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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z교사 김콩콩이 Nov 01. 2024

교사가 되고 난 뒤, 옛 선생님을 찾다

스승 찾기 서비스로 찾은 선생님

 가지런히 놓여있는 책상, 교실 앞쪽 벽에 걸려있는 태극기, 옹기종기 붙어있는 직육면체의 사물함...  시간이 어느 정도 흘렀음에도 학생으로서 등교하던 학교와, 교사가 되어 출근하는 학교의 모습은 거의 다르지 않다. 학생들을 보내고 난 빈 교실에 홀로 앉아 나른한 표정으로 교실의 형상을 훑는다. 책상, 사물함, 시계 같은 식상 하면서도 교실을 교실답게 하는 사물들을 바라보며 학생 시절의 나와 재회한다. 자꾸만 자꾸만 학생 시절의 기억을 반추해 낸다.


 수학 숙제를 집에 두고 와서 3교시인 수학시간이 될 때까지 덜덜 떨며 제발 선생님이 숙제 검사를 하지 않기만을 기도했던 날. 짝을 바꾸는 날만 기다리며  짝사랑하던 그 아이와 짝이 되는 행운이 내게 오길 소망했던 날. 배가 아프다며 거짓말을 하고 조퇴하고 케첩 범벅 된 핫도그를 쥐고 집에 오던 날. 숨어있던 자잘한 기억들이 어디선가 툭툭 튀어나와 머릿속을 어지럽힌다. 추억 속을 헤매다가도 결국 나의 사고의 흐름은 행복한 추억으로 정착한다. 햇볕으로 데워져 풀밭마저 포근할 것 같았던 어느 봄, 야외 수업을 한다며 우리를 밖으로 데리고 나오셨던 선생님. 구령대에 걸터앉아 시를 썼던 날. 아침을 안 먹고 와 배고프던 찰나, 친구가 초콜릿우유를 사 왔다며 하나를 건네던 날.


 문득 중학생 때의 국어 선생님이 그리워졌다. 국어 시간에 쓴 내 시를 칭찬해 주셨던 선생님. 작은 인정과 칭찬에도 울렁거리는 미숙한 중학생이었던 나에게 그것은 많은 것을 의미했다. 선생님께서 내 시를 인정해 주신 그날부터 글에 대한 나의 관심이 시작되다. 날씨가 좋은 날에는 굳이 교실에서 수업할 필요는 없다며 우리를 밖으로 데리고 나오셨던 선생님. 선생님 덕에 나의 중학생 시절의 추억은 더 다채로워졌다. 독후감 쓰기 대회를 앞둔 나를 위해, 하교 후에 1대 1 수업을 해주셨던 선생님. 선생님 덕에 어떻게 서론과 결론을 작성해야 하는지 배우게 되었다. 일명 '개똥철학'이라고 칭하시며 조금은 아련한 표정으로 당신의 삶의 철학에 대해 이야기하시던 선생님. 선생님으로 인해 인생과 삶의 의미를 미숙하게나마 이해하게 되었다. 중학생 때 선생님을 만난 덕에 나는 문학을 사랑하게 되었다. 지식을 꾸역꾸역 머릿속에 쑤셔 넣던 고등학교 3학년 때도 국어 문제 지문으로 등장하는 짧은 문학 토막에 웃고 울었으며, 대학교 공강 시간에도 틈만 나면 도서관에 들러 읽고 싶은 책들을 고르곤 했다. 지금도 내 머리맡에는 늘 한 두 권의 책이 함께하며 책 읽기를 사랑한다.


 교육청에 '스승 찾기 서비스'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가장 먼저 그 선생님이 떠올랐다. 옛날에는 스승 찾기 서비스를 통해 찾는 스승의 현 학교를 조회할 수 있었다지만, 개인정보 등의 다양한 문제들이 대두되며 이제는 스승 찾기 서비스의 과정이 달라졌다. 스승을 찾고자 하는 옛 제자가 자신의 이름과 번호를 교육청 측에 제공하면, 교육청 측에서 해당 선생님께 옛 제자의 이름과 번호를 전달하는 시스템이다. 단, 찾고자 하는 선생님께서 현직으로 계셔야 하며, 선생님께서 원하시는 경우에만 선생님께서 직접 학생에게 연락을 주시는 방식이다.


 스승 찾기 서비스를 신청하고, 찾고자 하는 선생님, 나의 이름과 연락처를 교육청의 카카오톡으로 전송한 후에도 반신반의했다. 10년도 지난 지금, 선생님께서 여전히 교직에 계실지도 의문이었지만, 무엇보다 선생님께서 과연 나에게 연락을 주실지도 확신할 수 없었다. 선생님께서는 1년에도 몇 백 명이 되는 제자를 만났을 것이며, 교직에서 생활하신 기간이 누적되는 만큼 스쳐간 제자들이 많을 것이다. 선생님께서 나를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고 해도 놀랍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선생님과 연락이 닿는다면, 선생님께서 얼마나 나에게 감사한 분인지 전해드리고 싶었다. 옛 제자인 나는 선생님을 여전히 추억하며, 그 추억은 너무나도 따스하고 소중하다고. 선생님으로 인해 나는 문학을 사랑하게 되었다고. 선생님께서 주신 관심은 나를 더 나은 사람으로 성장시켰다고.


 늦은 저녁을 먹던 어제저녁, 우연히 문자를 확인하고 함성을 질렀다. '대박!' 내가 찾던 그 선생님께서 문자를 남기셨던 것이다. 짧은 문자였지만, 나를 글쓰기를 좋아했던 제자로 기억하고 계시며, 이렇게 찾아주어서 고맙다는 내용이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잠에 들고 오늘 아침, 조금은 긴 카카오톡을 써 내려갔다. 현재 교직 생활을 시작했으며, 교직에 있다 보니 선생님이 떠오르곤 하며, 선생님 덕에 문학을 사랑하게 되었다는 소소한 내용이지만, 정말 진심으로 꼭꼭 채운 카카오톡이었다.  선생님께서도 긴 답변을 보내주셨다. 선생님께서는 내가 훌륭한 어른으로 자랄 것을 믿고 계셨다고 하시며, 아직도 내가 스승의 날에 썼던 편지가 집에 보관되어 있다고 하셨다. 선생님께서는 현재 교감 선생님으로 근무하고 계신다고 하셨다.

 

 선생님의 연락 탓인지, 하루종일 웃음이 입가에 머물렀다. 항상 마음속으로만 잘 지내기 바라셨던 선생님께서 정말로 선생님께서 잘 지내고 계셔서, 그리고 행복하셔서, 나를 기억해 주셔서, 나를 응원해 주셔서. 사실 제자로서 더 멋지게 성장해서 선생님께 나타나고 싶었고, 은혜도 갚고 싶었지만, 그저 평범하게 등장해서 조금 머쓱하기도 했지만. 선생님께서 나중에 교장 선생님으로 발령나신 다면, 유년시절의 그 감사함을 집약하여 그 학교에 떡을 보내고 싶은 마음도 든다. 선생님께서 옛 제자의 인생에서 오래도록 기억되는, 너무나도 멋지고 따스하신 분이라는 걸 선생님께서 근무하시는 학교의 선생님들도 알아주시면 참 좋을 텐데.


 선생님께서 해주신 칭찬으로, 문학을 사랑하게 된 것처럼, 나도 주변인들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는 사람이 되고자 한다. 사소한 것이라도, 혹은 그 사람들에 대한 오랜 관찰이 선행되어야 할지라도. 칭찬은 관심 없이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기에. 오늘도 주변에 따스한 관심을 놓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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