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봄에 유기견과 함께하게 된 이의 집에 초대를 받아 다녀왔었다. 유기견과는 같이 지낸 지 반년여 되었다는데, 아마도 전에 학대를 많이 받아서 그런지 그 개는 내내 의자 아래에 숨어 가만히 있었고, 항상 바닥만 보고 있으며, 짖지도 않고, 밥도 간식도 뭐든 아주 조금만 먹고, 아니, 잘 안 먹었다. 정성스러운 보살핌 가운데 생전 처음 안전한 곳을 찾은 듯 보였지만 아직 다 안심하지는 않은 듯했다.
그런데 세상에나. 근처 공원에 데리고 나갔더니 녀석은 엄청 기뻐하면서 같이 산책 나간 우리 일행, 특히 일행 중 어린이가 자기를 잘 따라오는지 확인하며 걷는 것이다. 자꾸 뒤를 돌아보면서. 제몸도 성치 않은 녀석이 앞장을 서더니, 언덕으로 된 공원에서 좀 경사가 덜한 완만한 길로 일행을 챙기고 이끌었다. 선선한 바람이 기분 좋게 불었다. 완연한 봄날의 오후였고 대견한 녀석이었다.
봄날과 닮은 여름 풍경
그러고서 얼마 지나 초여름 무렵의 일이다. 다른 지인 M의 연락을 받았다. 휴일 정오였다. 휴대폰 너머 그이는 큰 한숨을 푹푹 내쉬더니, 얼마 전 피치 못할 사정으로 좁은 곳으로 이사를 했다고 한다. 불쑥 그이가 고백을 쏟아낸다. 키우던 강아지를 버렸다고. 와르르. 아.
이런저런 연유로 피치 못하게 이자가 센 사금융(제도권인데 법정 최고이자율 수준)을 쓰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살던 집의 보증금을 빼내서 눈덩이처럼 불어난 이자와 원금 일부 상환하고서, 이사 가게 되었다고 했다. 이사 예정지는 도저히 강아지를 키울 수 없는 곳인데, 이사하는 날 당일까지 강아지를 어찌할지 혼자서 끙끙 고민만 하다가, 이사하는 당일이 되자, 한낮에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어느 사거리에 두고 왔다고 한다. 아. 펑펑 우는 그이의 울음소리에 당황하여 뭐라 답할 말을 찾지 못하는 사이에 여러 가지 생각이 오갔다.
대책 없이 그이가 버린 강아지도 사실 처음에 거의 유기견이나 다름없는 상태에서 구조하다시피 해서 데려와 길렀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다. 펫샵의 비좁은 우리에서 한 달이고 두 달이고 석 달이고 살거나 혹은 그러다 훅 꺼져버리는 생명들. 그걸 거의 매일 볼 수밖에 없던 그이는 월급을 타던 날, 돈을 주고서 한 생명을 우리에서 꺼내왔다. 갖은 고생으로 겨우 마련한 아늑한 작은 보금자리에 강아지와 함께하는 행복한 사진을 보던 날, 참 좋았다. 행복만 가득하길, 평화롭게 지내길.
자세한 건 쓸 수 없지만, 보통 사람들의 상상을 너무도 간단히 초월하는 삶의 여건에서 오랜 기간 쌓여온 고립감, 피로감이 놓여 있는 그이이기에, 고통을 좀 아는 척하되 실제로 아는 건 쥐뿔도 없으니까 섣불리 조언하거나 격려하거나 꾸짖지 않기로 한다. 모든 일에는 순서가 있는 법이니까. 동시에, 어떤 난관에 봉착하면 종종 더 힘들고 괴로운 해법으로 치닫고 마는 비참한 세계라는 걸, 그런 세계에서 나도 살아가고 있다는 걸, 적어도 이점은 잊지 않기로 한다.
아주 가끔씩 정오 때 인파 가득한 사거리의 황량한 풍경과 그이의 비통하게 누적된 무기력을 떠올린다. 합법적이라지만 그래도 최고이자율 20%이라서 돈을 빌려서 되갚기 힘겨운 그이. 한낮 작렬하는 초여름 태양 아래 낯선 곳에서 서성였을 그이의 강아지는 어디로 갔을까? 강아지가 살처분되지 않고 어딘가에 살아있기를, 앞으로 그이가 비싼 이자돈을 빨리 갚고, 자신만큼이나 소중한 존재도, 자신도 지키며 살아갈 수 있게 되기를 바라며, 그러기 위해서 좀 더 나은 세상을 우선 소망하지만... 글쎄 잘 모르겠다.
이제 한국의 세 가구 중 한 가구가 반려동물과 사는 시대라는데, 팬데믹을 거치며 동네에는 펫샵이 세 개나 생겼다. 유구한 역사 가운데 인간이 인간의 입맛에 맞게 만들어온 품종견, 품종묘들이 유리문 안 층층우리에 들어 있다.
상반되는 두 가지 사건이 나의 가까이에서 왜 일어났을까 오래 생각했다.
그간 동네 플로깅을 하며 주워온 쓰레기 가운데 가장 빈번하게 주은 쓰레기 중에 하나가 불법사채명함이었다. 요새는 뿌려진 양이 덜해 덜 줍는 편인데, 가끔 나한테도 피싱문자가 오는 걸 보면, 이제 모바일 등으로 광고수법을 바꿨나 싶기도 하다. 플로깅 기록을 올리는 나의 브런치 글 중 압도적인 조회 수는 변함없이 ‘불법 사채 광고 명함, 신고해봤습니다’이고, 많은 이들이 불법 사채, 법정이자율과 같은 검색어로 정보를 찾아오는 듯 하다.
작년 12월부터 2023년 1월 사이에 법정최고이자율을 인상한다는 소식이 나왔었다. 자주 불법사채명함을 주웠었으니까 유심히 보았다. 정부가 TF팀까지 만들며 현재 법정 최고금리 연20%에서 더 올려서 저신용자 구제를 한다는 것인데, 실질적인 ‘법정최고이자 인상안’이었다. 이자제한을 완화하여 금리변동성을 키워서 경기부양을 하겠다는 금융당국 노림수인데, 이미 고금리 이자에 허덕이는 사람들이 많고 금리변동성 확대가 단기, 중장기 경기부양에 미치는 효력도 미심쩍었다. 다행스럽게도 이 안은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그리고 올 3월 초 헌법재판소에서도 현행 이자제한법은 합헌을 받았다. 이 헌법소원을 누가 냈지하고 찾아봤다. 최고이자율 제한이 위헌이라고 헌법소원을 낸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이 지인한테 1억8천을 빌려주고 선이자 3천을 받고 그 후 6300만원 이자를 받아서, 법정최고이자율을 초과했다는 혐의로 재판에 넘겨지자 소원을 낸 것이었다. 다행히 헌재가 최고이자율 제한조항의 입법 정당성을 인정했다. 역대정부는 지속적으로 법정최고이자율을 낮춰왔고, 이는 민의가 반영된 것일텐데. 그래요, 국민은 늘 무조건 옳다는 그 말, 그렇죠. 그런데 정말 그렇습니까?
뭐, 이 정도로 다행이며 이 정도로 난감한 세계- 지금 우리가 도달한 이 정도의 세계에서 살고 있다.
유엔에서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휴전 결의가 채택된 날 2023년 10월 28일 오늘. 10.29 이태원참사 1주년 159명의 소중한 생명을 기억하고 애도한다. 158명은 이태원 골목에서 그리고 1명은 트라우마로 나중에 목숨을 잃었다. 얼마전 내가 잠시 그 어깨에 올라탄 거인...평화운동가이자 화학자(노벨화학상, 노벨평화상 수상자) 라이너스 폴링Linus Carl Pauling의 말을 떠올리며 이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