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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양균의 코드블랙 Nov 27. 2019

“시부모한테 잘하니 애를 셋이나 낳았다더라”

난임 치료는 국민건강보험에 적용을 받는다. 그렇다고 부수적 의료비 지출까지 정부가 책임지진 못한다. 난임은 의료비 부담으로 이어지고, 다시 가계의 파탄을 유발해 사회적 지출을 가중시킨다. 보건복지부의 정책은 바로 이 지점에 집중되어 있다. 그런데 놓치고 있는 부분이 있다. 난임이 가정 안에서 어떻게 여성을 압박하는 요인으로 작용하는가이다. 이 문제에 대해 보건복지부와 여성가족부는 별로 관심이 없어 보인다.


사진=영화 '82년생 김지영' 예고편 갈무리

        

영화 ‘82년생 김지영’이 흥행과 평가 모두를 거머쥐었다. 개봉 전 별점 테러에도 불구, 영화가 호평을 받은 이유가 비단 원작의 탄탄함과 배우의 연기, 안정적인 연출 뿐만은 아닐 것이다. ‘공감’에 힘입은 바다. 난임 정책을 취재하던 나는 전국의 숱한 김지영씨들의 속사정을 들은 적이 있다. 이들은 모두 난임 부부였다. 여성들이 내게 보내온 편지속의 사연이란,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는 것들뿐이었다. 일부를 우선 소개한다.  


“왜 아일 안 낳니? 나이가 많아서 그러니?”, “실 가는데 바늘가고, 바늘 가는데 실 가는 거라고 했다. 이번 명절에도 혼자 올 거면 오지말거라”, “동서 왜 아기 안 가져? 애 안 들어서니? 그럼 낳지 마. 요즘 둘이서도 잘 산다더라”, “지금도 늦었어. 언제까지 청춘일거 같니? 지금 낳아도 애가 대학가면 너 할머니 된다. 요즘 애들은 늙은 엄마 싫어해.”


벌써부터 혈압은 오르지 말길. 난임은 더 이상 소수의 특별한 ‘문제’가 아니지만, 우리사회는 여전히 난임의 원인을 여성에게서 찾는다. 다음의 사연은 난임 여성들이 감내해야 하는 일상이 어떠한지를 보여준다. 우리사회에 깊게 뿌리내리고 있는 가부장제는 ‘난임’과 맞물려 여성을 짓누르고 있었다. 여성 인권에 대해 ‘유의미한 변화’, ‘달라진 풍경’으로 시작하는 언론 보도가 속속 나오고 있지만, 취재에 응한 다수의 김지영씨들에게는 이러한 이야기는 아직 먼 나라 사정이었다.      


사진=영화 '82년생 김지영' 예고편 갈무리


“시부모에게 잘하니 애를 셋이나 낳았다더라”


“제가 살이 많이 쪄서 임신에 실패한다고 하더라고요. 난임은 전부 여자의 잘못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저요, 168센티미터에 62킬로그램이거든요. 날씬한 건 아니래도 뚱뚱해서 임신이 안 될 정돈 아니거든요? 이 와중에 남편은 여자 연예인이 나오는 TV를 보고 있더라고요.”


“시댁에서 어쩌다 임신이나 난임, 시험관 시술 얘기만 나와도 어색한 분위기. ‘남편한테 잘해라. 신경 쓰이지 않게 해라. 새벽 기도 나갈 것이다’ 이런 말만 잔뜩 하지, 위로가 되는 말은 전혀 없더라고요.”


“시어머니는 꼭 아들을 낳으라고 해요. 여기까지 이 말이 나와요. ‘어머님, Y염색체는 남편이 갖고 있는거에요’라고요.”


“집안 행사를 마치고 나면 시어머니는 절 앉혀놓고 생밤을 입에 넣어주십니다. 다른 친척들에게는 ‘애기 낳을 때까지 줄거야’라고 하면서요. 시댁에 갈 때마다 이러는데 저, 난임 치료 받는 걸 뻔히 알면서 말예요. 속상해서 매번 울어요.”


“시어머니는 저와 모녀처럼 지내고 싶으니 친하게 지내자고 하십니다. 며느릴 편하게 해주는 시댁이 어디 있냐고요. 제가 난임 치료를 위해 맞는 주사가 아파서 매번 운다고 하니 그러시더라고요. ‘모질고 독한 것. 일찍 와서 명절 음식 해놓거라.’ 방금까지 모녀처럼 지내자고 하더니.”


“시아버지의 말이 비수로 꽂혔어요. ‘아이 없이 살아도 된다. 너희 둘이 행복하게 잘살면 된다. 그런데 다른 손주를 예뻐하려니 며느라기에게 눈치가 보여 마음껏 사랑을 못준다.’ 남편에게는 아무 말 안하다 꼭 제게만 상처 주는 말을 하더라고요.”


“시댁에서 식사를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시어머니가 ‘넌 밥값도 못하는 애가 (아이도 못 낳으면서) 언제 밥값 할 거니?’라는 거예요. 시댁 식구들은 왜 아무렇지도 않게 심한 말을 할까요? 너무 상처를 받아요. 시댁 식구들은 정말 고구마 100개에요.”


“두 번째 유산을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시댁에 갔어요. 저 혼자 몇 십인 분의 설거지를 했어요. 회복이 안 된 상태라 식은땀을 줄줄 흘리면서 일을 해야 했어요.”


“몸이 힘든 건 참으면 되는데 정신적인 문제는 방법이 없어요. 시댁에 가면 꼭 그런 사람 있지 않나요? 시부모님도 아닌데, 왜 있잖아요. 명절이면 꼭 들르는 먼 시댁 친척들 말예요. 저만 보면 ‘애는?’ 이러면서 한마디씩 하는데 너무 짜증나요.”


“남편은 장남에 장손이라, 명절마다 아들을 낳아야 한다고 귀에 못이 박히게 들어요. 한번은 저도 ‘그게 제 맘대로 되나요’라고 대꾸했죠. 그랬더니 ‘여자만 잘하면 된다. 맘을 곱게 써야 아기가 들어선다. 시부모한테 잘하면 아기가 온다’는 잔소리가 폭풍으로 쏟아지대요. 아니, 여성이 애 낳는 기계인가요?”


“유산을 하고 나서 시어머니가 한약을 지어준다며 오라더라고요. 갔더니 ‘돌아가신 시할머니한테 애를 잘 점지해 달라고 빌자’는 황당한 소릴 들었어요. 어쩔 수 없이 시어머니를 따라 산소에 갔어요. 유산한 다음날이라 다리에 힘이 없어 산에 오르는데 너무 힘들더라고요. 겨우 도착해선 시어머니 말대로 ‘빌었죠’. 결과는? 여태껏 임신 소식 없어요. 어머님, 조상님, 듣고 계세요?”


“같이 식사를 해놓고 설거지는 저만 시키더라고요. 전 애가 없고 시댁 친척 언니는 애기 엄마라 그렇대요. 저 혼자 산더미 같이 쌓인 접시를 닦느라 혼났어요.”


“시어머니의 말이 정말 압권이었어요. ‘강아지를 키우니까 임신이 안 된다. 개 갖다 버려라’, ‘부적을 들고 다니면 애가 생긴다’, ‘다른 집 며느리는 시부모한테 잘해서 애가 셋이나 생겼다’, ‘시부모한테 잘하면 복이 들어온다’, ‘자장면을 먹으면 임신이 안 된다’. 정말 주옥같지 않나요?”


“전 큰며느리인데 아직 아이가 없어요. 동서가 두 명인데 모두 애 엄마에요. 명절이 되면 늘 저만 음식 준비와 설거지를 도맡습니다. 두 동서가 얌체는 아닌데, 시댁 식구들이 제게만 일을 시키는 거예요. 애가 없으니 일하라 이거죠. 거실에서 다들 아이들의 재롱을 보고 웃고 떠들고 있을 때, 저는 혼자 허리 한번 못 펴고 설거지를 했어요. 그래도 수고했단 말 한번 못 들어요.”


“시어머니에게 ‘제가 (시댁에) 일찍 갈게요’라고 했더니 ‘그러려무나. 하긴 네가 애가 있니 뭐가 있니.’ 이것뿐이게요? 시댁 식구 중에 꼭 이런 사람이 있어요. ‘이럴 때 애가 하나 있어야 분위기가 좋아질 텐데’라고 말이죠. 태몽을 꾸면 무조건 저희 부부에게 전활 합니다. 태몽을 사가라고요. 임신이 안 되면 되레 ‘꿈 값을 그것밖에 안주니 개꿈 됐네’라고 하는데, 정말 너무들 해요.”




앞선 사례들은 난임 부부 속 여성들이 내게 보내온 여러 사연 중 극히 일부다. 과거의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 여성의 희생과 헌신이 강제된 것이었다면, 현재의 그것은 젠더평등을 기반으로 해야 한다는 데에 이견이 없다. 그러나 이러한 사회적 당위와 요구와는 상관없이 난임 부부 속 여성들은 오늘도...


남몰래 눈물을 삼킨다     


사진=영화 '82년생 김지영' 예고편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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