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일 없이 산다
어느새 10년이다. 4월 이맘때는 늘 추웠는데, 오늘은 덥고 황사가 있었다.
아마 당분간은 추운 날씨가 여러 번 찾아올 것이다. 밤마다 춥고, 바닷물이 차가운 걸 걱정했었다. 춥지 않아도 한기가 들어 추웠을 것이다. 그래서 아무리 봄이 빨리 와도 이맘때는 늘 추웠다. 선옥이의 기일이 들어 4월은 더 촘촘하게 슬픈 달이 되었다.
하지만 오늘은 느지막이 일어나 보리와 산책을 하고 빵을 사 와서 여유롭게 거의 점심이 된 아침을 먹었다. 제주에 왔으니 다시 루틴을 찾으려고 공부를 시작했는데 잘 되진 않았다.
그래도 저녁을 잘 챙겨 먹었고, 일상에서 정리하는 걸 습관화하려고 노력 중이라 집이 깔끔해서 좋다.
저녁 시간에도 짬을 내 공부를 해야 하는데, 잘 되지 않는다. 씻는데 하세월이고, 인스타그램이라도 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다. 거기서 빨리 벗어나는 힘을 길러야 하는데.
저녁에는 짝꿍이 멸치볶음을 하고, 나는 콩나물 무침을 했는데 둘 다 짰다. 나는 늘 음식을 싱겁게 하는 편이라, 반찬을 할 때는 간을 좀 넉넉하게 하려고 하는 편인데, 이번에는 밥에 달걀을 넣고 비벼먹으면 딱 좋겠다 싶은 만큼 간이 세게 되었다.
황사가 심해서 저녁 산책이 그리 즐겁진 않았지만 그래도 보리가 수월봉에서 신나게 뛰었다. 먼지가 많이 묻었을 테니 몸을 좀 닦아줘야 하는데, 발도 닦지 않은 채로 보리는 이불에 들어갔다. 정말 무뎌지는 모양이다.
어제 밤늦게 엄마에게 수수 아기 때 같이 찍은 사진을 보냈는데, 엄마는 강아지를 또 데리고 온 줄 알고 놀라서 이른 아침부터 전화를 하려고 벼르고 있었다고 했다. 수수가 훌쩍 자라긴 했지만 그래도 금세 알아볼 줄 알았는데, 못 알아본 것도 웃기고, 내가 또 개를 데려왔을 거라고 생각한 것도 웃겼다. 한편으로는 내가 지금 개 한 명을 더 키울 형편도 안 되는데, 엄마가 내가 또 개를 데리고 올 수도 있다고 생각한 것도 참 아이러니했다. 좀 슬픈 느낌도 들었던 것 같다. 나도 개 한 두 명 더 키울 수 있는 형편이 되면 참 좋을 텐데.
가난한 사람들은 불평, 불만, 불안이 있다던데, 다른 건 몰라도 내게 불안이 큰 부분인 것은 맞다. 그리고, 불안, 불평, 불만이 있는 사람이 가난해지는 것이 아니라, 가난이 그렇게 만드는 것이다. 가난한 사람이라도 불안하지 않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사회의 역할이다. 개인의 능력과 노력에 따라 부가 결정되는 것이 자본주의라지만, 출발선이 다른 상태에서의 경쟁은 자본주의 전제조건이 아니다.
강아지 키우는 얘길 하려다 이런 얘기까지 하려고 한 것은 아닌데, 요즘 내가 개를 구조할 수 있는 주제도 안 된다는 생각을 많이 하다 보니 이렇게 생각이 흘러가게 되는 모양이다.
참 어려운 일이다. 방치되어 굶고, 두려움 속에 버티고, 때로 삶에 대한 조금의 기쁨도 느껴보지 못 한 채 일말의 존엄도 없이 고통 속에 죽어가야 하는 개들의 삶은 당면한 현실이지만, 인간으로서 삶을 살아가야 하는 ‘인생’도 쉽지 않다. 개들의 삶도, 다른 비인간 동물들의 삶도, 아니 모든 인간의 삶이 공평하게 소중하다는 걸 모두가 알게 되기까지 우리는 얼마나 더 성숙해져야 하는 걸까.
10년이 지나도록 원인도 알지 못 한 죽음들을 추모하는 것조차 힘이 드는 사회에서 그 바람은 너무 이상적인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래도 우리는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아주 조금씩이지만, 잊지 않고,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면. 기억은 힘이 세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