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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초이 May 13. 2020

폴록의 사랑

바닷새 이야기와 영화 <폴락>

감정은 때론 상황을 살피며 조절하기도, 이성이 더는 통하지 않을 때 내세우기도, 나의 상태를 알리고 싶지 않아 숨기기도 합니다. 그것을 발견하고 느끼며 삶이란 무엇인지 깨닫게 되기도 합니다. 

감정은 아주 단순한 본능 감각이지만 이를 표현하고 이야기하고 구상하는 것은 무척이나 어려운 것 같습니다. 감정은 나 자신을 얼마만큼 표출할 줄 알고 나 자신을 잘 알아가는 방법인 것 같습니다. 

많은 감정 중에 사랑은 지금의 나를 융기할 수 있도록 단단하게 만들었지만 휘어 차리만큼 시리고 모진 경험으로 죽어가는 과거의 나를 만든 것도 사랑이었습니다. 

인간은 기쁨, 분노, 슬픔 등의 여러 감정이 있지만 나 자신과 직접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감정은 ‘사랑’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희로애락을 느끼니까요. 보통의 사랑은 나를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 고민하고 알아가기에 앞서 누군가를 먼저 사랑하게 됩니다. 

완벽히 나는 나를 모르는데도 그 사랑은 잠시나마의 행복과 기쁨을 가져옵니다. 이 사랑은 내가 원하는 것을 상대방도 주길 원하는 전제조건이 깔려 있어 동시에 겪어볼 수 없던 가장 큰 눈물을 주기도 합니다. 장자의 <지락(至樂)>에서 나오는 “바닷새 이야기”는 우리에게 감정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옛날 바닷새가 노나라 밖에 들어와 앉았다. 노나라 임금은 이 새를 친히 종묘 안으로 데리고 와 술을 권하고, 아름다운 궁궐의 곡을 연주해주고, 소와 돼지, 양을 잡아 대접했다. 그러나 새는 어리둥절 해하고 슬퍼하기만 할 뿐, 고기 한 점 먹지 않고 술도 한 잔 마시지 않은 채 사흘 만에 결국 죽어 버리고 말았다. 임금은 큰 슬픔에 빠지게 되었다.”     


장자는 이어서 “자신과 같은 방법으로 새를 기른 것(以己養養鳥)이지, 새를 기르는 방법으로 새를 기른 것(以鳥養養鳥)이 아니다.”라고 말합니다. 장자는 오래전 이미, 사랑은 행복을 주기도 하지만 가장 큰 불행을 주기도 한다는 것을 설명했습니다. 임금이 준 사랑은 인간이라면 기뻐했을 테지만 ‘새’에게는 모든 것이 괴로움이었을 것입니다. 사랑은 내 방식을 고집해야 할 것이 아니라 다른 삶과 규칙을 가진 타자라는 존재에 숙고해야만 하는 이유를 말하고 있습니다. 

임금은 ‘이렇게 하면 바닷새가 좋아할 거야’라는 편견을 잊어야만 했습니다. 사랑하지만 타자와 거리를 가져야 합니다. 멀리 두는 게 아니라 존중할 수 있을 만큼의 거리를 두세요. 타자를 늘 존중해 주세요. 내가 주는 혹은 타자가 주는 사랑은 감정을 갉아먹고 파괴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해야 합니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둔갑시켜 그렇게 아픔을 주어야만 하나요? 그 후엔 석연찮은 감정이 잔상처럼 남을 것을 그렇게도 알면서 왜 가시처럼 서로를 찌르기만 하나요? 


비틀린 사랑 이야기는 예술가들의 가장 좋은 먹잇감이 아닐까 싶습니다. 프리다 칼로와 디에고 리베라의 사랑도, 카미유 클로델과 오귀스트 로댕과의 사랑, 잭슨 폴록과 리 크라스너의 사랑은 또 다른 예술작품의 좋은 자양분이 되었습니다. 

퓰리처상을 받은 전기 <잭슨 폴록 : 미국의 신화(Jackson Pollock : An American Saga)>를 원작으로 한 <폴락>은 나에게 물음을 던져준 영화였습니다. 그들은 어떤 삶을 살고자 이토록 처절하게 질척였을까?



영화 <폴락>의 스틸 컷, 2000 / 에드 해리스 감독


서로를 이해하지 않고 타협점 또한 찾지 못하는 둘의 모습은 사랑으로 포장된 안은 썩을 대로 썩어버린 알갱이뿐이었습니다. 잭슨 폴록은 가난한 예술가들이 모여드는 그리니치 빌리지의 작고 허름한 형 부부의 집에 얹혀살고 있었습니다. 잭슨 폴록은 술에 전 채 허송세월로 방황하던 찰나 리 크라스너를 만나게 됩니다. 리 크라스너는 신입체파 경형의 그림을 그리며 이미 자기 세계를 구축한 화가였습니다. 독일 출신 화가 한스 호프만(ⓐ)도 인정했을 만큼 자기 세계를 구축한 여류 화가였습니다. 리 크라스너는 4살 연하의 잭슨 폴록에게 천재성을 발견합니다. 리 크라스너는 자신의 그림에 열중하기보다 잭슨 폴록의 작업을 지원하면서 ‘미시즈 폴록(Mrs. Pollock)’을 자청하고 자신의 붓을 꺾는 큰 결심을 합니다. 

거의 자기 파괴적인 잭슨 폴록을 매니저처럼 돌보고,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결혼을 합니다. 그들은 뉴욕 롱아일랜드 이스트 햄프턴 바닷가 근처에서 보금자리를 틀게 됩니다. 안정된 생활이 찾아오자 잭슨 폴락은 아이를 낳고 싶어 했지만, 리 크라스너는 가난한 화가인 우리에게 아이는 가당찮다며 오직 한 사람 잭슨 폴록에게만 관심을 쏟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말합니다. 

그는 사랑을 원했고 결실인 아이를 원했지만, 그녀는 천재를 원했습니다. 리 크라스너는 오로지 그가 더 많은 작품을 그려주길 다그쳤습니다. 

자신이 꺾었던 붓을 억지로 남의 붓에 이어 붙여 이루지 못한 욕망을 해소해주길 바랐습니다.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만남에 신물이 난 잭슨 폴록은 이혼을 원했지만, 그마저도 용인할 수 없던 리 크라스너와의 사랑은 썩을 대로 썩어버린 알갱이만을 남기게 됩니다. 



<No.1>, 240 x 120m, 1950 / 잭슨 폴록


잭슨 폴록은 당시 현대 미술의 그림 단추로 떠오른 만큼 커져 버린 부담감을 이길 수 없었습니다. 다시 술에 절고 매너리즘을 느끼며 애인과 친구들을 태우고 음주운전을 하다가 44세라는 젊은 나이에 교통사고로 생을 마감합니다. 잭슨 폴록이 현대 미술의 큰 획을 긋는 업적에 비교해 사랑은 비루했습니다. 로젠버그 평론가는 캔버스라는 ‘격투기장(arena)’ 안에서 재료와 싸우는 고독한 검투사라고 말했습니다. 

잭슨 폴록을 단 두 시간짜리 영화에 담아 넣는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시도이며, 영화라는 각색의 가미가 더해져 극적 이게 되어버렸지만, 이것 또한 잭슨 폴록의 작품을 이해하는 한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액션 페인팅’에 미치기까지 내조 동시에 옥죄이는 사슬은 현대 미술의 한 장이라는 이정표를 세웠습니다. 


ⓐ 리 크라스너의 스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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