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형태에 대한 고찰
“나중에 우리 결혼하고 나서도 지금처럼 다정하게 대해 줄 거야?” 대화의 화두에 결혼 이야기가 등장할 때마다 그는 이 질문을 덧붙이곤 한다. 내가 그에게 보이는 상냥한 말씨와 다정한 행위들이 결혼과 동시에 휘발될까 두렵나 보다. 결혼으로 인해 서로가 익숙해지고 당연해지다가 결국엔 서로에게 상처를 줄지도 모른다는 걱정에 사로잡히곤 하는 듯하다. 그때마다 나는 씩 웃으며 그와 눈을 맞춘다. 아이처럼 부드러운 그의 볼을 손가락으로 만지작거리며 그를 안심시킨다.
“당연하지. 결혼하고 나면 자긴 평생을 나랑 함께 할 거잖아. 나는 나와 여생을 보낼 사람이 행복하면 좋겠어. 그래야 나도 행복할 수 있을 테니까. 자기가 평생 웃을 수 있도록 내가 더 노력할 거야.” 매번 똑같은 질문에 응수하는 똑같은 대답을 거듭 듣고 나서야 그는 안심된다는 듯 화기를 띤다. 싱긋 웃는 그의 얼굴이 어린아이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와 나는 거의 6년이라는 시간을 꽉 채워 만났다. 우리는 스물하나, 스물두 살에 갓 접어든 싱그러운 봄에 처음 만났다.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처음 마주한 스물하나의 그는 소년의 티가 역력했다. 그는 나이프로 스테이크를 썰어 꾸역꾸역 입에 밀어 넣었다. 스테이크를 욱여넣으며 긴장한 기색을 감추어 보려 했겠지만 그런 행위마저 오히려 그를 더욱 어설퍼 보이게 했다. 인연은 인연이었는지 그런 어설픈 모습마저 귀엽게 느껴졌다. 몇 번의 만남 끝에 그와 나는 우리로 발전했다. 스물하나, 스물두 살의 우리는 잃어버렸던 반쪽을 찾은 것처럼 틈만 나면 붙어 있었다. 며칠을 연달아 만나도 서로를 더욱 애달파했다.
대학생이었던 우리의 풋풋했던 추억을 기억한다. 교생 실습을 마치고 피곤한 몸을 이끌고 기숙사로 돌아가려는데 기숙사 앞에서 도시락을 들고 기다리고 있던 다정했던 그의 모습을. 학교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대뜸 마카롱과 꽃다발을 안겨주던 달콤했던 그의 모습을. 학교 주변을 흐르는 작은 천을 따라 걸으며 서로의 지난 인생에 대해 길고 긴 대화를 나누었던 밤들을. 5년 후에도 우리가 여전히 함께일지 궁금해하며 서로의 마음이 변치 않길 은근히 기도했던 새벽녘을. 그의 군입대 날짜가 나왔을 때 얼싸안고 울었던 날 그리고 평소보다 뜨거웠던 그의 체온을.
그가 군 복무를 이행하는 동안 나는 정신없이 졸업을 준비했고 대학을 졸업했다. 코로나 탓에 졸업식이 취소되어 남은 건 졸업장뿐이었던 조촐했던 졸업. 슬프게도 나는 임용고시에 낙방하여 1년을 더 공부했다. 그가 전역할 때 즈음 나는 임용고시 재수를 마쳤고-임용고시 재수는 다행히도 성공적이었다- 우리는 거의 동시에 자유의 몸이 되었다. 타이밍마저 우리 편이라며, 어떻게 이렇게 동시에 자유의 몸이 되냐며, 이게 인연이 아니면 뭐냐며 함께 손을 맞잡고 기뻐했다.
시간은 끊임없이 흘렀고, 어느새 우리는 대학생 커플이 아닌 직장인 커플이 되었다. 대학생 때 우리의 연애가 열정으로 타오르는 붉은빛을 띠었다면 직장인이 된 우리의 연애는 한결 더 여유로워지고 잔잔한 물빛을 띠게 되었다. 대학생 때만큼의 시간적 여유가 허락되지 않아 오래 붙어 있지는 못하더라도 몇 년 동안 차곡차곡 쌓인 신뢰와 애정을 믿기에 관계를 불안해하지 않는다. 우리의 관계는 달팽이가 언덕을 오르듯 느릿느릿 나아가고 있으며 물가의 바위가 흐르는 물에 천천히 깎여나가듯 원만해지고 있다. 서로를 바라보면 겨울에 정전기가 통하듯 짜릿한 무언가가 통하지는 않더라도 가끔은 가슴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올라와 목구멍에 걸리듯 울컥한 무언의 감정에 코가 얼얼해진다.
온전하지 않은 이 지상에 영원불변한 것은 없다. 당장이라도 100년 전에 찍힌 사진들을 인터넷에 검색해 보라. 세상이 얼마나 많이 변했는지, 천지개벽했다는 말이 절로 나올 것이다. 가시적인 것은 물론이며 눈에 보이지 않는 요소들마저 끊임없이 변화한다.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은 변화해 왔으며 앞으로도 변할 것이라는 영원불변의 법칙을 마음 깊숙이 받아들이고 현재의 것들에 대한 집착을 놓을 수 있을 때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다. 이는 불교의 핵심 원리이기도 하다.
그와 나의 사랑도 그러하리라. 작은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는 것만으로도 자극적이었던 만남은 커피를 홀짝이며 나눠 마시며 도란도란 일상 이야기를 나누는 잔잔한 만남이 되었듯이. 미래에 대한 기대로 가득 찼던 대화 주제가 부동산, 여행 같은 현실에 맞닿은 대화 주제가 되었듯이. 그에 대한 나의 감정이 설렘과 떨림, 가끔은 한 명이라도 손을 놓아버리면 끝날 관계라는 불안감이었다면 이제는 그 감정이 편안함과 아늑함 그리고 믿음으로 바뀌었듯이. 계절이 지나고 추억이 쌓이며 우리 관계의 질감은 더 도톰해지고 향은 더 짙어지리라.
우리의 사랑의 방식과 형태가 변하더라도 우리의 사랑이 퇴색이나 부패가 아니었으면 한다. 세월이 지나며 와인의 맛과 향이 짙어지듯이 우리의 사랑도 성숙하며 고혹한 향기를 머금길 소망한다. 서로에 대한 신뢰와 애정 그리고 배려가 가득한 토양에서 무럭무럭 자라나는 나무처럼 우리의 사랑은 변한다기보다 자라난다는 수식어가 더 어울리는 관계가 되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