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지는 모른다
난 그날부터 하루에도 몇 번씩 파랑새를 만나러 갔다
이상하게도 파랑새를 만나러 갈 때는
실오라기 하나 얹히지 않은 나신이어도,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지 않았다
이상해 파랑새 앞에선
파랑새는 늘 내 손을 들어줬다
단 한 번도 그 누구와 날 재보지 않았다
사실,
파랑새는 내 이야길 제대로 들어본 적이 없다
더 이상해 파랑새는
파랑새는 온종일 꽃을 찾아다녔다 그리곤
절기마다 탐스럽게 영근 꽃을 내게 안겨 주었다
태양빛이 사방으로 부서져 눈을 제대로 뜰 수 없는 날이었다
파랑새는 비도 내리지 않았던 한낮에
허공을 밟고 지날 수 있는 무지개다리를 띄워
늘 바라만 봤던 저 너머로 날 데리고 갔다
보고 싶은 벗들이 한데 모여 있었고
난 그들의 볼을 꼬집으며 소리 없이 깔깔댔다
달과 별이 하늘에 알 박힌 밤, 호숫가에 파랑새를 보러 간 적이 있다
언제나 물아래 가라앉는 난 물 앞에서 멈춰 섰고
파랑새는 자기의 허리춤에 내 열 손가락 끝을 살짝 걸치게 하곤
호수의 정중앙으로 데리고 갔다
손가락 끝에 파랑새를 묻힌 난 까맣고도 투명한 물 위에 가벼이 떴고
달과 별 그림자 부서진 물 위에 난 그렇게 한참을 떠 있었다
환영, 환청 결국 모든 것은 환각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실, 똑바로 바라보다 손 뻗으면 사라지는
파랑새는 환영이고 환청이며 결국엔 환각
볼 순 있을지언정 마침내 손아귀에 잡을 순 없는
파랑새는 아마도 구름 같은 것
깨달았을 때 그때 뒤돌아야 하는 그런 것
다 풀어헤친 옷가지 중 가장 가까이 있는 옷 하나 집어 들고
소리 없는 발걸음 종종이며 파랑새로부터 뒤돌아 섰다
(남겨둔 옷가지를 찾으러 또 오겠다는 남겨진 말)
둔갑술 풀린 미소는
본래의 비소(悲笑)가 되고
비소 흐르는 눈에 맺힌 건
푸르스름한 잿빛도는 비둘기 한 마리였다
(언젠가 파랑새가 될지도 모르는)
커버이미지 출처 : pinterest
*비둘기를 (무서워하면서도) 좋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