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의 시작은 예정에 없던 초록색 양상추였다.
붉지 않고 초록이라 다행이었다. 갈피를 잡을 수 없고 두서도 없지만 초록이라 멈추지 않고 나아갔다.
마지막은 재밌었고 또 맛있었다.
난 오늘 냉장고 문을 열어 가장 먼저 보이는 걸로 배를 채우기로 맘먹었다. 냉장고 문이 열리기 전, 나의 생각은 이랬다.
'난 아마도 두 눈이 바라보기 딱 좋은 곳에 자리를 잡은 파김치를 꺼내들 거야. 그리고 누룽지 한 줌과 물을 냄비에 넣고 끓이겠지. 오늘은 파김치에 누룽지. 고추장 멸치볶음도 꺼내자. 누룽지 (대체)짝꿍으로 만든 거니까.'
얼마 전 어머니는 파김치랑 총각김치를 가져와 냉장고의 가장 좋은 자리에 놓고 가셨다. 속이 잘 보이는 투명한 밀폐용기에 총각무와 쪽파가 붉은 칠을 하고 누워있다. 이제 막 익기 시작한 듯 살짝 숨이 죽은 모습. 틈 없는 고무패킹 뚜껑으로 사방이 막혀 있지만 풋내가 가시고 막 익기 시작할 무렵의 군침 도는 냄새는 코가 아닌 눈으로도 충분히 느껴졌다.
생각은 파김치였지만 마음 한편에선 얼마 전 다 먹은 양념오징어젓갈을 떠올리며 입맛을 다셨다. 내 기준에서 누룽지의 진정한 짝은 양념오징어젓갈이다.
시판 오징어젓갈을 가위로 잘게 다진다? 느낌이 안 산다. 가위로 조사버린다. 거기에 씹히는 느낌이 날 만큼 굵게 다진 마늘을 크게 양손주먹으로 넣고 청양고추도 잘게 썰어 들이붓는다. 꿀도 기분 따라 두른다. 마지막으로 붉은 젓갈색이 안 보일 정도로 볶은 참깨랑 해바라기씨를 소복이 덮는다. 숟가락으로 누르면 깨랑 해바라기씨가 부딪혀 바작바작 소리가 날 정도로. 그리고선 둥글게 둥글게~ 휘젓는다.
1kg 오징어젓갈을 사서 이것저것 넣고 양념을 하면 그 끝엔 1.5.kg 가까이 불은 오징어젓갈이 놓여있다. 누가 그래? 젓갈 오래 두고 먹는 거라고? 앉은자리에서 밥 두 공기 내지 누룽지 냄비 한 솥을 다 사라지게 함으로... 또 놀러 온 사람의 집으로 가기도 하고... 암튼 그 양은 그리 오래가진 않았다. 그래서 오늘 오징어젓갈은 없다.
아쉬운 오징어젓갈은 뒤로 하고 같은 붉은색의 파김치를 예상하며 냉장고 문을 열었다. 오늘따라 눈길이 아래로 뚝 떨어졌고 사놓은지 한 3~4일 정도 된 포장도 속도 초록색인 양상추 한 통이 가장 먼저 내 눈에 맺혔다.
* 잡상(雜恦)의 언저리
양상추를 인지하고선 냉장고에서 꺼냈다. 그리고선 '일어나자마자 부엌일 하게 생겼네'라며 투덜거렸다. '누룽지에 파김치'면 끓이고 덜어만 먹어도 한 끼가 끝날 것을. 양상추는 다듬고 씻고 물기도 탈탈 털어야 한다. 거기서 끝이 아니다. 단독으로만 먹긴 아쉬우니 함께 먹을 것들도 손질을 해야 한다.
샐러드로만 먹기엔 너무 아쉬워서 다시 한번 냉장고를 열어 그를 털기로 했다. 꽁꽁 언 닭가슴살 한 덩이와 식빵 두 쪽, 달걀 하나를 꺼냈다. 치즈, 피클, 마요네즈, 홀그레인머스터드를 집어 냉장고에서 볼 일을 마치고 순후추, 통후추, 크러쉬드페퍼, 바질오일도 서랍에서 빼냈다.
그래, 오늘 메뉴는 샌드위치다.
* 잡상(雜恦)의 시작
달걀 프라이를 한 개만 하는 건 내게 있어 말이 안 되고, 반숙이 아닌 완숙프라이는 더 말이 안 되지만 샌드위치 먹다가 입에 개나리색 물감칠을 하기 싫어 결국엔 꾹꾹 눌러 노른자를 익히기로 했다. 노른자를 익히기 전 통후추를 갈고 크러쉬드페퍼도 잔뜩 올렸다. 바질오일도 한 바퀴 휙 둘렀다. 그리고 뒤집어 곧바로 정말! 꾹꾹꾹 눌렀다.
풀어헤치지 않은 노른자가 온전한 모습으로 꾹 눌려 촘촘한 밀도를 가진 완숙이 되었을 때, 그걸 베어물 때 이가 스으으응웅! 들어가는 느낌이 좋다.
위아랫니가 노른자를 가르고 지나 결국 만났을 때, 기분이 좀 이상하고 묘해. 브라우니를 먹을 때도 그래. 조금은 다르지만 어묵탕 속 무를 베어 먹을 때도.
마치 서로 떨어져 있는 무언가가 꽤 잘 달라붙어 있지만 겉보기에 단단해 보이지만 그렇다고 딱딱하다고 말할 순 없는 것을, 절대로 파괴하지 않고 반듯하게 가르면서 결국엔 만나게 되는.
이런 느낌을 좋아한 지는 꽤 됐다. 아주 어릴 적부터.
좀 헷갈린다. 떨어져 있는 위아랫니가 만나는 게 좋은 건지 어쩐 건지 말이다. 오늘 달걀 프라이를 하다가 문득 든 생각은 어쩌면 내가 좋아한 것은 베어 물은 무언가가 반듯하게 갈라지는 느낌일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흐트러지지 않고 잘 나뉘어 다시 온전한 각각의 하나가 된다.
부스러기 하나 없이 파괴의 흔적 없이 갈라져 영원히 하나일 줄로만 알았던 그것이 두 개 혹은 그 이상으로 다시 태어난다(결국엔 저작되고 소화되지만,ㅎㅎㅎ).
샌드위치에 올릴 달걀프라이 말고 그냥 입안에 홀랑 털어 넣을 프라이를 하나 더 안 한 걸 후회하며 양상추 씻기에 돌입했다.
* 잡상(雜恦)의 중간
3~4일 전, 살 때는 그날 당장 해먹을 심산으로 산 양상추였지만 어찌 된 일인지 그날 저녁 양상추에 손이 가질 않았다. 그렇게 양상추는 냉장고 안에서 포장도 뜯기지 않고 수 일을 머물렀다.
오늘 드디어 포장을 벗겼다. 벗겨진 것과 같은 색의 양상추가 모습을 드러냈다.
샌드위치에 양상추 한 통은 무리다. 양상추를 자르기 위해 칼 쪽으로 손을 댔다가 아참참, 뻗었던 손을 다시 원래 자리로 되돌렸다. 그리고선 겉에 마른 잎을 몇 장 떼어내고 먹을 만큼 한 겹 한 겹, 수 겹을 떼어냈다.
언젠가부터 양상추에 칼을 대지 않는다. 피를 보기 싫어서다. 양상추 한 통은 보통 한 끼에 없어지지가 않아 두세 번에 나눠 먹는데 늘 처음 먹을 땐 초록초록한 양상추 그다음에 또 그다음에 먹으려고 남은 걸 꺼내보면 양상추는 울긋불긋, 피눈물 범벅으로 울고 있었다.
앞으로 나아갈 시간을 약속받은 양상추는 시간이 지나도 울지 않는다. 대신 야들야들 힘 없이 얇은 이파리엔 조금씩 힘이 생기고 몸집도 옆으로 위로 자라난다. 앞뒤 마주 본 이파리도 옹골지게 영근다. 이파리 사이의 틈은 좁혀지고 틈이 사라질수록 무게도 늘어난다.
내가 본 양상추는 대부분 끝이 보이는 시간 안에 갇혀 있었다. 그리고 다양한 방식으로 해체됐다. 그리고 남겨졌다. 떠나보내고 남겨진, 양상추는 자신의 옆으로 흐르는 시간을 따라 끝에 다다를수록 점차 붉은색으로 변했다. 과일, 채소의 색이 변하고 곪고 썩는 건 막을 수 없는 것이지만... 아프게 변하는 걸 볼 땐, 언제나 가슴이 먹먹하다(그러고선 잘 먹을 테지만).
어디서 봤는지 기억이 잘 나진 않는다. 양상추에 칼이 닿으면 더 빨리 붉어진다고 했다. 그때부터 조금은 번거롭지만 손으로 하나씩 떼어주기로 했다. 그리고 남은 양상추들은 겹겹이 떼어 물이 담긴 깊은 통에 넣어주었다.
만약 내가 양상추라면... 결국 마지막이 피눈물 범벅이 될지언정 누군가를 탓하고 싶지는 않다. 누군가의 칼질을 핑계 삼고 싶지 않다.
본래의 모습으로 끝을 맞을 수 있게 해주는 사람이 나타난다면 그렇다면 아마도 많이 고마워하겠지.
* 잡상(雜恦)의 끝
양상추 물기도 모두 털어냈다. 잘 구워진 빵에 하나하나 쌓아 올리기만 하면 된다.
밥숟가락으로 듬뿍, 오돌오돌 씹히는 맛이 좋은 홀그레인머스터드를 떠서 식빵 한쪽에 슥슥 발랐다. 물기 마른 양상추를 겹겹이 잘 포개어 소스 바른 식빵에 놓고 손으로 북북 찢어서 팬에 바싹 구운 구운 닭가슴살도 올렸다. 빠지면 섭섭한 치즈 한 장, 노른자 꾹꾹 눌러 익힌 완숙프라이 그리고 피클을 차례대로 얹었다.
이제 남은 건 반대편 식빵 한쪽. 이번엔 홀그레인머스터드가 아니고 마요네즈다. 식빵 위에 마요네즈를 북북 짜서 겨자씨가 조금 묻어있는 숟가락으로 잘 펴 발랐다. 그리고선 순후추를 팍팍 뿌렸다. 붉은 오징어젓갈을 가린 볶은 참깨와 해바라기씨처럼, 순후추는 식빵 위로 무수히 떨어져 크림색 마요네즈를 덮었다. 후추는 곧바로 진득한 마요네즈에 찰싹 달라붙었고 난 재채기는 하지 않았다.
나는 후추 애호가다. 곰탕, 갈비탕을 먹을 때도 '후추탕'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후추를 많이 넣어 먹는다. 후추는 재밌다. 뿌릴 때부터 간질간질하고 본격적으로 뿌려서 먹을 때는 맵싸하고 톡 쏘는 게 재밌다. 매운 것은 더 맵게, 밋밋한 것도 쨍하게 만들어주는 재밌는 가루다.
후추는 입으로 느끼는 맛도 맛이지만 뿌리는 맛이 일품이다. 톡톡 뿌리는 거 말고 거의 쏟아부을 정도로 팍팍팍 뿌릴 때, 그 느낌이 기분이 좋아서 난 후추애호가가 됐다.
경양식 돈가스를 시키면 크림수프가 나온다. 어떨 땐 수프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후추를 뿌린다. 같이 먹는 사람들이 입을 떡 버리고 놀랄 정도로. 그들의 표정에서 마음이 읽힌다.
'음식이 망가졌어.'
아마도 그들은 완성된 음식이 나로 인해서 망가졌다고 생각했겠지. 내가 후추를 마구 뿌리는 이유도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걸, 그들은 알까.
언제부터였을까. 손에 쥔 완성이 영원하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공 들여 진행하는 과정에서 무너지기도, 바로 눈앞 목적지를 두고 넘어지기도 하지만, 완성했다고 여긴 것이 나 또는 다른 요인에 의해서 파괴될 때, 충격은 가장 컸다. 받아들이는 것조차 감당하기 힘들었고 후유증도 길었다.
그때부터 내게 있어 '완성'이란, 파괴되기 직전까지만 허락된 말. 그렇게 생각한 뒤에는 완성에 이르는 완성을 지키는 완성을 떠나보내는, 모든 것을 감내하며 받아들이고 뒤를 준비할 수 있는 아주 약간의 여유(?)가 생겼다.
다 된 밥에 재 뿌리기.
잘 완성된 음식에 시꺼먼 재 같은 후추를 뿌린다. 뒤에 음식이 안 보일 정도로. 이 음식은 완성된 음식일까, 아니면 다시 만들어야 하는 아직 시작도 못 한 음식일까.
아무렴 어때. 난 사람들의 시선에 맞춰 완성된 걸 망치는 기분으로 후추를 뿌린다. 완성된 걸 기꺼이 망치는 사람이 된다. 사람들이 망가졌다고 말하는 것을 받아들인다. 망가진 완성을 받아들인다. 현실에서 받아들이기 힘든, 파괴된 상황을 작은 후추통 하나에 기대어 연습에 또 연습을 하며 받아들이는 상상을 한다.
사실 후추 범벅 크림수프는 굉장히 맛있고, 후추를 팍팍 뿌릴 때 약간의 쾌감 그게 꽤 좋다고 한다.
오늘은 크림수프 대신 식빵이다. 후추 범벅이 된 식빵을 가장 위에 올려 꾹 누르고 유산지로 꽁꽁 싸맸다.
* 잡상(雜恦)의 바깥
드디어 샌드위치가 완성됐다. 초록 양상추를 많이 넣어서 오늘 샌드위치는 꽤나 통통했다. 샌드위치 하나 먹는데 목이 왼쪽으로 꺾였다가 오른쪽으로 꺾였다가 난리도 아녔다.
오늘은 오랜만에 집에서 샌드위치를 만들었다.
오늘 샌드위치는 유난히 초록색이었다.
샌드위치는 맛있고 또 생각이 많았다.
샌드위치는 재밌고 또 멈추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