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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기 Feb 02. 2024

너무 늦은 사춘기

나는 어떤 사람인가


사회적 기준으로 내 삶을 바라보면 좀 조이는 기분이 든다. 그냥 조급한 기분이 드는 게 아니라 가슴이 답답해지고, 장기가 조여드는 것 같은 신체적인 느낌이다. 나는 85년 12월 말에 태어났고, 호적상으로는 86년생이다. 아빠는 괜히 빨리 나이 먹어서 억울할 거 없다고 일부러  출생 신고를 늦게 했다고 했는데, 그게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85년생이라는 걸 더 강하게 자각하고 있다. 고등학교 때부터 친했던 친구들도 대게 빠른 년생이라서, 사회생활을 시작한 후로는 모두 학창 시절보다 나이를 내려서 얘기하고 있는데, 나는 왠지 내 나이에 대해 자꾸 엄격해진다.

한국 나이 기준으로 치면 내 나이는 올해 40살이다. 이제 우리나라도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춰 만 나이를 세기로 했다고 하고, 그러면 이제 호적상으로든 생일로든 내 나이는 38살인데, 나는 자꾸 ‘마흔’인데 이것밖에 안 됐어하는 감각을 느끼는 것이다.      


겨울을 맞이해서 지난가을 반짝 호황이던 숙소는 개점휴업 중이고, 남자친구는 집 짓는 일터에 가서 하루 일당 15만 원, 한 달 300만 원을 받는데, 나는 집 안에 앉아 글월이나 적겠다고 시간을 보내고 있으니, 아무리 마음을 단단히 먹었더라도 종종 ‘이게 맞나’하는 생각이 들면서 가슴이 답답해지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은 그런 생각 때문에 제주에서의 지난 4년 정도를 아깝게 흘려보냈다는 생각이 든다. 일을 할 때도 있었고, 공연도 했고, 인간관계도 쌓고, 이런저런 일들을 도모하며 보냈지만 오히려 그런 불안감 때문에 집중을 못 하고 일의 효율도 떨어질 때가 많았다. 개들을 구조하는 일도 그랬고.      


제주에서의 지난 4년은 개들을 ‘구조’-라는 말이 너무 거창하지만 대체할 말을 찾지 못해서 쓴다.-한 것을 빼놓고는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래서 요즘은 2월 까지를 목표로 지난 시간 동안 개를 구조하고, 입양 보낸 일에 대해서 글을 쓰고 있다. 책으로 엮는 것이 목표인데, 책을 쓴다고 말하기에는 아직 쑥스럽고 거창하지만 그래도 ‘책’을 내야 할 것 같다. 그러지 않으면 또 혼잣말에 그치고 말지도 모르니까. 오전 10시에는 책상에 앉아서 2시간 정도 쓰고, 한 시간 정도 쉬었다가 또 오후에 3시간 정도 쓰는 것이 목표인데, 직업 작가도 아니면서 하루에 5시간씩이나 글을 쓰는 게 호사처럼 느껴질 때도 있고, 그 시간 동안 이것밖에 못 쓰다니 실화냐 싶을 때도 있고, 실제로 해야 할 일들을 제쳐두고라도 글을 쓰는 시간을 확보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될 때도 있고, 당장 해야 할 많은 일들-집안일이나 숙소 홍보라던가-를 미루고 글을 쓰는 게 한량 같은 짓인 것 같기도 하고, 바쁘게 손가락을 놀리지 않는 많은 시간은 이런저런 번뇌로 시간이 간다.   

   

내가 요즘 쓰는 ‘동거’라는 주제를 생각하면 결혼한 것도 아니면서 남자친구에게 생계를 맡겨 두고 두 달씩이나 글만 쓰겠다는 게 괜찮은 걸까 싶은 생각도 드는 것이다. 이상한 일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럴 거면 결혼을 왜 안 하는겨? 결혼과 동거의 차이는 뭔데? 잘 모르겠으니까 좀 생각을 해 봐야겠어. 하는 생각의 고리가 또 계속되는 것이다. 나도 생각 안 하고 그냥 할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다.  

    

그러면 나는 대체 어떤 사람인가? 이 질문에 와서 다시 나이 생각으로 돌아간다. 나이가 마흔이 다 됐는데 내가 어떤 사람인지도 모른다고? 지금이라도 내가 어떤 사람인지 잘 살펴보자. 아, 나는 마흔이 됐고, 아직 내가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는구나. 에 까지 이르는 것이다. 그러다가 내가 어떤 사람인지 꼭 앉아서 글을 써야 알 수 있는 거야? 오히려 바쁘게 일하고 돈 벌고 있지 않아서 생각만 더 복잡해지는 거 아니야? 에 이르고, 나는 왜 지금까지 제대로 돈 벌 궁리 하나 못 한 거지? 싶다가 갑자기 가슴이 답답해지는 것이다. 숙소를 열었다고 해도, 내 집도 아닌 세를 얻 집에서 하는 것이니 한시적이고, 커리어가 쌓이는 것도 아니고, 내 또래의 다른 사람들은 뭔가 하나씩 자기 분야를 갖고 있는데, 나는 나이에 비해 이룬 것이 하나도 없는 것 같다. 연기를 꽤 오래 했다고 치지만 남들에게 내세울 만한 작품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연기자로서 증명할 것도 아무것도 없고, 지금은 자신감도 없다. 아무것도 이룬 것 없이 글을 쓰겠다고 작은 원룸에 나를 묶어둔 현실이 갑자기 두려움으로 나를 옥죄었다. 이런 기분을 벗어나는 방법은 천진한 관점을 가지는 것뿐이다. 괜찮아, 봄이 되면 숙소가 다시 잘 될 거야. 돈이 필요하면 벌면 되지. 뭐든 아르바이트하면 되고.      


돈이 필요하다. 내 강아지 키우는 데는 물론이고, 길에 돌아다니는 강아지를 봤을 때, 선뜻 병원에 데려가 동물등록칩이라도 확인해 보려면, 주인이 잘 돌보지 않는 개에게 밥이라도 좀 나눠주려면, 추울 때 집푸라기라도 사서 깔아주려면. 그러니까 오늘 아침에 동네 초입의 하우스 앞에 묶여 사는 강아지에게 밥을 갖다 주고, 볏짚을 깔아주고 오면서, 신발에 묻은 똥인지 흙인지를 닦아 내면서 여기까지 생각이 온 것이다.     

 

강아지들이 없었다면 우리는 같이 살게 되지 않았을지도 모르지만, 강아지들 때문에 헤어질 뻔 하기도 여러 번이었다. 생활이 빠듯한데 안쓰럽다고 덜컥 구조해 버린 강아지는 여러 번 분쟁과 혼란의 원인이 되었다. 나는 왜 안쓰러운 강아지들을 외면하지 못하는가, 그렇다고 완전히 헌신하는 사람들처럼 내 삶을 희생하지도 못하면서. 그 어중간한 가운데서 나는 늘 괴로운데, 이렇게까지 괴로워하는 나는 어떤 사람인지 그걸 직면하는 게 어려워서 이렇게 중언부언이 길다.


‘나를 안다’는 것은 내 취향을 안다는 것과는 다른 얘기인 것 같다. 지난해 말에 이런 생각과 정리를 했다. 나는 나를 잘 모른다. 내 또래의 다른 사람들보다 나 자신을 잘 모르다. 자랑할 일은 아니고, 많이 늦었지만 더 늦어지면 더 힘들어질 것이다. 나에게 많은 것을 기대하지 말고, 부족한 나를 인지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 어쩌면 최대한을 하자. 글을 쓰기 시작한 게 그 하나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건 결혼에 대한 질문이 아니다. 나에 대한 질문이다.



아침에 밥 주고 온 하우스 앞 멍뭉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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