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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양균의 코드블랙 Jan 22. 2020

“너희 둘다 설에 친정갈거니?”



설 연휴가 시작된다. 전국 도로는 귀성 차량으로 꽉 막혀 가다 서다를 반복할 것이다. 오랜만에 가족들과 함께 하는 며칠의 시간. 그러나 이때가 모두에게 달가운 것은 아니다. 특히 시댁으로 향하는 전국의 며느라기에게 설 연휴는 고된 노동과 스트레스로 가득한 울화통의 시간과 다름없다.      


시대가 변해 예전보단 덜하다고 해도 가부장적 분위기는 아직 우리사회에서 강력한 것 같다. 특히 시월드라고 불리는 시댁에서 보내는 연휴 기간 동안 며느라기들은 남모를 답답함을 호소한다. 나는 여러 인터넷 기혼 여성 커뮤니티 회원들의 도움으로 며느라기들의 다양한 명절 사연을 들어보았다. 그들은 시대의 변화가 미미하거나 과거와 비교해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고 했다. 


내가 받은 사연들은 하나같이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는 것들이었다. 물론, 이를 전체 가정에 대입할 수는 없다. 일반화할 수는 없으며, 다분히 과장된 견해도 많았기 때문이다. 다만, 수백편의 속풀이 한탄 속에 우리 사회에 깊게 뿌리내린 가부장제에 대한 비판이 짙게 배여 있었다는 점이다. 


궁극적으로 고부간의 갈등이나 명절 스트레스가 말하는 것은 하나다. 며느라기를 위시해 우리 사회의 여성 권익 신장은 아직도 기존 시스템에 갇혀 있으며, 갈 길이 멀다는 것이었다. 지금부터 이어질 글은 ‘발암 유발’ 사연들이다. 시월드 혹은 가부장제를 정조준하는 여성들의 이른바 속풀이 하이킥을 지금부터 시작한다. 


사진=픽사베이

      

잘 먹게 생겨서 먹고 난 밥 왜 안 먹니?     


“설날이 되니 슬슬 머리가 아프기 시작해요. 결혼하고 첫 명절에 시댁엘 갔는데, 남자들이 먹고 남긴 밥을 양푼에 담아 비벼서는 권하더라군요. 비위가 상해서 도저히 먹을 수가 없었어요. 그랬더니 ‘잘 먹게 생겨서 왜 못 먹느냐’고 꾸중을 하시더군요. 아니, 잘 먹게 생긴 게 도대체 어떻게 생긴 거죠?”


“시댁에서 남자들은 새 밥을 주더니 여자들은 찬밥을 먹자고 하더군요. 부아가 나서 ‘찬밥 싫어요’라고 했더니 시어머니께서 찬밥위에 따뜻한 밥을 살짝 얹어서 주더군요. 얼마나 황당하던지.”


“너는 왜 해산물을 안 좋아하냐고 밥상머리에서 구박을 받았어요. 이게 벌써 17년째랍니다. 시댁이 부산이라 반찬에 해산물이 많거든요. 전 원래 해산물을 안 좋아해요. 그게 잘못된 건 아니잖아요. ‘이상한 사람’ 취급까지 받아야 하나요?”


“시누이는 제게 ‘꼭 밥 먹고가라’고 말해요. 명절은 다 같이 모여서 식사를 해야 한다면서 명절 마지막 날 친척들이 올 때까지 기다리라는 거죠. 여기까지만 하면 다행이죠. 제가 아니면 제사 음식은 누가 하냐고 대놓고 말해요. 말이란 게 그렇잖아요. ‘아’ 다르고 ‘어’ 다른 건데요. 어차피 제가 제사 음식 장만부터 뒤치다꺼리를 다 하는데, 고생한단 말은 못할망정 꼭 이렇게 말을 해야 하나 싶어요. 그리고 며느리 도리란 게 시댁 제사상을 차리는 게 전부는 아니잖아요.”


“남편이 누이를 만나고 가자고 해서 기다렸어요. 오후 늦게 온 시누이는 왜 밥을 안 해놨느냐고 제게 짜증을 부리더라고요. 김밥 재료를 가져왔으니 만들라는 거예요. 근데 보니까 달랑 단무지와 우엉 한 덩어리가 전부. 재료 만들랴 김밥 40줄을 싸느라 얼마나 고생했는지 몰라요. 단무지를 던져버리고픈 걸 참느라 혼났어요.”


“시댁에서 제사 지내고 밥 차리고 전부 치우고 나니 진이 다 빠지더라고요. 설거지를 끝내고 친정에 갈 준비를 하려니까 시어머니가 시누이 식구들 먹일 만두를 만들라는 거예요. 만두 속을 보니 열 명도 넘는 사람들이 먹을 만큼의 양이더군요. 얼마나 기가 막히던지. 시어머니왈, 다 만들어 놓고 친정 가거라. 아니, 어머님! 제가 파출부에요?”


“시할머니 돌아가신 후 첫 제사라 시댁 식구들이 전부 모였어요. 형제가 많다보니 머릿수가 장난이 아니었어요. 그런데 다들 제사상에 절 만하고는 손가락 하나 까딱하질 않는 거예요. 며느리 둘이 죽을 둥 살 둥 일을 하고 있는데, 시어머니는 옆에서 폭풍 잔소릴 쏟아내더군요. 며느리에게 함부로 하는 것이 당신을 높인다고 여겼던 게지요. ‘느려 터졌다. 이런 것도 제대로 못하느냐’ 난리도 아니었어요.”


“잡일은 다 막내며느리인 제 몫이었어요. 겨우 일을 끝내고 그제야 식사를 하려고 했는데 밥이 한 톨도 없는거에요. 시댁 식구들에게 밥이 모자라면 더하면 된다며 거듭 권하던 시어머니는 모르는 체 하시더라고요. 일이란 일은 다 하고 쫄쫄 굶었어요. 우리 집에서 저 진짜 귀하게 컸거든요. 엄마, 아빠 생각도 나고 얼마나 서럽던지. 그 후로 정말이지 시댁에 안 가고 싶었어요.”


“시어머님은 제게 ‘우리 아들이 텐트만 치고 겨우 살아도 넌 시집왔을 거야’라고 했어요. 제 부모님을 무시하는 것 같아서 너무 기분이 나빴어요. 속으로 그랬죠. ‘어머님, 우리 집에서 절 그런 남자에게 절대로 시집 안 보냈을 거예요.”


외로워요. 시댁에 가면 저만 이방인인 것처럼 느껴요. 저만 빼고 다 아는 이야기를 나누는데, 매번 같은 이야기인데도 다들 재밌게 하는 게 전 솔직히 적응이 안돼요. 그러니 더욱 끼질 못하고요.”     


사진=영화 '82년생 김지영' 갈무리


이번에도 둘 다 친정 갈거니


“시댁에서 명절마다 물어보는 게 있어요. ‘이번에도 친정 가니? 둘 다 가니?’ 친정이 멀어서 남편과 전 일 년에 두 번 큰 명절에만 가거든요. 나 원 참, 이마저도 가지 말란 건지. 이젠 형님도 물어봐요. ‘동서, 이번에 친정가요?’ 또 물어보면 ‘형님은 친정 안가세요?’라고 쏘아붙이려고요. 그런데 막상 그 상황이 되면 못할 것 같아요.”


“전 시댁에 큰 불만 없어요. 잘해주세요. 그런데도 꼭 물어요. 이번에 친정 가냐고요. 그게 벌써 15년째에요.”


“항상 시댁에 먼저 가야했어요. 친정 엄마 혼자서 고생하는데도 한 번도 못 도와드렸어요. 정작 시댁은 제사를 안 지내고 손님도 안 오거든요. 한번쯤은 친정엘 먼저 가서 도왔으면 하지만 벙어리 냉가슴이죠. 혼자 동동거리며 제사상을 차릴 엄마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파요.”


“전 친정 부모님이 안 계시거든요. 그래서 명절마다 엄마 같은 이모를 보러가요. 한번은 시어머니가 그러더라고요. ‘누가 명절에 이모를 찾아가니? 넌 갈데없으니까 시댁에나 더 있어.’ 얼마나 서럽던지 눈물이 계속 나왔어요.”


“건강이 좋질 못해서 작년 추석부터 시댁엘 가지 못했어요. 제가 못 가니까 남편과 아이들도 안 가더라고요. 시부모님께선 아들과 손주를 못 본다고 제 탓을 하셨어요. 아픈 것도 서러운데, 이런 말까지 들어야 하나요?”


“몇 번 친정엘 못 갔어요. 그랬더니 이제는 명절 내내 시댁에 있는 걸 당연하게 여기더라고요. 하다하다 시이모님에게까지 인살 하러 가라던데… 저도 친정가고 싶어요. 정말 너무 합니다.”


“친정 부모님께서 안 계시기 때문에 동생들과 각별하거든요. 그래서 동생을 만나러 가려고 하니까 시댁에서 ‘그러던지 말든지’라고 팍 쏘아붙이더군요. 얼마나 싫은 티를 내던지요….”


“결혼하고 첫 명절이었어요. 시아버지께서 ‘감히 며느리가 명절에 어디 친정엘 가느냐’고 하셨어요. 화나고 서럽고… 남편 앞에서 펑펑 울었어요.”


“저희 시댁은 정말 ‘막말 잔치’입니다. ‘근본 없고 배운 것 없는 애들이나 명절에 친정 간다’부터 ‘딸만 있으면 나중에 어떻게 되는지 아니? 노숙자들은 다 딸만 있다더라’ 등등. 한번은 크리스마스에 시댁엘 안 갔다가 난리도, 그런 난리가 없었어요. 그때 시어머니 말이 압권이었어요. ‘넌 크리스마스도 명절인거 모르니?’ 그걸 이겨낸 제가 장하다니까요.”


“남편이 자면서 땀을 많이 흘려요. 시아버지는 ‘자지 말고 내 아들 땀 닦아 주거라. 넌 나중에 애 보면서 자면 되지 않니’라고 하대요. 이게 다면 그러려니 하죠. 며느리라 그러는 게 아니라, 미워하는 것 같아요. 제 이름도, 생긴 것도, 공불 잘해서 장학금을 받으며 대학을 졸업한 것도 맘에 안든대요. 그러면서 친정이 얼마나 별 볼일 없으면 장학금 받고 알바하면서 학교다녔냐고요.”          


사진=MBC 드라마 '모래성' 중 갈무리


가정 그리고 여성


“난 이렇게 너한테 다주고 늙어 가는데, 넌 나가면 충분한 보수, 인정받는 실력, 몰두할 수 있는 일, 그리고 집에 들어오면 건강한 자식, 수족처럼 시중 잘 들어주는 아내. 난, 난! 내가 가진 게 뭐야? 결혼하면 지 여자이기만 하면 된다고 딴 남자 눈길 받는 거 싫다고 더듬이도 날개도 잘라 가둬놓고! 화대 안주는 잠자리 상대. 월급 안주는 가정부 게다가 유모. 그렇게 샅샅이 알뜰하게 파먹고 뜯어먹고 써먹더니 난 이제 뭘 붙들고 살아야 돼. 말해봐.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부터 내가 이렇게 늙고 초라했었니? 나도 스무 살도 있었고 서른 살도 있었어. 나 늙었으면 당신도 늙었어. 난 그렇게 성실했는데, 내 성실은 하늘도 부정할 수 없어.” 

-<모래성>(극본 김수연·연출 곽영범, 1988) 중에서     


기혼 여성의 명절 스트레스는 가정 안에서 여성의 위치가 어떠한지를 말해준다. 여성들이 가정 안에서 겪는 이러한 스트레스는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자아정체성의 혼란과 우울 및 불안 증세로 나타날 수 있다. ‘중산층 중년 기혼여성의 건강 스트레스와 우울, 불안과의 관계에서 자아정체감의 조절효과 검증’(2015.12.한국심리학회지, 송은미·이승연)에 따르면, 일상생활 스트레스-자아정체감, 자아정체감-우울·불안에는 부적 상관관계가, 일상생활 스트레스-우울·불안 간에는 정적 상관관계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논문은 불안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로 자아정체감이 주요 요인이라고 밝혔다. 또한 우울과 불안에 대해 자아정체감의 상호작용이 모두 유의하다고 결론 내렸다.


과거의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 여성의 희생과 헌신이 전제된 것이었다면, 현재의 그것은 젠더평등을 기반으로 해야 한다는 데에 이견이 없다. 그러나 이러한 사회적 당위와 요구와는 상관없이 오늘도 명절을 ‘감내하는’ 한국의 며느라기들은 명절 증후군에 시달리며 제대로 된 휴식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경우가 너무 많다. 


사진=영화 '82년생 김지영'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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