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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은서리 Nov 15. 2024

영창

송화분




‘옥상에서 떨어진 화분 방구 주근깨’ ‘옥상에서 떨어진 화분 방구 주근깨’ 


오늘도 나무 복도가 쩌렁쩌렁 노랫소리가 들린다. 한 사람이 시작하면 다른 사람이 답을 하듯이 어느새 리듬이 붙은 놀림 노래는 학년 복도에 가득 찼다. 


화분은 골이 깊게 파인 책상 위에 엎드렸다. 


누군가를 놀리는 건, 현목호 밖에는 가능하지 않았다. 목호는 학년의 모든 남자의 대장이나 마찬가지였다. 행여 목호 외에 누군가 놀리기라도 해서 화분의 주위를 끌면 어느새 그 상태는 목호로 바뀌어 있곤 했다. 다른 아이를 쫓고 있었는데, 깨닫고 보면 목호의 뒤를 쫓아다니고 있었다. 


화분은 달리기를 못했다. 그에 비해 목호는 학교 대표로 달리기 선수에 나갈 정도였다. 고작 삼학년이면서 육학년 만큼이나 키가 컸다. 몸집은 두툼하지 않았지만 단단했다. 


화분은 선생님이 빨리 자리를 바꿔주기를 기다리고 있다. 삼교시 후에 자리를 바꾼다고 했으니 한 시간만 참으면 된다.


“누가 목호 짝궁할 거야?”

“이번엔 내가 하고 싶어.”


서로 하겠다며 들뜬 여자애들 소리가 귀에 들리지만 화분은 그냥 책상에 엎드린 채였다. 


이번에 바꾸게 되면 화분은 가운데 맨 뒷자리에 혼자 앉게 된다. 얼마나 가뿐할까? 


전학 와서 한 학기가 다 지나지 않았다. 사촌인 은정이와는 거의 말도 섞지 않는다. 사실 이렇다 할 친구가 없었다. 어쩐 일인지 늘 주변에 친구들이 많았는데 전학 와서는 한 명도 사귀지 못했다. 


나는 공부를 잘하는 아이야. 나는 엄청 착하다고 늘 칭찬 받았어. 나는 늘 바르게 행동하는 아이랬어. 


요즘 들어 여자 친구들의 시선이 부쩍 따가워졌다. 전학 와 두달 째 목호의 짝을 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어쩌다 보니 그런 것인데 여자 친구들은 화분을 무리에 끼워 넣어주지 않으려 했다. 다 목호 때문이다. 화분은 괜스레 원망스러워졌다. 


안 그래도 아빠랑 엄마는 간밤에 또 싸웠다. 아빠는 물건을 집어 던졌고 엄마는 악을 지르다 지르다 못해 옷을 찢었다. 반쯤 벌거 벗겨진 모습으로 마당을 뛰어다니면서 ‘동네 사람들 다 보라고 해. 나 죽이고 그년한테 가. 내 새끼들은 못 주니까. 나 죽이고 가!’ 하며 소리 질렀다.


화분과 동생들은 작은 방에 모여 있었는데 막내는 깊이 잠든 것처럼 잠들었고 동생 화란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제 입술을 쪽쪽 빨아대며 종이 인형을 가지고 놀았다. 


화란은 좀 이상한 데가 있었다. 이제 겨우 1학년이 된 화란은 종이 인형의 남자 친구를 굳이 만들어서 알몸으로 잠을 재웠다. 예전 살던 집에 있던 이상한 비디오에서 본 장면을 흉내내는 거였다. 


“그런 거 하지 마.”

“왜에? 언니도 그 비디오 봤잖아. 어른들은 다 이렇게 해.”

“조용히 해. 듣기 싫어.”


밖에서 울부짖는 소리가 커질수록 화분은 자꾸만 눈에 눈물이 핑 돌았다. 이러다 우리집이 다 산산조각이 나면 어쩌지. 정말 무서웠다. 아빠는 무척 다정했다. 화분의 눈에는 아빠가 테레비젼 속에 나오는 ‘암행어사 박문수’처럼 보이기도 했으니까. 


하지만 엄마랑 싸울 때의 아빠는 이제껏 본 적 없는 모습으로 화를 냈다. 엄마가 칼을 들고 위협하면 두꺼운 손으로 엄마의 뺨을 때리기도 하고 서로의 목을 조르기도 한다. 어쩌면 정말 누가 누구를 죽일 지도 몰라. 어릴 적부터 책을 많이 읽었던 탓에 상상력이 유별난 화분은 그런 걱정이 들기 시작하면 어김없이 울었다. 


딩동댕동 딩동댕동 종이 울리고 나무 의자가 덜컹거렸다. 목호가 자리에 앉은 것이다. 목호는 종종 여자애들을 괴롭히긴 했지만 선생님들께는 예쁨을 받는 아이였다. 이렇게 귀찮게 하는 녀석인 걸 어른들은 모른다. 


아니나다를까 목호는 손가락으로 또 꼬집기 시작했다. 


“왜 그래애. 아프다고. 그만해.”

“야, 옥상에서 떨어진 화분 방구 주근깨. 여기 넘어오지 마.”

“네가 먼저 꼬집었잖아.”


화분도 지지 않고 목호를 때렸다. 하지만 목호의 손가락 힘은 무척 좋아서 꼬집히는 곳마다 빨갛게 붉히기 일쑤였다. 


“선생님께 이를 거야.”

“일러라. 일러 이 옥상에서 떨어진 화분아.”


옥상에서 떨어진 화분이란 건 아마도 못생긴 걸 말하는 것임을 화분은 알고 있었다. 할머니도 종종 어쩜 저렇게 새까맣게 못났냐고 했으니까. 외할머니가 ‘아이고 귀한 내새끼. 이쁜 강아지’라고 안아 주는 것과는 다른 느낌의 것이었다. 할머니가 말하는 건 ‘못생긴 송화분’이 틀림 없었다. 그리고 현목호도 화분을 못생겼다고 놀려대는 거니까. 사실은 사실이니까 받아들이는 게 착한 아이야. 화분은 다시 다짐했다. 


선생님은 종이를 나눠줬다. 전학 와서도 했었던 거 같은데… 가정 환경조사서였다. 집에 피아노는 있는지, 자동차는 있는지, 아빠의 직업은 무엇인지, 엄마도 회사를 다니는지… 그리고 맨 끝에는 비고란이 있었다. 그 전 해에도 학교에서 써낸 적이 있었는데 비고란에 ‘큰아버지 송00 **여객’ 이라고 썼던 걸 기억해 낸 화분은 그것도 같이 써 넣는 걸 잊지 않았다.  


화분은 잠깐 목호를 쳐다봤다. 역시나 목호는 보통 때와는 달리 표정이 어둡고 정말 기분이 나쁜 기세였다. 화분을 꼬집을 때만해도  짓궂긴 했지만 화나거나 기분 나쁜 기색은 없었다. 


“어제 밤에 엄마 아빠가 또 싸웠어.”

“어쩌라고?”

“우리 엄마 아빠는 이혼할지도 몰라.”

“…….”

“그럼 나도 아빠가 없어지는 게 될 거야.”


순간 목호가 빤히 화분을 바라봤다. 


“엄마 아빠가 싸우면 얼마나 무서운지 모르지? 다들 부부 싸움을 할 때 칼을 갖고 덤비나? 그래서 칼로 물베기 라고 하고 봐.”


화분은 책에서 봤던 속담을 써 먹으며 아빠의 직업란에 ‘실업자’라고 썼다. 쓰고 나서도 이게 맞나? 잠깐 생각했다. ‘실업가’가였던가? 화분이 아는 대로라면 아빠는 현재 직업이 없었다. 얼마 전에 감옥에 다녀온 것도 알았다. 그건 얼마 전의 일이니까 굳이 쓰지 않아도 되겠지. 하지만 사람은 솔직해야 한다. 그러니 ‘실업자’라고 쓰는 게 맞는 것 같았다.


그날 오후 화분은 드디어 혼자 자리에 앉을 수 있게 되었다. 짝궁이 없는 빈 자리가 하나도 어색하지 않았다. 이제 좋아하는 책을 맘껏 읽을 수 있다. 공부 시간에 옆에서 꼬집으면서 훼방을 놓을 짝궁이 없는 건 참 속 편한 일이었다. 그리고 여자 친구들도 이제는 저에게 말을 걸어 줄지도 모른다. 화분은 은근히 기대했다. 


집에 도착했을 때, 엄마가 밤새 돌아오지 않은 걸 알았다. 아빠는 저녁이 되자 터덜터덜 근처 점방에 나가 라면을 사왔다. 화분과 동생들은 라면이라는 말에 새삼 기분이 좋았다. 엄마는 잘 사주지 않는 라면이었기 때문이었다. 아빠는 남은 동전을 만지작거리며 담배에 불을 붙였다. 


라면을 다 먹을 즈음이었다. 


“오늘 학교에서 가정환경 조사서 했어요.”


아빠는 감옥에 다녀온 이후 딱히 말이 없었다. 술을 마시는 날도 있었지만 엄마랑 싸우지만 않는다면 그것도 큰 일은 아니었다. 


“아빠 직업란에 실업자 라고 넣었어요.”


그때였다. 화분의 눈 앞으로 별이 지나갔다. 거세게 맞은 뺨이 한쪽으로 돌아갔다. 언제 일어섰는지 아빠가 화분의 눈 앞에서 서서 씩씩댔다. 


“아무리 어리고 생각이 없는 애라고 해도 그렇지. 아빠가 아무 일도 안 하는 게 뭐 그리 자랑이라고 그걸 그대로 써!”


화분에게 화를 내 본적이 없는 아빠가 불을 내뿜는 용처럼 화를 냈다. 화분은 겁에 질려 눈물만 뚝뚝 흘렸다. 엄마가 파리채로 때릴 때면 곧잘 ‘잘못했어요. 그만 때려요. 용서해주세요.’라고 나오던 말이 아빠에게는 나오질 않았다. 

그냥 무언가 무척 슬픈 일이기만 했다. 아빠가 무겁게 자리에 내려앉으며 술 한병을 다 마셔버리는 걸 본 화분은 그제야 저가 큰 잘못을 했다는 걸 깨달았다. 아빠를 실망시켰다는 두려움이 몰려들었다. 


“실업가인지 실업자인지 잘 모르겠어서….”


화분이 겨우 내뱉은 말에 아빠는 한숨만 내놓았다. 시간이 좀 지난 후에야 아빠가 말했다.


“화분아, 아빠가 미안하다.”


아니에요. 아빠…. 아빠 제가 잘못했어요. 차마 입 벌려 말하지도 못한 화분은 작은 방으로 들어와 밤새 울다 잠이 들었다. 그날 밤도 엄마는 돌아오지 않았다. 



일주일 후. 머리가 반질반질하게 벗겨진 선생님은 화분을 불러서 다시 목호의 짝꿍이 되겠니? 하고 물으셨다. 의견을 묻는 것은 아니었고, 목호 옆에 여자 친구가 세명이나 울면서 자리를 바꾼 상태라 화분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목호의 곁에 새침하게 앉은 화분은 익숙하게 이미 푹 패인 책상의 선을 다시 한번 확인시켰다. 


“여기 선 넘어오지 마.”

“내 맘이야. 이 옥상에서 떨어진 화분 방구 주근깨.”


그래도 그 날은 어쩐 일인지 목호는 얌전하게 꼬집거나 하지 않았다. 아마 다른 여자 친구들을 너무 많이 꼬집었기 때문에 선생님께 혼이 났기도 했던 탓이리라. 


“나는 착한 사람을 할 거야.”

“뭐?”

“아빠가 사업에서 사기를 당했댔어. 아빠가 나빠서 감옥에 갔던 게 아냐.”

“아빠가 감옥에 갔었어?”


목호는 왠일로 비웃지 않고 놀란 표정으로 얘기를 들어주기 시작했다. 화분은 차분하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어쩐지 자꾸 입술이 삐뚤어지고 눈가가 빨갛게 될 것만 같았다. 


“우리 엄마 아빠가 헤어져도 나는 씩씩한 사람을 할 거야.”

“…….”

“네가 아무리 놀려도 난 기죽거나 슬퍼하지 않을 거야.”

“그래라. 옥상에서 떨어진 화분 방구 주근깨.”


목호는 육학년이 되어 전학을 가기 전까지 쉬는 시간마다 찾아와 ‘옥상에서 떨어진 화분 방구 주근깨’ 노래를 부르다 갔다. 신기하게도 그건 화분이 도둑 누명을 쓰고, 손바닥에 화상을 입고, 또 육학년 때 전교 2등을 할 때까지 변하지 않고 그대로 계속되었다. 


더 이상 송화분을 ‘옥상에서 떨어진 화분 방구 주근깨’라고 놀리지 않게 된 것은 목호가 전학을 가고 난 이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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