그때,
한 아이가 보였다. 뒷 좌석에 앉은 단발머리 여자아이였는데 내 눈을 바라봤다가 피하고 또 쳐다보고 피하고 쳐다보기를 여러 번.
순간 잠이 덜 깨서 그랬나. 왜 그렇게까지 했는지는 나도 몰라. 두 손을 펼친 것도 모자라 거의 양팔 벌려 오두방정 AZM..... 그랬더니 배시시 웃더라.
약간 어렸을 때 나한테도 저런 모습이 있었던 것 같아서... 어릴 때뿐만 아니라 난 지금도 낯을 꽤 많이 가린다(고 말하지만 그것과 달리 처음 본 사람과 말을 꽤 잘할 때도 있는데... 이를테면 지하철 옆자리에 앉은 어르신과 한 시간 넘게 이야기를 한다던가. 여행지 카페 주인이랑도 한참 대화를. 정말 가식의 끝판왕인데... 일로 만난 사람들 중 몇몇은 내가 낯가림 대마왕이라는 걸 전혀 모르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암튼 그 아인 단지 그날 컨디션이 좋지 않았던 걸 수도 있지만. 그게 사실일 수도 있지만 이거면 어떻고 또 저거면 어때. 그 아이가 씩 웃고 손 흔들어 줬을 때... 조오큼....// 좋았다. 그 아이도 좋았기를...
한 아이와 눈 마주침, 서로를 향한 인사 그리고 그에 대한 답장. 정신 차려보니 다수의 아이들에게 폭탄메일을 날리고 있었던 그날 아침. 난 버스 환승 후 늘어지게 자고 일어나 아주 파란 아침을 맞이했다.
몽롱한 아침일거란 예상을 뒤엎고, 상쾌하고 나름 역동적이었던 그날 아침.
서로 다른 버스. 유리창 건너고 하나의 유리창을 또 건너 만난 서로. 떨어져 있지만 하나의 무리를 이루며 놀았던. 또 볼 수 있을까. 유치원 이름 기억하고 있다ㅎㅎㅎ
이미지 출처 : 사진: Unsplash의Terry Granger
사진: Unsplash의Oleksandra Sered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