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깨가 움추러 든 사회 초년생의 이야기
봄이다. 좀처럼 물러나지 않을 것만 같았던 겨울 추위는 비실비실 힘을 잃었고, 새 생명의 기운이 공기 중에 만개한다. 살랑살랑 코끝을 간질이는 봄바람은 사람들의 마음도 살며시 들뜨게 한다. 길가의 행인들의 어깨도 부풀어 올라 봄의 산뜻한 기운을 만끽하는 듯하다. 3월의 새 학기를 무수히 지낸 사람으로서 봄과 새학기는 실과 바늘처럼 나의 사고 회로에 깊숙이 연결되어 박혀있다. 봄의 따사로움이 볼을 부벼올 때, 새로운 시작을 점지하는 그 계절이 턱을 들어올려 정면을 바라보게 할 때, 역설적이게도 나는 과거로의 시간여행을 시작한다.
갓 초등학교 2학년으로 올라왔을 때였던가. 새 학년 반편성 결과를 마주한 나는 실망을 감출 수 없었다. 얼기설기 엮인 담쟁이 넝쿨처럼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과 반이 모조리 갈라지고 말았다. 그 나이의 아이들에게 학교란, 비단 공부하러 가는 곳이 아니라 친구들과 놀기 위해 가는 곳이었기에 이는 분명히 청천벽력같은 소식이었다. 그러나 시무룩함도 잠시, 어린아이 특유의 말랑한 회복 탄력성으로 나는 금새 씩 미소지었다. ‘이 기회에 새로운 친구들이나 잔뜩 사귀고 말지.’ 싶었다. 여느 아이들처럼 새로움에 대한 두려움보단 호기심, 기대감이 많은 시기였다. 콘크리트 냄새가 나는 새 교실로 들어가 주위를 탐색했다. 누가 나의 새로운 친구가 될것인가, 사냥감을 물색하는 민첩한 사냥개처럼 두리번거렸다.
그 중 내 눈에 띄는 아이가 있었다. 다른 친구들 사이에서 줄곧 호탕하게 웃던 그 아이는 피부는 흑진주처럼 그을려있었고, 힐긋힐긋 보이는 새하얀 치아는 피부색과 유난히 대비되어 보였다. 건강하게 그을린 피부는 특유의 호탕함을 더욱 돋보이게 했다. 빨간색 티셔츠 사이에서 길게 뻗어있는 탄탄한 팔은 그 아이의 팔팔한 생명력을 뒷받침하는듯 했다. 철로 된 사물이 자석에 속절없이 이끌리듯 그 아이의 유쾌한 에너지에 나도 모르게 이끌렸다.
그 아이와 친구가 되고 싶었다. 별다른 망설임도 없이 책가방을 뒤져 손바닥에 쏙 들어오는 학종이를 꺼냈다. 학종이에 편지를 썼다. 두말할 것 없이 그 아이에게 보내는 편지였다. 시간이 너무나 흘러 세세한 내용까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대충 ‘너랑 친구가 되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학종이에 편지를 꾹꾹 눌러쓰고, 여러 번 접은 후 그 아이에게 건넸다. 그 아이와 나는 곧바로 친구가 되었다. 별다른 어색함이나 흔한 정적도 없이, 놀이터에서 몇 번 정도 경찰과 도둑을 했던 사이처럼 자연스레 어울리게 되었다.
여느 아이들이 그러하듯 그 아이와 친구가 되어 그 또래의 꼬마들이 할법한 우정을 나눴다. 그 아이의 생일파티에 초대되어 피자를 뜯어 먹고, 하교 후 놀이터 모래 바닥에 가방을 집어 던진 채 머리가 띵해질 때까지 지구의를 돌리고, 오백 원 정도를 쥐고 문구점에서 과자를 사 나눠 먹는 단순명료한 우정. 다음 해에 반이 달라지자 그 아이와는 자연스레 서서히 멀어졌다. 초등학교 시절, 서로의 삶을 가벼이 스쳐 지나가는 가뿐한 동네 친구였던 그 아이가 이 나이까지 생각나는 원인은 그 아이에게 있기보다 나에게 있다.
새로운 환경에 덩그러니 놓여도 겁먹지 않고 막연한 기대를 가지고 주변을 탐색했던 용감했던 나. 상처받기 전의 어린아이였기에 두렵지 않았던 나. 친해지고 싶은 사람이 생기면 이 사람이 나랑 잘 맞을지 힐끔 간 보기보다 돌진해서 말을 건넬 줄 알았던 나. 때 묻지 않아서 순수했고 용기 있었던 어린 내가 그리워진다. 숱한 망설임 없이 새 친구에게 먼저 손을 내밀곤 했던 나.
지금의 나는 낯선 환경에 놓이면 덜컥 겁이 나고, 때로는 사람이 무서워 자꾸만 숨고 싶어진다. 누군가를 만나면 덜컥 손을 내밀기보다 의심의 눈초리로 경계부터 한다. 내가 상대방에게 받아들여질지, 우리는 서로 잘 맞을지 걱정이 앞선다. 지구의 모든 이들이 내 마음과 같지 않다는 건 자명한 이치이기에 부딪히고 상처받을 수 있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떨쳐 내야 할 텐데. 혹여 상처 받더라도 손바닥에 달라붙은 먼지 털어내듯 가볍게 털어 낼 수 있어야 할텐데. 지금의 나는 거절 당하는 것도, 상처받는 것도 무서워서 손 내밀지 못한다. 주머니에 부끄러운 손을 집어넣은 채 거스러미만 손끝으로 뜯어댄다. 사회 초년생이라는 너무나도 연약하고, 어느 환경에서든 을의 위치-혹은 병의 위치-에 놓여 있기에 주눅 든 표정과 몸짓은 기본 설정값이 되고야 말았다.
언젠가는 어린 시절의 그 해맑음과 용기를 되찾을 수 있을까. 환대받을 수 있을지, 수용될 수 있을지에 대한 망설임이나 두려움 없이 그저 사뿐한 몸짓과 표정으로 낯선 상대에게 싱긋 웃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