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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은서리 Nov 18.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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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송화분 37세




화분의 가족은 여행 중이었다. 이제 막 첫 항암을 끝낸 후 컨디션이 살짝 좋아진 시간을 택해 남해 여행을 시작했다. 가을이 한창이라는 데 생각보다 단풍이 덜했다. 남쪽이라서일지도 모른다. 차라리 강원도로 가야 했던 건가 슬쩍 돌이켰다.      


회사를 떠나 가족들과 같이 할 수 있는 시간이 생긴 것만으로도 암은 한 몫한 것인가.      


장사하느라 바빠서 중국 여행도 포기했던 부모를 생각하면 이렇게라도 숨을 돌릴 시간이 난 게 오히려 낫다 싶을 정도였다.      


바닷가에 나가 화란과 담배 한 대를 태운 후 걸어 들어올 즈음이었다.      


“언니 수술 때, 엄마가 환이를 밀어냈어.”

“뭐?”

“환이가 칭얼거리는데 밀어냈다고.”     


환이는 송화란의 아들이었다. 현재 김영희에게 있어 가장 큰 보물 같은 존재다.      


“언니 수술 끝날 때까지 환이를 안아주지도 않았어.”     


화란은 서운했던 것인지도 몰랐다. 한 번도 김영희가 제 아들을 소홀히 대한 적은 없었으니까.     


“근데, 나도 이해는 해. 언니 3-4시간 걸린다고 했던 수술이 5시간 넘어가니까 다들 초죽음이 되더라고.”  

   

담당 교수는 예정 시간은 3-4시간이지만 전이가 있는 경우 5시간을 넘게 될 것이라 미리 언질을 두었다. 그 까닭에 5시간이 넘어가는 수술에 부모 속이 바싹바싹 타 들어가는 건 당연한 이치라고 했다.      


“나중에 교수가 나와서 이래저래해서 샅샅이 살피느라 늦어졌다고 하니까, 그때서야 우리 환이 안아주더라고.”

“그래도 엄마가 제일 사랑하는 건 환이일 걸.”     


화분은 화란이 서운하지 않도록 다독이는 말을 꺼냈다.      


“알아. 나도.”     


몇 발자국 지나지 않아서 화란이 물었다.      


“언니는 담배 안 끊을 거야? 엄마랑 아빠가 자꾸 눈치하던데….”     


화분이 슬쩍 뒤를 돌아다봤다. 늘 빠져 죽고 싶었던 바다가 바로 눈앞으로 펼쳐져 있었다.     

 

지금 난 죽고 싶은 걸까. 아닐까. 삶의 방향성을 잃었다. 삶에 대한 연민도 미련도 없지만, 치료하면 나을 병을 앓고 있으면서도 치료하지 않는 미련함을 보여 욕을 먹고 싶지는 않았다.       


“담배 끊는다고 암이 다시 안 생길까? 내 암은 호르몬도 아니고 유전적 인자 탓도 아니라던데.”     


살아야겠다는 의지도 명분도 딱히 없었다. 쉽게 죽지는 않을 테니까. 3기에서 2기로 내려왔다는 건 그만큼의 확률이 올라갔다는 것이고, 죽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것도 아니니, 이제껏 살아온 것처럼 살아지겠지 싶었다.      

더구나 자신의 암은 스트레스 때문이다. 살이 찐 게 하루 이틀의 일이 아니므로 이유는 스트레스였다. 불면이 시작된 건 1년이 넘었다. 술도 예전만큼 마시지 않는다.     


스트레스는 만병의 시작이다. 화분은 자신의 스트레스가 어디서부터 시작됐는지 너무 잘 알고 있었다.      


모든 것은 직장 상사의 괴롭힘이 원인이었다.      


[사과도 예쁘게 닦아 놔야 잘 팔리는 법이지, 안 그래 송대리? 평소에 좀 꾸미고 다니는 게 필요하다고. 여기는 회사니까.]     


같은 여자에게 그런 말을 들을 줄은 몰랐다. 남자 상사가 그런 말을 했더라면 제대로 성추행으로 문제를 만들었을 터였다. 하지만 여자의 적은 여자라 했던가.      


화분은 자신을 꾸미는 게 싫었다. 아직 살이 찌지 않았던 이십 대. 화장하고 나가면 곧잘 이성이 붙기도 했다. 하지만 그들과 잘 지내고 싶어서 화장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그러다 보니 결혼하자는 사람이 나서기 시작하면서는 일단 외형을 내려놓기로 했다. 외형으로 누군갈 현혹하면서 결혼이 싫다고 우기는 것도 우스웠다. 본연의 모습에도 결혼하자고 하는 자들만이 진심이라고 생각했고, 한편으론 그런 남성들에게 비혼이라는 전제를 내거는 게 뿌듯했다. 모든 건 결혼이 만들어낸 일그러진 세계였으니까.     


뇌의 한쪽에서는 어쩌면 자신을 꾸미다간 언젠가 생모처럼 되는 게 아닌가 싶은 마음도 있었다. 생모처럼 꾸미는 건, 제 외모를 비하하던 조모의 모든 걸 인정하는 셈이었다.      


그건 송화분에게 있어서 패배와도 같았다. 때때로 자신의 생각의 흐름이 ‘쓸데없는 오기’라는 걸 되새기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그 세월 동안 세워 온 자신의 가치관을 상사의 말 때문에 무너뜨릴 수는 없었다.       


[그 말씀은 성추행 같은데요. 같은 여자로서 닦아 놔야 잘 팔린다는 말을 하고 싶으세요?]      


라고 되받아쳤다. 상사의 얼굴이 그야말로 사과처럼 붉어졌다. 일단 되갚아 준 셈이라고는 해도 그걸로 분이 풀릴 리 없었다.      


매사가 그런 식이었다. 장씨 성을 가진 상사는 그 뒤로 상대 회사와 손을 잡고 화분을 괴롭히려고 말도 안 되는 클레임을 걸곤 했다.      


송화분은 예의가 없다.

송화분은 사람을 무시한다.

물건에서 에러가 발생한다.

아까는 안 되다 지금 되는 게 우리 책임이냐.

송화분이 회사 사장과 술 마시면서 접대하는 걸 모두 알고 있다.     


음해하는 소문은 끝이 없었다. 심지어 동료인 김선미는 회사 사장의 무릎에 앉아 있다는 소문까지 돌았다.      

회사 내 분위기는 그게 모두 장씨가 만들어낸 거짓이라는 걸 알고 있었으나 실질적으로 손해가 발생하지 않았기에 다들 쉬쉬하면서 상황을 묵인했다.     


수술이 끝나고 일주일 후, 교수가 결과를 가지고 왔다.      


[수술 부위는 크지만 젊고 살성이 좋아서 금방 아문 편입니다. 다만 암에 대한 세밀한 검사 결과가 나왔는데 삼중음성이라고 해서, 호르몬성 암도 아니고, 허투인자도 없는 그런 암이네요. 다행스럽게 전이는 없었지만 크기가 컸어요. 그러니 항암은 해야 하는데, 삼중음성은 정해진 약이 딱 있는 게 아니라서. 함부로 볼 수 없는 크기고 하니 항암은 해야 합니다.]     


마치 항암을 거부하고 도망갈 것처럼 보였는지 교수는 계속 항암을 강조했다.      


[찾아봤는데 머리 빠지는 항암인 거지요?]     


화분이 묻자, 교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유방암은 머리 안 빠지는 항암이 별로 없어요.]

[네.]     


화분은 순순히 그 모든 걸 받아들였다. 이미 인터넷에서 조사하고 각오하던 바였다.      


하지만 여행 중에 두피가 간지럽기 시작한 것은 좀 불안했다. 항암 후 2주가 지나면 머리가 빠진다고 했는데, 딱 그때를 맞춰 여행을 떠나 온 게 잘못이었을까. 내심 착잡한 것도 사실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여행 이틀째 밤이었다. 머리를 감으려고 물에 담그는데 손에 새까만 머리털이 뭉치로 딸려 나왔다.      


아, 이게 바로 말하던 그거구나. 하면서도 다시 쓸어 보면 그만큼 털실 뭉치만큼의 머리가 쑥쑥 잡혀서 빠졌다.      


사실 드라마나 광고에서 보던 것만큼 치명적이지 않았다. 머리가 빠진다고 절망에 이르지 않았다. 거울을 보고 빗으로 머리를 쓸면 딸려 나오는 머리카락에 결국 울음이 넘쳐흐르는 그런 드라마틱한 장면을 떠올렸으나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다만 이를 어쩌지. 제 방이었더라면 알아서 머리를 처리했을 것인데 당황감이 적잖았다.      


쓸 때마다 뭉텅이로 빠지는 머리카락은 어느 새 하수구를 가득 메웠다.      


어디까지, 누가 이기나 볼까, 억지로 머리를 쓸고 또 쓸었다. 설마 오늘 밤 안에 머리가 다 빠지진 않겠지? 그럼, 저 작은 화장실 휴지통에 가득 차게 될 테고 어떻게 해도 가족들은 그 꼴을 보게 되고 말 것이다.      


[머리 좀 빠지는 게 대수니.]


가족들은 송화분 앞에서 덤덤한 척 했다.   

 

[넌 언니가 암이라는 데 왜 멀쩡해?]     


암을 진단받고 얼마후 우스갯소리로 물었는데 화란이 한참 뜸을 들이다 대답했다.     


[언니, 네가 너무 멀쩡한데 내가 어떻게 울어.]     


머리는 그렇게 삼십분을 빠졌다. 더는 빠지지 않게 되었을 때서야 화분은 머리카락을 휴지에 돌돌 감아 버렸다. 거즘 휴지 반통이 홀랑 날아갔다. 그래도 생각보다 가득 찬 휴지통 안은 새까만 머리카락이 많이 보이지 않았다.      


욕실에서 나왔을 때, 가족들의 모든 눈길이 화분에게 집중됐다. 화분은 그들의 눈길을 은근하게 피하며 한쪽에서 뒹구는 환이에게 달라 들었다.      


축축하게 젖은 몸 때문인지 환이가 품에서 빠져나가려고 바르작거렸다. 자꾸만 뒤에서 눈길이 쏟아지는 것만 같은 기분에 화분이 먼저 나섰다.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     


“내일 머리 밀러 갈래요.”     


김영희의 한숨이 작게 스친다.  대수냐고 받아칠 때는 언제고 한숨인가 싶어서 슬쩍 눈치가 보이고 속이 상했다.     


“어디로?”

“집 근처 아무데나, 머리 미는 데 뭘 얼마나 따진다고.”

“그래.”

“엄마, 나 괜찮아.”

“알아.”

“엄마도 괜찮았으면 좋겠어.”

“내가 뭘… 난 아무렇지도 않아.”     


아무렇지도 않다는데 왜 그렇게 안 들릴까?      


화분은 착잡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슬쩍 목이 메기도 했다.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왜 자꾸 김영희 생각을 하면 목이 메는지 알 수 없었다.      


화분은 환이를 안고 볼에 쪽쪽쪽 입을 맞추며 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애썼다.      

귀 만지는 걸 좋아하는 환이 어느새 귓불을 쓸어댔다.      


어쩌면, 환이… 네가 내 삶의 이유가 되어주기도 하려나.  죽을 병도 아닌데, 죽는다는 것도 아닌데 한동안 아무 대화도 없는 가족들에게 등을 돌린 화분은 환이의 머리에 잠깐 눈물을 닦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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