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초이 Jan 15. 2020

미술관을 가는 이유

창조자와 감상자의 매개체, 미술관.

인류는 첨단시대에 발 빠르게 적응해 오면서 시시비비 셀 수 없는 국면을 맞이하게 됩니다. 예컨대 첨단시대 산물의 일부인 휴대전화만 살펴보더라도 국내의 경우 휴대전화 보급률은 100%로 나타났고 이 가운데 스마트폰 사용자들은 95%를 차지해 조사 대상 국가들 가운데 스마트폰 보급률이 가장 높았다는 기사를 접했습니다(ⓐ). 이제 스마트폰으로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는 시대인 것입니다. 휴대전화로 기본 기능인 연락을 할 수 있고, 더 나아가 노래를 들을 수 있으며, 동영상, 라디오, TV 시청까지. 운전자에게는 내비게이션이 되기도 하고요. 자유자재로 인터넷을 검색하고, 서핑하며, 쇼핑하기까지 합니다. 무거운 카메라 대신 간단하게 사진 촬영까지. 모든 역할을 지원하고 있는 만능 제품인 셈이지요. 프랑스 파리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되어있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그림 <모나리자>도 사진으로 검색만 하면 고화질로 찾아볼 수 있고 사진첩에 저장까지 할 수 있죠.

우리는 이런 만능 제품이 있는데도 왜 작품을 직접 보러 미술관을 방문하는 걸까요? 미술을 제대로 감상하기 위해 거쳐야 하는 관문 같은 존재 '미술관'. <심미안 수업>의 윤광준 저자는 "사람의 눈으로 '보는 것'중에서 그림만큼 강렬한 쾌감을 주는 일은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일상 어느 곳을 둘러봐도 미술은 쉽게 찾아볼 수 있으나 지극히도 일상적이기 때문에 우리가 의식하지 않으면 잘 보지 못합니다. 그래서인지 미술관을 가면 '의식'하고 '거리'를 둠으로써 대상을 바라볼 수 있는 시선을 확보하게 되고 관객은 예술에 집중할 수 있게 되죠. <끌리는 박물관>의 매기 퍼거슨 저자는 "박물관을 찾는 보람은 어떤 대상과 특별한 관계를 맺는 데서 온다"라고 지적했습니다. <끌리는 박물관>의 추천사를 쓴 니컬러스 세로타 영국 테이트 미술관 관장은 "위대한 작품을 자세히 확대한 인터넷 이미지가 제 아무리 황홀하더라도, 직접 보고 손으로 만져보는 경험은 촉각적이고, 본능적이다. 창조자와 감상자 사이에는 아무것도 끼어들지 못한다. 이런 경험이 상상력에 불을 지핀다. 박물관은 크고 작은 영감을 아낌없이 내려준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창조자와 감상자 사이에는 물건 혹은 그것이 모든 것을 찾아내는 스마트폰일지라도 끼어들 수 없다는 것입니다. 기획된 전시를 통해 느껴지는 직접적인 예술적 감수성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창조자와 감상자의 매개체인 미술관(이하 박물관, 갤러리…….)은 개인전이라고 할 경우에도 공간의 규모, 형태, 동선, 시선 등을 모두 고려해 작품 배치를 결정하고 조명의 위치, 소품의 배치까지 손 안 닿는 곳이 없는 것이지요. 미술관은 작품을 관객에게 최상의 상태로 보여주는 공간이며 모든 것과 어우러질 수 있는 디자인을 하는 공간이기도 합니다. 

도서 <끌리는 박물관>은 '당신 인생의 박물관은 어디입니까?'라며 24명의 작가에게 묻습니다. 저도 '인생' 박물관만큼은 아니지만 '좋아'하는 미술관이 있는데요. 바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입니다. 규모와 명성으로만 보기에도 그렇고, 논란도 그만큼 많거든요. 남들 다 가는 잘 알려진 미술관이기도 해서 내게 '인생' 미술관이라고는 할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원심림(Centreefugal Park)>, 2017 / 양수인

2017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진행했던 전시 하나가 문득 떠오릅니다. <젊은 건축가 프로그램 2017>에서 양수인 작가의 작품 <원심림(Centreefugal Park)>이 우승작으로 당선되었죠. <젊은 건축가 프로그램 2017>은 '쉼터', '그늘', '물'이라는 세 가지 키워드를 가지고 젊은 건축가들의 창의적 제안을 통해 최종 1인(팀)을 선정했습니다. 우승 건축가였던 양수인 작가는 자신의 아이디어를 실현함으로써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앞마당을 "또 다른" 공간으로 변모시켰죠. 당선작은 원심목(木)으로 쉼터를 제공하고 회전하는 나무숲 구조체였습니다. 'Centreefugal Park'은 숲을 의미하는 '원심림'과 그 안에 자리하고 있는 나무들의 생장 동력인 '원심력(Centrifugal)'을 합성한 단어였습니다. 양수인 작가는 더운 여름 한시적으로 도심에 세워지는 '팝-업 공원'을 구상했다고 밝혔는데요. 가볍고, 경제적이며 설치가 용이한 친환경적 건축을 고민하는 과정에서 단순한 동력 장치를 통해 나무와 비슷하게 생긴 모양의 '원심목'이 탄생되었습니다. '원심목'은 회전하는 속도에 따라 납작한 우산과 같은 형상으로 변하면서 한여름 태양 아래 그늘 쉼터를 제공했습니다. 원심목 아래 벤치들은 움직이기도 해서 관객 스스로 그늘을 찾도록 이리저리 움직이기도 했는데 그 광경이 무척이나 독특해서 재밌었습니다. 처음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방문에는 작품 <원심림> 벤치에 앉아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포기했고, 두 번째 방문에는 벤치에 앉아볼 수 있었는데요. 벤치를 이리저리 직접 움직이며 그늘을 찾아다니는 행위는 잊을 수 없는 새로운 경험이었습니다. 


<삼라만상>, 1984-2014 / 강익중

그 날은 전시관을 둘러보다 강익중 작가의 <삼라만상> 작품을 실제로 보게 되었던 그때, 굉장히 흥분이 가득한 상태로 관람했던 기억이 납니다. 김아타 작가의 <온 에어 시리즈> 작품을 봤을 때도 이 정도의 황홀감은 아니었는데 강익중 작가의 <삼라만상> 작품을 보았을 때는 형용할 수 없는 행복감을 느꼈죠. <삼라만상>은 1984년부터 2014년까지 작업한 10,000여 점에 이르는 작은 캔버스들로 구성된 대작입니다. 작품을 보러 '들어'가야 할 정도의 엄청난 높이를 자랑했는데요. 삼라(森羅)는 넓게 퍼져 있는 숲처럼 늘어선 모양을 가리키며 삼라만상(森羅萬象)은 온갖 사물들이 숲처럼 빼곡히 퍼져있는 모습을 나타냅니다. <삼라만상> 작품은 거대한 우주인 '삼라만상'을 제목과도 일치하게 연상시킵니다. 반가사유상은 이렇게 연결된 세상의 모든 양상을 바라보는 '관음상'으로 설치되어 크롬 도금된 표면 위 벽면에 설치된 작품들이 투영되어 '있으면서도 없는' 색즉시공(色卽是空), 공즉시색(空卽是色)의 의미를 더합니다(ⓑ).


전시 당시의 사진이 더 궁금하시다면 아래의 링크로 이동 바랍니다. 개인 블로그입니다. 


출처

참고


이전 07화 온전히 자신의 것, 행복.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