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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초이 Aug 13. 2020

진품과 위조품

영화 <베스트 오퍼>, 로버트 인디애나 <LOVE>

사회구조에 길든 우리는 발전하고 복잡한 이 세상에서 더 물질적인 것을 찾고 자신을 드러내고 싶고 외적인 모습으로 타인을 판단하려 합니다. 서로의 배경을 잘 모른다는 이유로 타인의 외면을 판단하려는 것인지 혹은 알 수 없는 우쭐함에 빠져 타인 자체를 정의하는 건지는 모릅니다. 우리는 자신을 표현하고 그것을 표출하고 싶어 합니다. <감정 자본주의>의 저자 에바 일루즈는 ‘감정 자본주의’ 현상을 통해 경제적 자아를 감정적으로 되게 만들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감정들을 좀 더 도구적 행위에 종속되게 만들었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성취한 만족감에 항상 그칠 줄 모르고 더 커다란 만족을 좇게 되는 것 같습니다. 여유가 생기기 시작하면 각종 사치품에 관심을 들이는 것도 모자라 과시하고픈 욕구가 싹틉니다. 그런 심정을 잘 아는 이들은 더 저렴하고 합리적이라는 핑계로 우리를 유혹합니다.


명나라 화가 심주(沈周)에 대해 그의 제자 문징명(文徵明)은 이렇게 말합니다. “심주가 아침에 한 폭의 그림을 그리면, 저녁에 100장이 돼 나타났다.”

내 것이 아닌 남의 창조물을 자신이 창조한 것처럼 속여가며 팔아 이윤을 얻습니다. 위조품은 오로지 돈을 위해서만 제작됩니다. 예술가 작품은 높은 수요에도 만족할 수 없는 한정된 수량이 있으므로 그 틈을 노리고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온갖 고생과 괴로움, 정체성에 대한 고민과 자신 내면의 세계를 찾아 나온 예술가들에게 보란 듯이 당신의 모든 것을 빼앗아가겠다고 말하는 것과도 같은 것이 위조품입니다. 위조품은 예술가들보다도 훨씬 적은 노력으로 작품에 대한 세계관을 고민하지 않은 채 이익을 낼 수 있으므로 계속해서 생겨나는 것입니다. 위조품의 문제는 언제까지나 모두 함께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야 할 문제입니다. 


영화 <베스트 오퍼> 스틸 컷, 2013 / 쥬세페 토르나토레 감독

위조품은 끊임없는 잡음을 일으키기 때문에 그에 관한 사실 여부를 감정하고 시장적 가치를 평가하는 미술품 감정사가 존재합니다. 2013년에 미술품 감정사에 대한 범죄 드라마 <베스트 오퍼>가 개봉했는데요. 흔히 ‘첫인상’이라는 말이 있듯이 나 또한 영화 포스터에서부터 시선을 사로잡혔습니다. <베스트 오퍼>는 위조품과 진품 사이를 오가는 미술품 감정사 60대 버질 올드만의 이야기입니다. 제목의 ‘베스트 오퍼’는 경매에서 최고의 제시액을 말합니다. 베스트 오퍼를 위해선 그 대상이 진짜라는 확신을 해야 합니다. 미술품이라면 당연히 진품이어야 하고 그로써 작품에 대해 최고의 제안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무엇이든 선택할 때 한 번쯤 의심하곤 합니다. 이 선택이 옳은 것인지, 내게 꼭 필요했던 선택인지. 이에 대해 버질 올드만이 비서에게 결혼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묻는 말에 이렇게 말합니다. “경매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내가 부른 값이 최선인지 알 수 없죠.”


영화 <베스트 오퍼> 스틸 컷, 2013 / 쥬세페 토르나토레 감독

<베스트 오퍼>에서 위조품은 모사한 화가 역시 자신을 드러내고 싶어 하는 욕망이 있다고 말합니다. 예를 들어 자신을 드러내고 싶어 하는 모사한 화가의 욕심으로 위조품에 등장하는 옷 주름 또는 인물의 눈동자 속에 조그맣게 새기기도 한다고 말합니다. 위조품 감정을 통해 진품의 면모가 감추어 있다고 말하는 그의 본질에서 감정(鑑定)에 진짜 감정(感情)이 스며든 것으로 생각합니다. “속일 수 없는 것은 없네.”, “사랑도 위조할 수 있을까?” 같은 대사를 통해 문제의식을 반복적으로 느끼게 하면서 예술과 인간의 본질을 어필합니다. “모든 위조품에는 진품의 미덕이 숨어있다.”라고 말하는 버질 올드만은 아무리 위조품일지라도 그 속에 자신만의 창작을 이루어 낼 수밖에 없다고 말합니다. 


<LOVE> 86.3 x 86.3 cm, 1965 / 로버트 인디애나

팝아티스트 로버트 인디애나의 상징, <LOVE>는 1965년 뉴욕 현대미술관(MoMA)의 의뢰를 받아 제작한 작품입니다. 빨간, 파랑, 초록 원색을 이용해 만든 카드는 많은 인기에 힘입어 1966년 입체 작품으로도 제작하게 됩니다. <LOVE> 입체 작품은 뉴욕 스테이플 갤러리에서 처음 선보이게 되었습니다. 로버트 인디애나는 어릴 적 다니던 교회에서 늘 보아온 ‘God is love’라는 간판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합니다. 뉴욕, 도쿄 같은 세계 주요 도시에 <LOVE> 조각상이 설치됐으며 국내에도 서울 명동 대신증권 사옥 앞에서도 <LOVE> 조각상을 볼 수 있을 만큼 우리에게 무척이나 친근한 작품입니다(아모레퍼시픽에서도 작품을 소장하고 있습니다만 공개된 장소에 영구 설치된 작품은 명동 대신증권 사옥 앞이 대표적이기에 우선으로 표기했습니다.). 오리지널 작품은 인디애나폴리스 미술관에 있습니다. 미국, 캐나다, 스페인, 포르투갈, 스위스, 일본,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중국, 아르메니아, 영국, 조지아, 한국 등 전 세계에 50여 개가 넘는 사랑을 전파했습니다. 많은 사랑을 전파한 로버트 인디애나는 생전 인터뷰에서 “<LOVE>가 나를 많이 아프게 했다”라고 종종 말했습니다. 우리에게 주는 강한 긍정적 작품이 왜 작가를 아프게 했을까요? 

로버트 인디애나의 <LOVE> 작품이라든지, <EAT> 작품 등은 문자와 디자인을 잘 활용한 그래픽 디자인으로써 간결하고 이해하기 쉬워 대중에게 명성과 사랑 모두 받았지만, 평론가들은 예술이라기보단 도안(圖案) 일뿐, 상투적이라고 비판했습니다. 뉴욕타임스의 미술비평가 존 캐너데이는 “인디애나 다음 작품의 제목은 ‘돈(Money)’이 돼야 마땅하다.”라고 했습니다. 

‘상업적 그래픽 디자이너’라는 꼬리표를 달게 된 로버트 다이애나는 정작 작품에 저작권 등록도 하지 못한 채 우표로 사용된 디자인료로 1,000달러를 벌었는데요. 'LOVE'라는 글자가 대중적인 단어라는 이유로 저작권 등록을 거부당해 금전적 이익을 취하지도 못했습니다. 이렇게 금전적 이익을 취하지 못하는 작품인데도 너무나 많은 <LOVE> 작품이 새겨진 상품들이 쏟아졌습니다. 


바로 저작권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 수많은 사람이 <LOVE> 작품을 무차별적으로 이용해 상업적 이득을 취했기 때문인데요. 이로 인해 <LOVE>는 머그잔, 티셔츠, 엽서 같은 상품 가치가 있는 모든 제품에 새겨지며 덕지덕지 도용이 남발됐습니다. 이 사실을 모른 채 사람들은 쏟아져 나오는 로버트 인디애나의 상품들을 보면서 상업적인 작품이라며 비판했던 것입니다. 로버트 인디애나는 이러한 사실에 환멸을 느끼고 1978년 미술계를 떠나 외딴섬 바이널 헤이븐에 은둔하며 살았습니다. 

사랑을 주고 싶었던 로버트 인디애나에게 사람들이 준 것은 불법 도용이었고 상업적인 남발뿐이었습니다. 



<LOVE>, 뉴욕 맨해튼 설치물 / 로버트 인디애나 (사진출처 : Pixabay)

아! 나는 그 아픔이 어느 정도의 곤두박질친 절망 일지 감히 헤아릴 수 없었습니다. 은둔자로 어느샌가 대중에게 잊힌 로버트 인디애나는 1998년 드디어 <LOVE>에 대한 저작권을 갖게 되었고 이후 재평가되었습니다. 대중과 달리 세상은 그를 잊지 못하고 다시 부르게 되었습니다. 이후 <LOVE>는 역대 최고 경매가 411만 4500달러를 기록했고 대신증권이 구매를 추진했을 무렵에는 500만 달러(한화 약 56억 원)까지 상승했는데요. 대신증권은 로버트 인디애나를 대리하는 모건 아트 파운데이션에 명동이라는 지역의 역사적, 사회적 배경을 설명해 공감을 얻었고 500만 달러보다는 조금 낮은 가격에 <LOVE>를 사옥 앞에 설치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로버트 인디애나는 2018년 5월 별세했지만, 그가 겪어왔던 사랑에 대한 양면의 칼날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많은 이야기를 건네주고 있습니다. 



ⓐ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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