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니 저러니 해도 짝꿍이라는 것
연재 대신 일기
평소보다 조금 일찍 일어나서 부대찌개에 라면 넣어 끓여 먹었다. 짝꿍이 나설 때 같이 나가서 오는 길에 보리랑 산책을 했다.
편의점에서 라떼를 사서 마셨더니 시내 나가서 커피는 안 마셔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시내(제주시) 나가서 얻는 기쁨 중 하나가 커피 마시는 건데, 아침도 거하게 먹었고, 커피도 마셨으니 시내에 굳이 나가고 싶어 질까 생각이 들었다.
작업실에서 보리와 산책해서 오는 길은 큰 도로 옆 작지는 않는 농로인데, 거기서 밭으로 이어지는 작은 길에 핑크색 지붕을 가진 큰 플라스틱 개 집이 하나 있고, 한때는 거기 개가 묶여 있어 신경이 쓰였었는데, 어느 날부터 보이지 않게 되었었다.
그러니까, 개가 묶여 있어도 가까이 가지 않으면 어떤 인연도 시작되지 않는다.
그런데 오늘 그 개집보다 쪼금 더 멀리서 흰 강아지 둘과 검은 강아지 한 명이 신나게 놀고 있었다. 한 4-5개월쯤 됐을 크기인 것 같았다. 서로 무아지경으로 재밌게 놀더니 갑자기 보리와 나를 발견하고 맹렬하게 짖으며 뛰어오기 시작했다. 아기 강아지 셋이 동시에 뛰기 시작하는 게 귀여웠다가, 컹컹 짖는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는데 제법 큰 개가 내는 소리 같기도 하고, 달려오는 속도도 빨라서 혹시 내가 강아지들을 어리다고 착각한 걸까? 하는 생각이 스치는 순간 조금 더 가까워진 개들을 보니 어린 강아지들이 맞았다.
처음 뛰어오는 모습부터 영상으로 담을 수 있다면 좋았을 텐데, 손에 핸드폰을 들고 있지 않았다가, 피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 때 꺼낼 타이밍도 놓쳐 버려서 너무 늦게 핸드폰을 꺼냈다.
열심히 뛰어오던 개들은 어느 정도 가까이 다가오자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오던 길을 되돌아서 뛰어갔다.
너무 순간에 일어난 일이라 그 강아지들의 모습을 남겨두지 못한 것도, 아기 강아지들을 가까이서 보고 만져보지 못한 것도 모두 아쉬웠다. 가까운 밭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많으니 예뻐해 주겠지.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으니 행복하겠지 생각했다. 더 자란 다음 어떻게 될까 하는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집에 와서 바로 빵이네 가려고 하다가 혹시 아직 이른 시간이라 주인이 아직 안 나갔을 수도 있고, 오랜만에 날이 개어 따뜻하기도 해서 집안일도 몇 가지 해 두고, 시내 나가는 길에 빵이네와 공터 강아지에게 들러야지 생각했다.
같이 오후에 시내에 나가기로 한 짝꿍의 일이 생각보다 늦게 정리가 되는지 예상한 시간보다 늦어지길래 제주도에 내가 후원했던 동물 단체와, 새로운 단체에 혹시 개들의 구조 관련 도움을 요청할 수 있을지 살펴봤다.
새로운 후원도 시작했는데, 지금 내 상황에 과용이기도 하고, 후원을 하고 도움을 요청한다는 게 속 보이는 일 같아서 아직도 질문을 못 보내고 있다.
하지만 되든 안 되든 그건 그들이 선택할 몫이고, 나는 도움을 한 번 요청해 봐야지. 너무 큰 기대를 싣지 말고.
시내 나가는 김에 요즘 옷 되살림 운동을 하고 있는 한살림이나 아름다운 가게에 안 입는 옷들을 좀 갖다 주려고 추리면서, 옷걸이에 가득 찬 짝꿍 옷도 네 벌 정도 챙겨봤다. 원래는 짝꿍의 옷에 대해서는 참견 안 하려고 하는데, 내 옷을 정리하고 나서도 옷걸이에는 변화가 별로 없고, 그의 지분이 많은 듯해서 그중 안 입는 옷 네 벌 정도를 빼는 건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것도 아니었나 보다. 처분할 게 아니라면 그냥 버릴게 아니라고 말하면 그만일 것 같았는데, 자기가 잘 입는 옷인데 모른다는 둥 말을 보탰다. 나도 옷을 안 버리겠다는 그의 의견을 생각만큼 순순히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되어 있었던 지 서로 감정이 약간 상할 뻔했다.
제주시로 출발하려고 나서면서 내가 개들에게 밥을 주고 가도 괜찮겠냐 했더니 그것도 못마땅해하는 바람에 가뜩이나 갈까 말까(아침도 거하게 먹었고, 커피도 마셨고) 고민하던 시내 나들이에 김이 딱 새 버렸다.
어차피 짝꿍 일이 더 중요해서 가려고 했던 시내 일정이라, 혼자 다녀오라고 하고 나는 밥을 주러 빵이네 다녀왔다. (그리고 빵이네와 공터에 다녀온 이야기는 따로 적어뒀다.)
이제 빵이 새끼(아기)는 사람 손을 알게 되었다. 여전히 짖긴 하지만 가까이 오고, 손을 내밀어도 무서워하지 않고 만져달라고 손을 내밀었다. 지지난번에 처음으로 내가 내민 손등을 핥아줬고, 지난번엔 손으로 사료를 주자 먹었다. 잠깐이지만 얌전히 앉은 사진도 찍을 수 있었고, 나오려다가 뒤돌아서 손들을 내밀었을 때도 적극적으로 다가와서 나도 모르게 얼굴을 쓰다듬어줬다. 처음으로 귀여워 보였던 날이었다.
반면에 빵이는 내가 떠날 때면 늘 멀뚱히 바라본다. 그리고 오늘따라 그 표정이 더 눈에 밟혔다. 지나친 생각이겠지만, 작년에 내가 새끼들만 데리고 가고, 나중에는 봄이 와 산책하다가 만나기도 했는데, 내가 새끼와 가까워지기 시작한 게 그 기억을 나게 한 걸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갈수록 더 자주 가고 싶어 지니 그것도 문제는 문제다. 이렇게 계속 몰래 다닐 수도 없고...
착잡한 마음으로 집에 와서는 다른 숙소들 블로그를 보면서 공부를 했다. 우리 숙소를 어떻게 소개할 것인가..
개들을 생각하면 안정적인(?) 수입이 있는 사람이 되어 도울 수 있어야 한다.
늦은 오후가 되어 짝꿍이 와서 공터에서 사라진 멍멍이(그렇다, 비쩍 말랐던 그 아이는 다시 사라졌다.) 얘길 하니 눈물이 났다. 개들 밥 주는 일로 기분이 상해 같이 외출도 안 했는데, 혼자 있을 때도 안 나던 눈물이 그때야 솟아나는 걸 보니 얘기하고, 의지할 사람은 결국 이 사람 밖에 없구나.
어젯밤에 먹고 싶다고 말했던 만두 대신 사 온 김밥에 라면까지 끓여 야무지게 먹고 보리 산책을 나섰다.
보리 산책은 보리 산책이다. 마음 한 구석 미안한 마음이 있어도 누릴 수 있는, 누려야 하는 행복은 꼭꼭 누리자.(두 마음이 함께 있어도 괜찮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