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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은서리 Nov 25. 2024

이혼

송화분


“방구석에서만 이러고 있지 말고 저기 나가서 놀아.”

“더워.”


밖에 나가 놀라는 엄마의 말에도 화분은 책을 덮지 않았다.


“밖에 가지고 나가서 놀아. 뽕나무 잎 따서 주인집 가져다 주면 좋아할 거야.”

“별로….”

“나가라면 나가지. 왜 이리 말이 많아! 얼른 나가. 나가서 해 저물기 전에는 들어오지 마.”


정순녀가 별 경고도 없이 파리채를 찾아들자 화분은 그제야 어슬렁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들어오라고 할 때까지는 집에 들어오지 마. 절대로 안 돼. ”


이 정도면 나가 놀라는 명령이 아니라 협박이었다. 화분은 무언가 안 좋은 일이 일어날 예감에 사로잡혔다. 가슴이 쿵쿵쿵 뛰었다. 


여름방학이라고 동생들은 땀을 뻘뻘 흘리며 동네 어딘가를 뛰어다니고 있으리라. 이제 11살이 된 화분은 언제나 그랬듯이 책만 좋았다. 뛰어노는 일에는 젬병이다. 고무줄을 해도 3단을 넘지 못하고 죽으니 잘 끼워 주지도 않았다. 밖에 나가도 사실 어울릴 만한 또래도 없었다. ‘가서 동생들하고 놀아.’했지만 화분은 동생들과 노는 일이 즐거웠던 적이 별로 없었다. 


슬래브로 된 건물 밖으로 나오니 살을 태울 것 같은 여름 햇빛에 눈이 아팠다. 뒤돌아 보니 유독 부엌을 지나 방으로 들어가야 하는 저곳이 어두운 그림 액자마냥 느껴졌다. 


여기로 이사온 건 몇 개월 되지 않았다. 전학은 하지 않은 탓에 전에 비해서 학교 가는 길이 너무 멀었다. 넷이 한 방에 누워도 좁다고 느껴지지 않았지만 방 하나에 가족이 전부 자는 건 처음이었다. 물론 아빠 송준태는 없는 상태였다. 화분은 ‘별거’라는 단어를 알았다. 현재 아빠 송준태와 엄마 정순녀는 별거 상태다. 그래서 늘 불안했지만 그렇다고 그걸 입 밖으로 꺼낼 수는 없었다. 


달랑 들고 온 화장대는 이사를 하면서 다쳤는지 이젠 한쪽이 찌그러졌다. 전보다 더 가난해졌다는 걸 몸소 체험했다. 반찬은 늘 시어터진 김치 뿐이었고, 동생들은 마른 멸치에 고추장을 찍어먹었다. 소세지나 계란 말이는 바랄 수 없는 일이었다. 


정순녀는 이젠 밤에 일을 다녔다. 진하게 화장을 하고 나가는 것을 보면 아마도 술집일 것이라고 화분은 짐작했다. 그래도 괜찮았다. 직업엔 귀천이 없다고 했으니, 열심히 자신들을 키우기 위해 술집에 나가는 거라고 생각했다. 


아빠, 송준태는 한 달이나 두 달에 한번 만났다. 새까맣게 탄 얼굴의 아빠는 다시 회사에 다닌다고 했다. 동물원 가는 길에 있는 공원에서 핫도그와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시간을 보냈다. 송준태는 말이 많지 않았다.

‘오리 탈래?’ 하고 묻거나 ‘뭐 먹고 싶어?’라고 묻는 게 전부였다. 그러다 지나가는 말로 ‘아빠랑 살래?’ 하고 넌지시 물었을 뿐이다. 


송화분은 그 말의 의미를 어렴풋이 짐작했다. 엄마와 아빠는 헤어지려는 것이다. 그것은 ‘별거’라는 단어와는 다른 의미였다. ‘이혼’이라는 단어를 어디서 처음 봤는지는 기억나지 않았다.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많은 책을 읽은 송화분이어서 어딘가에서는 본 게 맞을 터였다.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았던 단어를 혼자서 떠올린 후, 갑자기 울적해졌다. 눈물이 글썽거렸고 송준태의 곁에 앉아 뛰어노는 동생들을 보면서 훌쩍거렸다.


송준태는 무뚝뚝했지만 좋은 사람이었다. 그는 자식들에게는 늘 넉넉했다. 크게 화를 내거나 혼이 난 건 3학년 때 실업자와 실업가를 솔직히 가정환경조사에 썼던 때 외에는 없었다. 아직도 어느 여름 양갈래 머리를 묶고 징검 다리 위에서  자신을 꼭 안은 그와 찍었던 사진은 소중하게 앨범 속에 간직되어 있었다.


동화 속의 조건은 완벽했다. 동화 속 이야기는 자신이 사는 세계와 별반 다르지 않다고 늘 생각했다. 그런 면에서 송준태는 좋은 아빠였고, 이야기처럼 새엄마가 될지도 모르는 사람은 아주 나쁜 사람일 터였다.


그럼, 우리는 신데렐라나 콩쥐팥쥐의 계모를 만나게 되는 건가요? 


 송화분은 차마 그 말은 묻지 못했다. 정순녀가 외박을 하고 들어와 누군가와 통화하거나 밤늦게 술에 취해 송준태를 욕할 때면 늘 맘속으로 빌었다.


엄마 우리를 버리지 마요. 계모한테 가는 게 무서워. 


송화분은 정순녀의 야단이나 매사에 신경질적인 태도도, 하물며 때리는 파리채에도 사랑이라는 게 담겨 있을 거라고 믿었다. 그렇지만 가끔은 그게 불순하고 단순히 어른의 화풀이라고 생각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대체 엄마라는 사람이 그러하거늘, 새…엄마는… 보고 느끼지 않아도 더욱 심할 게 틀림없었다. 


오늘따라 더 밖으로 쫓아내며 들어오지 못하게 단속하는 정순녀를 보며 송화분은 가슴이 두근거렸다. 당장 이혼하게 되는 걸까. 왜 막연히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는 몰랐다. 화란은 노는 데 바쁘고, 화철이는 뭔가를 알기에는 너무 어리긴 했다. 이제 여섯살이었으니까.  


생각해보면 이 집은 화철이 다니는 유치원에서 가까웠다. 아이 혼자서도 다닐 수 있는 거리였는데, 유치원 차가 오기도 했다. 유치원에서 무언가 행사가 있으면 정순녀는 빚을 내서라도 쫓아다녔다. 화분은 그녀가 돈을 빌리기 위해 여기저기 전화를 돌리는 걸 몇 번인가 봤다.


이 집에서 그나마 재미있는 게 있다면 주인집에서 누에를 키운다는 점이었다. 

처음에는 누에가 엄청 무섭기만 했다. 행여 창고에서 키우던 누에가 떨어져 밖으로 나올라치면 소스라치게 놀라곤 했다. 누에의 등에는 새까만 눈이 엄청 많았다. 마치 누에는 그 눈으로 사람들이 미처 보지 못하는 곳까지 샅샅이 보는 것일지도 모른다. 몇 밤을 자고 나면 누에는 더욱 하얗고 단단한 징그러운 갑옷을 껴입게 되곤 했다. 한번에 먹는 뽕 잎의 양도 많았다. 실을 뽑는 건 그 후였다. 처음에는 무섭던 누에들도 점점 귀여워보이기 시작했다. 주인댁 할머니는 맘이 좋으셔서 화분이 누에들에게 먹이 주는 걸 나무라지 않았다. 가끔 어떻게 주는 것인지 알려주기도 했다. 


화분은 사진에서만 보던 누에가 실은 무섭기만 한 게 아니라는 게 신기했다. 

이학년 때 운동회 연습을 하게 되면 커다란 소나무 밑에서 쉬곤 했다. 손가락보다도 큰 송충이들이 가끔 아이들 머리 위로 떨어졌다. 뾰쪽뾰족하고 징그러운 모습으로 기어다니는데 만지기라도 하면 아이들은 쏘여서 손이 퉁퉁 부었다. 화분은 유독 그래서 송충이가 싫었다. 절대로 누군가에게 예쁨을 받지 못할 운명이라고 생각했다. 누에도 마찬가지였는데, 막상 누에가 굉장히 깨끗하고 사람을 물지 않는 걸 알게 되자 마음이 확 놓였다. 


밖에 나갈 놀 생각이 없던 화분은 뽕잎을 쌓아둔 그늘 밑에서 서성이며 누에를 먹일 뽕잎을 챙길 때였다.  대문 쪽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엄마의 바로 밑의 동생인 큰 이모였다. 큰 이모 뒤로 빼빼말라 꼬불거리는 머리를 한 채 아기를 업은 여자가 뒤따랐다. 


순간 눈이 마주쳤는데 화분은 그녀가 예쁘다고 생각했다. 볼품없이 마른 몸이었지만 눈은 고운 쌍꺼풀이 있었다. 등에 업힌 아기는 엄마를 잡아먹을 것처럼 컸는데 잠이 들어 고개 한쪽이 기울었다. 꽤 귀엽게 생긴 아기였다. 화분은 별 생각없이 아이의 고개를 들어 올리려 손을 뻗었다. 


탁 손을 쳐낸 건 이모였다. 


“건드리지 말고 저리 가서 놀아.”


이모는 화분에게 돈까지 쥐어주었다. 그리곤 여자의 등을 밀며 방으로 들어가게 했다. 


시간이 꽤 흘렀다. 화분은 누에에게 뽕잎을 먹이는 걸 하지 않은 채 그늘에 멍하니 앉았다. 가슴이 여전히 두근거렸다. 아까 그 여자가 아빠와 바람이 난 사람인가. 앞으로 날 구박하게 될 사람치고는 눈끝이 처져 있었다. 저런 사람이 알고 보면 팥쥐네 엄마 같겠지. 방에서는 큰 소리가 났다가 사그라지곤 했다. 누가 누구에게 호통을 치는 지는 굳이 보지 않아도 뻔했다. 늘 화분을 야단치는 소리였기 때문이다.


그리고도 한참이 지나서야 여자가 나왔다. 이모는 나오지 않은 채였다. 들어가기 전보다 더 머리가 엉망이 되었다. 몸에 힘이 쭉 빠진 채였고 등에서는 아기가 칭얼거렸다. 여자는 칭얼거릴 때마다 아이를 들추며 울음을 그치게 하려고 했다. 


화분은 저도 모르게 슬그머니 여자를 따라 밖으로 나갔다. 마음 어딘가에서는 ‘우리 가족을 망가뜨리지 말아요.’라고 외치고 있었다. 그 여자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었다. 


대문 밖에 나선 여자가 뒤돌아섰다. 화분은 그자리에서 멈췄다. 


“네가 화분이니?”


화분은 고개만 끄덕였다. 웅얼거리는 아기가 어쩐 일인지 헤 하고 웃었다. 화분은 저도 모르게 아기에게 가까이 다가섰다. 


“아기 이름이 뭐예요?”

“…….”


답이 없었지만 여자는 화분이 아기를 건드리는 걸 말리지 않았다. 


“화웅이.”

“화웅이….”


화분은 이름을 조용히 읖조리다가 아기에게 ‘화웅아.’하고 불렀다. 그랬더니 아기가 꺄르르 하며 화분을 보고 웃었다. 


“남자 애기에요?”

“응.”

“귀여워요.”

“귀여…워?”


화분은 순순히 또 고개를 끄덕였다. 여자의 눈에 핑하고 눈물이 도는 걸 화분은 봤지만 아기에게만 집중하기로 했다. 


“또 오세요.”

“뭐?”

“아기 보고 싶을 거 같아요. 또 놀러 오세요.”


여자는 대답하지 않고 느릿하게 뒤돌아섰다. 이번엔 진짜 돌아갈 모양이었다. 화분은 그런 여자의 뒤에 들릴 듯 말듯 인사했다. 


“안녕히 가세요.”


*


여름 방학이 끝나기 전 화분은 부모의 이혼을 맞이했다. 같이 살 수 없다는 말에 화분은 밤새 정순녀의 품에서 울었다. 


“우리를 버리지 말아요. 잘 할 게요. 흑흑. 엄마랑 같이 있고 싶어.”


화분과 정순녀가 얼싸안고 울어대니 아무 것도 모르는 화란과 화철도 같이 따라 울었다. 


“엄마가 보러 갈게.”

“아니야. 같이 살아. 헤어지기 싫어.”


보채면서 울어봐도 ‘지금은 안 된다.’라는 말만 자꾸 되돌아왔다. 가끔 ‘돈 벌어서 데리러 올게. 그때까지 동생들 잘 돌봐야 한다.’라는 말도 들렸다. 


‘돈 벌어서 데리러 온다’ 라고 하며 돌아온 책은 없었다. 테레비젼에서조차 돌아오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화분은 그녀가 돌아오지 않을 걸 직감했다. 


깊은 슬픔과 깜깜한 불안 속에서 깜박 잠이 들었고, 다음 날 화분은 싸 놓은 짐을 가지고 송준태를 따라 나섰다. 정순녀는 짐을 싸놓고 밖으로 나간 사이였다. 인사조차 할 수 없게 된 게 마음이 아팠지만 화분은 크게 거부하지 않고 따라나섰다. 


다만 도착한 곳이 할머니의 집이라는 걸 알았을 때는 몸이 절로 움츠려드는 기분이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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