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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기, 미세방충망 그리고 물기

by 운전하는 Y
max-tutak--NOXMXHchEo-unsplash (1).jpg 사진: Unsplash의Max Tutak



오늘 난 2025년의 첫 번째 모기를 만났고, 또 보내버렸다(?).

이제 2024년에 죽은 모기를 완벽하게 보낼 차례다.


이상해. 저 녀석은 그날 죽은 게 분명한데... 어째서 지금까지도 살아있는 듯 보일까. 살아있는 것처럼 보인다면, 그러면 죽어도 산 것일까. 반대로... 분명 살아있는데 마치 죽은 듯 보인다면 그렇다면 그건 숨 쉬며 죽어있는 걸까.


처음에는 그저 부럽다고 생각했다.




*


언제부턴가 공기가 몸을 누르기 시작했다.


보이지 않지만 늘 함께 있는 공기가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할 무렵, 긴 겨울 동안 이파리 하나 걸치지 못했던 앙상한 나무도 계절의 변화를 받아들이며 수시로 얼굴을 갈아 끼웠다.


연둣빛 새순과 꽃망울이 솟았다. 해와 달이 하늘을 번갈아 오갈 때마다 그것들은 부풀었고 이윽고 터지고 피어나 각각 속살 사이에 접어둔 색을 펼쳤다. 그리곤 며칠 뒤 바닥으로 떨어졌다.


무채색의 겨울을 버티고 찬란한 봄을 틔워낸 후, 나무에 남겨진 연둣빛 이파리들은 몸집을 불리며 살을 찌웠다. 조금씩 힘을 내는 태양의 열기에 엷게 번져있던 이파리의 색들은 손에 쥐고 있던 물기를 날렸다. 날아간 물방울만큼 색들은 진해졌고 그로부터 물방울을 얻은 공기는 무거워졌다.


꾸욱- 코를 누르고 지나가는 공기의 물기 어린 피부가 느껴졌다. 가끔은 내 몸에 오래 머물러 그 물방울은 내 것이 되어 나의 피부 위에 포슬히 피어나기도 했다.



'아 답답해. 문 열어야겠어.'



집 안에 갇혀 맴도는 공기의 누름은 바깥보다 강하다. 다행히도 어둠이 살짝 깔린 창 밖에서 언듯언듯 춤선이 보였다. 색을 알 수 없는 이파리들의 춤.


집에 있는 창 중 가장 큰 창의 한쪽을 열었다. 휘- 소속을 알 수 없는 바람. 아쉬워 뒤도는 봄의 바람인지 모든 여름이 도착하기 전 남들보다 서두른, 이른 여름의 손인사인 건지. 며칠 전부터 바깥의 저녁은 집 안보다 시원했다.


문을 열면 보이는 저 산은 높진 않지만 제법 소담스러운 면이 있다. 멀지 않아서 그런가 조금만 손을 뻗으면 꼭 잡아 올릴 수 있을 것만 같다. 가까운 산 덕분에(?) 여름날에는 반가운 손님도 그렇지 못한 손님도 함께 찾아왔다. 난생처음 미세방충망이란 걸 알게 된 것도 이 집으로 이사 오면서부터다.



*



어떤 것도 들어오지 못합니다. 뚫지 못해요.


곤충에 대한 공포는 거의 없다고 해도 무방하지만 이름만 들어도 몸서리를 치게 만드는 그것들이 한 3종쯤 있으려나. 그중 하나가 모기다.


어릴 때부터 모기, 그들에게 피를 내어준 자국으로 여름날, 내 팔다리는 성한 날이 없었다. 한 방에 여럿이 있어도 언제나 모기는 내 피부에만 빨대를 꽂았다. 살짝 봉긋하게 솟은 붉은 원반형 자국이 몸의 곳곳에 피어올랐다. 자국은 참 오래도 머물렀고 어떨 때는 깊은 상처의 상흔처럼 계절을 넘기면서까지 함께 했다.


그런 내게 '미세방충망'은 '무쇠방패'와도 같았다.


잘 보이지 않아서 없는 것 같지만 이내 자국을 내고 사라지는, 잡으려고 기를 쓸수록 눈이 시려오고 어떨 땐 핏발 서는 아릿한 고통까지 맛보게 해 주는.


모기는 늘 그 순간을 보여주진 않으면서 뒤늦게 붉게 부어올라 한참을 거슬리게 하다가 지워지는 거마저 흐릿한, 아주 고약한 녀석이다.


그런 모기를 막아준다고 했고 실제로 난 4~5년가량 '미세방충망'의 효과를 톡톡히 봤다. 허락한 적도 없는데 귓가를 간질이는 '위잉' 소리는 들리지 않았고 예고 없이 꽂은 빨대에 살이 부어오를 일도 없었다.


그런데...

2025년 오늘, 난 무거운 공기의 답답함을 견디지 못하고 창문을 열었고 그리고 거의 바로... 모기에 물리고 말았다. 왼쪽 팔, 그것도 접히는 부위에 모기가 앉았다가 갔나 보다. 올해 모기와의 첫 접촉이다. 옥수수 낱알 크기만큼의 흔적이 내 몸에서 붉게 솟았다.



네가 머무른 걸 알았다면 당장에 팔을 접어버렸을 것을... 아쉽다.



들어왔단 걸 안 이상 반드시 잡아야 했다. 눈에 핏발이 서더라도 내 꼭 널 잡고야 말겠다는 생각은 머릿속 돌돌 말려 나가질 않았다.


서둘러 전기 모기채를 찾아 꺼내어 버튼을 눌러봤다. 격자 모양으로 얽힌 전력망 사이로 튀는 스파크를 확인했고 난 아주 느린 발걸음과 보안검색대의 엑스레이 같은 눈으로 벽과 천장을 훑었다.


찾았다. 불꽃도 튀었다. 나에게서 앗아간 피는 확인할 겨를도 없이 빠르게 증발했고 그 피를 머금고 있던 그도 까실하게 불타 사라졌다.


2025년 첫 번째 모기와의 만남과 이별은 그렇게 거의 동시에 일어났다.




*



사실, 집에서 모기를 다시 본 건 작년부터였다.


'어떤 것도 들어오지 못합니다. 뚫지 못해요'는 때때로 가끔씩...

'어떤 것은 들어올 수도 있어요. 가끔 뚫리기도 하니까요'로 변했다.


모기의 일방적인 승리에 바짝 열이 올라있던 작년의 어느 날 밤. 겨우 잠든 내 귓가에 겁도 없이 모기 한 마리가 알짱거렸고 난 소릴 듣자마자 일어나 불을 켜고 방문을 닫았다.



'넌 이제 갇힌 거야.'



잡기 전엔 절대 불을 끄지 않겠다고 맘을 먹고 -사실 더 독이 올랐던 것은 귓가에서 앵앵 거리는 저 모기... 저것이 빨대를 꽂기 전에 온 것이 아닌 이미 일을 다 치른 후에 왔다는 걸 확인하고부터였다- 환해진 방만큼이나 눈에 밝은 불을 켜고 벽과 천장을 더듬었다.


급하게 방문을 닫아 전기 모기채는 없다. 맨몸 전투다.


벽에 바짝 붙어있는 모기 한 마리가 눈에 들어왔다. 좀 전까지 내 몸 안에 있었던 피는 지금 저 모기의 뱃속에 들어가 투명한 배를 붉히고 있다. 더 약이 올랐다. '잡자'라는 맘을 먹고 손을 뻗친 순간, 모기는 붕- 날아올랐다.


배가 빵빵한 모기는 생각보다 빠르지 않았다. 손을 동그랗게 말았다. 마치 민물고기를 잡기 위해 계곡 물속을 휘젓는 뜰채처럼.


휘이휘이.

상상하건대 모기는 아마도 굉장히 어지러웠을 거다. 배는 부르고 둥글 둥글게 공 굴려지는 느낌을 받아 머리가 아팠을 거다.


순간, 뭔가가 스치는 느낌이 들었다. 모기는 내 손아귀에 있다. 헐거운 손아귀에 약간의 긴장을 줬고 가장 가까운 벽에 살짝 눌렀다 떼었다. 밤 중에 날 깨운 모기가 벽에 붙어있다. 움직이질 않는다. 뱃속에 있던 피는 전부는 아니지만 조금은 터진 듯했다.


난 손을 씻고 다시 잠에 들었다.




*



그날의 모기는 그다음 날도 그다음 날에도 그그그그그 다음날에도 벽에 붙어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방에 붙어있는 화장대의 천장 부분이다.


보통 잡은 모기의 흔적은 휴지로 닦아 곧바로 쓰레기통 행이다.


이상하지만 그 모기를 그 벽에 붙인(?) 순간, 난 곧바로 '내년 첫 모기를 봤을 때 치워야지'란 생각을 했다. 그리고 또 든 생각은 '그전에 죽은 것처럼 보이면 그땐 치우자'였다. 그 말인즉슨, 죽었는데 죽은 것처럼 보이지가 않았다는 거다.


살짝 터져 나온 피 덕(?)에 죽은 걸 확신한 거지... 그 모기는 꼭 살아있는 것처럼 모습이 꽤나 온전했다. 내 몸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작고 가녀린 몸과 다리, 날개 그리고.... 망할 빨대 저거. 다리도 여섯 개가 고스란히 보였고 날개도 꽤 잘 펼쳐져 있었다. 웃긴 건 그 빨대, 몹쓸 대롱이 뾰로롱,,,, 보였단 것이다.

방에 있는 붙박이 화장대는 화장실 바로 앞에 있다. 환기에 신경을 쓰지만 그래도 방에서 가장 습하다고 할 수 있는 곳.


바짝 마르지도 않았고 알코올에 닿아본 적도 없다. 나프탈렌, 실리카겔 같은 게 그 천장에 붙어있을 리도 없다. 내년을 생각했지만 저 모긴 내년까진 버티지 못할 거라는 생각을 했다. 분명히.


작년 여름의 장마철을 버텼다. 환기를 위해 연 창문에서 선선한 가을바람이 들어왔다. 여름을 버티며 꿉꿉해진 몸은 아마도 서서히 말랐을 거다. 비염쟁이의 재채기가 멈추지 않는 건조한 겨울은 매일매일 걱정이 없었겠지. 다시 봄이 오고 또다시 여름이 코앞이지만 작년의 모기는 그 모습 그대로 여전히 그곳에 붙어 있다.


모기는 자주 잊혀졌다. 아주 가끔 계절을 넘길 때마다 확인하며 있다는 걸 인지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단 확인을 할 때는 의자 위에 올라가 아주 가까이에서 살짝 눌려진(?) 모기를 관찰했다. 색이 좀 누레진 것 외에 별반 다를 것 없다. 여전히 누가 봐도 저건 모기다.


2025년의 첫 모기를 보내고 작년에 죽은 모기를 -표현이 좀 이상하고 그걸 놔둔 사람도 좀 이상해 보이지만...- 오랜만에 가까이서 봤다. 전보다 더 바짝 말랐지만 살아있는 것 같은 그 모습은 여전하다.

하지만 이젠 2024년 여름날의 모기를 떠나보내야 할 때.



*


작년 여름, 그러니까 2024년 여름은 아마도 내 평생 중 손에 꼽히는 여름이었다.


언젠가부터 계절이 바뀌는 걸 잘 알아채지 못했다. 계절이 옷을 갈아입을 때마다 물을 먹었다가 또 뱉고 날려 보냈다가 또 물을 먹고 뱉고 날려 보냈던 몸은 인식 장치가 고장이 났는지 내내 물을 뱉기만 했다. 그렇게 뱉고 또 뱉었다.


죽었니, 살았니.

분명 거울을 보면 가슴 윗부분이 부풀었다 가라앉았다를 반복하고 입과 코에선 빠져나오고 들어오는 느낌이 드는데... 그것뿐이다. 숨 쉬며 죽어가는 혹은 숨 쉬며 죽어있는. 흐르는 피가 없었다면 사람들은 영락없이 날 죽은 사람으로 봤을지도 모른다.


계절과 관계없이 마냥 뱉어내기만 한 몸뚱이에 가장 많이 남은 물기는 아마도 혈관을 타고 흐르는 붉은 피.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돌고 도는 피. 푹 찌르면 흐르는 피 덕분에 나 혹은 내가 아닌 그들은 그나마 내가 살아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붉은 피. 펌프질 하는 심장 그리고 몸의 떨림. 어떤 날은 저 아래 복숭아뼈에서 느껴지는 심장의 펌프질 소리를 들으며 살아있음을 온몸으로 말하는 스스로를 원망했다. 아마도... 그게 작년에 죽은 모기가 지금까지 내 방에서 살아있을 수 있던 이유이지 않을까.



모기가 내게 빨대를 꽂아 약간의 피를 가져갔을 때, 순간 열이 올라 눈에 불을 켜고 그 모길 잡았지만 이내 정신을 차리고 뱃속에 내 피를 담고 있는 모기를 봤을 때 난 왠지 모를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소량의 피를 내어준 나는 순간, '숨은 쉬고 있지만 드디어 완벽하게 죽었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거기에 더해 죽었지만 온전한 모습인 모기를 보면서 또 그 모기가 품고 있는 나의 피를 보면서 '완벽하게 죽은 나는 저 안에서 다시 태어났구나'라는 상상을 했다. 나에겐 이제 피가 없고 주변에 있는 모두가 날 죽었다고 생각하겠지만 사실 난 죽은 듯 살아있구나라는 상상도. 아무도 모르지만 썩어 문드러지지 않고 잘 살아있다는 상상도.



*



상상 속이지만 드디어 난 내 몸 안에 있는 모든 물기를 뱉었다.

그때부터다. 날 둘러싼 까만 구름이 걷히기 시작했다.


바짝 말라죽었지만 여전히 숨은 쉬고 있는 몸을 데리고 밖으로 나가 늦은 여름의 물기를 빨아들였다. 습한 공기의 무게가 피부로 느껴졌다. 가끔은 내 피부에 머무른 물기를 그대로 올렸다. 가끔은 너무 많은 물기를 빨아들여 옷이 젖기도 했다. 뱉어내기만 했던 몸에 물이 차올랐다.


늦은 여름, 난 급히 빨대를 꽂아 쪼옥쪽 빨아먹은, 찰랑이는 물과 함께 있었다. 난 때때로 물 밖에 나와 발만 담그기도 가끔은 물속 깊이 잠수를 하기도 했다.


보기 싫은 건 물 뒤에 서서 흐릿하게 봤다. 보고 싶은 건 동그랗게 말은 손으로 눈을 비벼 물기를 걷어내고 봤다. 듣기 싫은 소리는 잠시 물속으로 들어가 마치 가운데 페달이 눌려져 있는 피아노의 소리처럼 묽게 들었고, 원하는 소리는 조금도 잃는 것이 아까워 물가에서 빠져나와 모든 신경을 소리 쪽으로 모았다. 귀로 듣고 눈으로 보고 입으로 먹었다. 공기 중에 떠다니는 소리의 진동까지... 팔다리를 나풀거리며 내내 묻혔다.


바짝 말라 숨만 쉬고 있던 몸엔 그렇게 다시 물기가 돌았고 내 피를 얻어, 죽었지만 산 듯한 그 모기는 정말로 점점 바짝 말라갔다.



*


2025년 여름의 초입.

바깥의 모기 한 마리가 용케 틈을 찾아 안으로 들어왔다. 작년 그 모기와 같은 길이었으려나. 하지만 끝은 달라. 난 바짝 말라있지도 않고 그 모기의 뱃속에 있는 내 피를 확인하며 카타르시스를 느낄 일은 더더욱 없다.


단지 오늘 모기와 만남은... 작년 내 피를 앗아가 죽어있지만 여전히 이곳에 살고 있는 그 모기를 완벽하게 떠나보낼 수 있게 되었다는 그 의미 하나뿐이다.


어떤 것도 들어올 수 없다던 미세방충망을 뚫고 들어온 2024년 그날의 모기를 떠나보낼 준비를 마쳤다.




'어떤 것도 들어오지 못합니다. 뚫지 못해요'는 때때로 가끔씩...

'어떤 것은 들어올 수도 있어요. 가끔 뚫리기도 하니까요'로 변했다.


'어떤 것도 나가지 못합니다. 뚫지 못해요.'는 때때로 혹은 자주

'어떤 것은 나갈 수도 있어요. 가끔 뚫리기도 하니까요.'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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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모기는 ......................

제목은 영화의 그것에서

20250605인지 0606인지 달이 떴을 때



커버이미지 출처 : 사진: UnsplashNE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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