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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기 Mar 21. 2024

흰 드레스 대신 흰머리

나이 먹기 싫어서 결혼을 안 하는 걸까나?


연재를 시작했지만 몇 주 동안 쓰지를 못 했다. 이렇게 게으르고 무책임하다니. ‘연재’라는 강제성을 부여하면 뭐라도 쓸 줄 알았는데, 엉망인 채로 글을 내보낸다는 생각 때문에 더 괴로웠다. 그리고 1월부터는 강아지들을 입양 보낸 이야기를 썼다. 이제 그 글을 마무리해야 하는데, 동네에 있는 다른 강아지들 때문에 도무지 마감을 하지 못하고 있다. 글을 끝낸 다음에야 개를 더 구할지 말지 결정이라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시작한 거지만 그게 잘 안 된다.      


30대 후반을 지나는 동안은 내내 나의 부족함을 깨닫는 순간들뿐이다. 나에 대한 기대가 너무 높았던 나머지 이상을 높게 설정하고, 그에 미치지 못하는 자신을 탓하곤 하는 날들이 이어졌다. 20대 후반, 30대 초반까지는 그럭저럭 목표한 일들을 해 내기도 하고, 시간이 많이 남아있다는 생각 때문에 느긋해지기도 했었는데, 제주에 온 지 4년이 지난 지금까지 내내 조급함과 스스로에 대한 불만족, 그리고 게으름이 함께 하는 나날이었다.      


4년 이라니. 4년 전 제주에 왔던 2월도 지났으니 이제 우리의 동거 생활도 이제 5년째에 접어들었다.      

동거 생활에 대해 쓰자면 할 말이 많을 줄 알았다. 그런데 어딘가에서 본 말처럼 고민을 끝까지 안 하고 늘 고만고만한 번뇌를 안고 살아가다 보니 그게 익숙해졌는지, 글감이 될 만큼 머릿속에 정리가 되어 남아 있지를 않는 것 같다. 그리고 하루하루는 그냥 일상이 되어 흘러가는데, 우리가 동거 중인지, 결혼 생활 중인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고 그냥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물론 주변에 친구들이나 지인들이 오랜 연애 끝에 결혼을 하거나, 아기를 낳거나, 혹은 그 아이들이 자라는 걸 보면 그때마다 세월을 느끼면서 내가 제대로 살고 있는 걸까 하는 불안이 느껴질 때가 있다. 하지만 이렇게 저렇게 생각을 해 봐도 내가 아이를 낳을 것 같지도 않고, 진작 결혼을 했다고 해서 아이를 낳았을 것 같지도 않다. 그렇다면 결혼=아이 인가? 그건 아니겠지만 결혼을 했다면 지금 결혼에 대해 고민하고, 남들이 얘기하는 것만큼 아기를 낳는 것에 대해 고민하고 얘기를 듣게 됐을지도 모른다.      

아기를 낳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결혼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만약 아기를 낳고 싶었다면 결혼을 적극적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줄곧 나는 자라지 않은 느낌을 받는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다고 해서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결혼을 하지 않음으로써 어른이 되는 것을 유예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우기는 어렵다. 얼마 전 엄마 생신이라 집에 가는 길에 갑자기 공항에서 정수리에 뿅 하고 솟아 오른 흰머리를 발견했다.(더 이상 새치라고 우길 수는 없다.) 사실 전날 저녁에도 이미 몇 가닥의 흰머리를 뽑았던 참인데, 공항 화장실의 밝은 불빛 아래서 보니 도저히 무시할 수 없게 솟아오른 흰머리가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었다. 우리 집 불빛이 그렇게나 어두웠단 말인가. 손으로 뽑아보려고 했지만 더 볼썽사납게 휘어지기만 할 뿐 뽑힐 기미는 없었다.

마침 집에 있던 족집게를 모두 처분하고 새 족집게를 주문해 뒀는데, 다른 곳에 가는 길이었다면 집에 돌아가서 새 족집게로 흰머리를 뽑을 생각을 하며 잠시 방치했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부모님을 만나러 가는 길이었다. 부모님이 나이 드는 것도 슬픈데 나까지 나이 들고 있다는 걸 자각하기도, 부모님께 들키기도 싫었다.  

    

공항 화장실에서는 더 이상 흰머리 뽑기를 포기하고, 지하철 역사로 나와서 편의점을 찾아갔다. 3,500원에 족집게를 샀다. 엉성한 족집게 쓰기를 포기하고 얼마 전 모두 처분하고 새 걸 주문했지만 3,500원이 아깝다고 흰머리가 솟아오른 채로 엄마 아빠를 보러 갈 순 없었다. 다행히 편의점에서 산 족집게는 제법 짱짱해서 순식간에 흰머리 몇 가닥을 해치울 수 있었다. 지하철 역사의 화장실은 공항 화장실만큼 밝지 않아서 밖에 있는 전신 거울에 몸을 바짝 붙여서 흰머릴 뽑기를 집행했다.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시선이 신경 쓰였지만, 부모님한테 흰머리를 들키는 것보다는 괜찮을 것 같았다. 하나를 뽑고 나니 그 주변에도 솟아오른 흰머리들이 보였다. 어제 뽑았는데도 어째서 이렇게 많은 걸까.. 그런데 세 가닥쯤 뽑고 나자 부모님이 이제 시력이 그렇게 좋지 않다는데 생각이 미쳤다. 솟아오른 흰머리가 엄마 아빠 눈에 보였을까? 엄마는 가끔 돋보기를 끼고 있다가 갑자기 내 얼굴을 보고는 ‘얼굴에 뭐가 이렇게 났니?’라든가 ‘세상에, 기미가 생긴 거니?’ 라며 깜짝 놀랄 때가 있는데, 어쩌면 흰머리도 돋보기를 끼지 않으면 보이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래도 아직 ‘시집도 안 간’ 딸내미 머리에 흰머리가 있다는 걸 들키고 싶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내가 결혼을 유예하고 있는 건 부모님에게 아직 어린애이고 싶어서 인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세월은 무심하게도 흘러서 두 달여 만에 만난 부모님은 그새 조금 더 늙어 있었고, 나는 그 두 달 동안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흰머리를 뽑았다. 손목이 아파 병원에 가서 한 시간씩 물리치료를 받았고, 연초에 나오는 많은 ‘청년’들을 위한 지원이나 사업 들은 39세 이하를 대상으로 하고 있다. 나는 가까스로 아직은 ‘청년’에 해당하지만 이제 2년쯤 후면 꼼짝없이 중년에 이를 것이다. SNS에 올라오는 많은 좋은 글귀들은 20-30대가 알아두면 좋을 것들로 점철되어 있어서 묘하게 소외감을 느낀다. 나는 그 글귀에 나오는 만큼 어른스러운 40대가 될 수 없을 것 같다. 아니면 그 글귀의 내용들을 미처 알지 못해 후회하는 40대가 되거나.      


30대 중반-40의 시간을 지내오는 동안 나는 제주에서 동거생활을 했고, 몇 명의 개들과 인연을 맺었고 그리고 그뿐이었다. 그 두 가지에 대해 글을 쓰려는데 그게 그렇게 어렵다. 그 외에 다른 건 거의 하지 못 해서 그거라도 글로 남겨야 하는데 말이다.      


나는 아직 청년에 머물러 있지만, 현실적으로 내가 검색하는 건 소위 말하는 ‘경단녀’들이 많이 도전하는 자격증이라던가 직업들이다. 당연히 그것들도 쉽지 않다. 30 중반에 아이를 낳고 실제로 ‘경력이 단절’되어서 새로운 직종이나 자격증에 도전하는 것이라면 이렇게 소외감이 들지는 않을지도 모르는데, 나는 키워놓은 애도 없는데 ‘경단녀’가 되었다니 기분이 이상하다. 애써 나이를 먹고 싶지 않았는데 현실에 져 버린 느낌이 들기도 한다.      


기분은 늘 오락가락이다. 10년은 더 젊은것처럼 괜히 들떠 희망적인 생각을 하다가도, 사회적으로, 체력적으로 꼼짝없이 나이를 먹어버린 것 같아 우울하고, 그 우울이 개인적인 것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희망 없음’에 따른 것이라는 생각이 들 때 더 절망적인 기분이 느껴진다. 그렇지만 앞으로 나는 (운이 좋을지 나쁠지 알 수 없지만) 50년쯤은 더 살게 될 것이고, 그 시간은 어쨌든 잘 살아가야 할 것이다. 그 시간이 떠밀려 살아가는 것처럼 느껴지진 않았으면 좋겠는데, 일단 지금의 나는 불쌍한 개들을 구하지 못하는 것 때문에 무력감을 느끼고, 연인과는 아주 사소한 것 때문에 시작된 말다툼으로 냉전 중이다.      


사실 오늘은 그 얘기를 쓰려고 했다. 나는 늘 프롤로그를 쓰다가 힘을 다 빼버린다. 그러니까 싸운 얘기는 다음에도 기억에 남아 있으면 써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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