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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양균의 코드블랙 Jan 14. 2020

극장밖 미쓰백은 없다


영화 <미쓰백>을 관통하는 화두는 아동학대다. 배우 한지민이 연기한 백상아는 모친으로부터 학대를 받은 상처를 갖고 있다. 그녀는 운명처럼 만난 여자아이 지은(김시아 분)을 외면하지 못한다. 그녀는 지은에게서 떠올리기 싫은 학대의 기억을 떠올린다. 그렇게 두 여성은 손을 마주잡는다.      




지난 2018년 기준 아동학대 발생장소 중 80.3%가 가정안에서 발생했다. 부모에 의한 학대는 무려 76.9%였다. ‘훈육’ 또는 ‘가정교육’을 빙자한 아동학대는 이제 국가 차원에서 근절해야 하는 주된 과제로 부상했다. 고무적인 현상이다. 


문제는 속도다 


사진=영화 <미쓰백> 티저 영상 갈무리


지난해 5월 정부 관계부처는 ‘아동이 행복한 나라’라는 슬로건하에 ‘포용국가 아동정책’을 발표했다. 이때 비중있게 검토된 사항 중 하나가 바로 민법 제915조의 ‘친권자의 징계권’ 개정이었다. 개정작업은 지나치게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 민법 915조의 ‘친권자의 징계권’ 조항은 다음과 같다.


“친권자는 그 자를 보호 또는 교양하기 위하여 필요한 징계를 할 수 있다.” 


이 조항은 1958년 민법 제정된 이래 단 한 번도 개정되지 않았다. 우리 법은 보호자의 자녀 체벌을 보장하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이 조항을 삭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더욱이 민법 915조의 ‘친권자의 징계권’ 조항은 아동복지법 제5조2항과 충돌한다. 아동복지법의 조항은 “아동에게 신체적 고통이나 폭언 등의 정신적 고통을 가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규정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2020년 1월 13일. 나는 국회 먼 발치에서 두 어린이를 보았다. 9살, 13살. 아이들은 “체벌은 상처”라고 했다.     

 

핸드폰을 자주 봐서, 잘 씻지 않아서, 늦잠을 자서, 시험 성적이 안 좋아서, 거짓말을 해서….  지금까지 말씀 드린 것들이 제 주변의 형, 누나, 친구, 동생들이 체벌을 받은 이유입니다. 그런데 어른들 중에도 핸드폰을 놓지 못하는 분, 잘 안 씻는 분들 계세요. 청소 잘 안 하시는 분들도 계시고요. 그리고 노력해도 일이 안 되는 분도 계세요. 하지만 그 분들의 버릇을 고친다고 때리려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같은 이유로 맞아도 ‘맞을 만했네’라고 합니다. 어른은 맞으면 안 되고 우리는 맞아도 되는 존재일까요? 이 세상에 맞아도 되는 나이는 없습니다. 맞아도 되는 사람은 더욱 없습니다. -임한울(9)     


분명 같은 잘못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어른과 어른 사이의 관계에서는 그냥 넘길 수 있는 문제가, 어른과 아이 사이의 관계에서는 그저 어리다는 이유로 맞아야 하는 문제가 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우리는 단지 맞는 게 두려워서 움직이는 존재가 아니라 무엇이 옳고 그른지 스스로의 판단과 양심에 따라 움직이는 존재이고 싶습니다. 맞는다고 해서 더 나은 사람이 되지는 않습니다. 훈육이라는 명분하에 전국의 모든 아동들에게 가해지고 있는 체벌은 훈육이 아닌 폭력입니다. 누구보다도 보호받아야 할 아이들에게 평생 지울 수 없는 상처와 두려움만 남길 뿐입니다. -최서인(13)     


사진=영화 <미쓰백> 티저 영상 갈무리


정태영 세이브더칠드런 사무총장은 우리사회가 체벌을 정당화해왔다고 비판한다. 그의 말을 들어보자.


“대다수 아동학대 사건이 체벌로 시작합니다. 유엔아동권리위원회는 우리나라에 ‘징계적’ 처벌을 포함한 모든 체벌을 명시적으로 금지하라고 권고했습니다. 민법 915조는 부모가 자녀의 신체를 훼손할 수 있는 여지를 법적으로 인정하는 대표적인 문제조항이죠.” 


홍창표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국내 부회장은 가벼운 체벌이 학대로 바뀔 수 있다고 경고한다. 


“전 세계 56개국이 아동체벌을 법으로 금지하고 있어요. 가벼운 체벌에서 시작한 행위가 극심하고 잔혹한 학대로 변질될 위험성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민법 915조의 삭제를 더 이상 미뤄서는 안됩니다.”


이동건 전국아동보호전문기관협회장의 말. 그는 ‘친권’의 개념이 재정립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아동학대 현장에서 상담원이 가장 많이 듣는 말은 ‘자녀의 훈육을 못하게 하면 너희들이 내 아이들을 키워 줄 거냐’는 거죠. 아동을 인격체로 보지 않고 소유물로 여기는 태도에서 비롯된 겁니다. 아동이 어른 말을 듣지 않으면 때려서라도 가르쳐야 한다는 편견이 아동학대로 이어지게 됩니다.”

  

정의당 추혜선 의원은 “폭력은 상대가 굴복할 때까지 행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부모-자녀 관계를 종속적 관계로 이해해 징계권을 명시하는 민법 915조는 구시대의 유물로 민법 913조에 보호자의 교양 의무가 있으므로, 915조가 없어도 훈육은 충분히 가능합니다.”

     

지금 당신은 자녀에게
손을 올리고 있습니까?


사진=영화 <미쓰백> 티저 영상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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