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멈췄던 시간, 그리고 다시 쓰기까지
‘나는 왜 글을 쓰는 것인가.’
이 원론적이면서도 담백한 질문은 오히려 나를 글에서 멀어지게 했다.
글쓰기의 본질에 대해 고민하다가, 스스로 제풀에 꺾여 떨어져 나왔다고 해야 할까.
누가 관심 있게 읽어주는 것도 아닌 것 같고,
그렇다고 내 글솜씨가 독자를 사로잡을 만큼 특별한 것도 아니었다.
이 정도의 글을 누군가 읽어주길 바라는 마음마저 염치없게 느껴졌고,
그게 부끄러웠다.
그럼에도 욕심은 있었다.
비루한 실력임에도 불구하고, 글을 통해 누군가와 소통하고 싶다는 욕망.
그래서 나는 남들이 ‘읽을만한’, 그럴듯한 글을 쓰고 싶었다.
남을 위한 글도, 나만을 위한 글도 아닌 그 어딘가, 애매한 경계에서
어정쩡한 진심을 담은 채 글을 이어갔다.
차라리 아무도 읽지 않는다는 전제로 쓰는 일기였다면
이런 권태는 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랬다면 나는 오롯이 나를 마주하는 공간에서,
속에 눌러 담았던 찌꺼기 같은 생각들을 자유롭게 휘저어 건져 올렸을 것이다.
나를 괴롭게 했던 사람들에 대한 분노도,
내 안에 고여 있던 감정들도
거침없이 쏟아내며 손끝에 가벼움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브런치라는 플랫폼에서,
익명의 누군가에게 읽히길 바라는 마음으로 쓴 글은
어느새 나조차 솔직해지지 못한 글이 되어버렸다.
글을 쓰며 마음을 털어내는 듯했지만,
내 손가락은 오히려 더 무거워졌다.
그렇게 허무감과 목적 상실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그리고 한 달 넘게, 한 글자도 쓰지 못했다.
책은 계속 읽었지만,
내 안에서 단 하나의 문장도 꺼내고 싶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이불속에서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다
친구의 블로그 글을 우연히 읽었다.
‘서로이웃공개’로 설정된 그 글은
직장 일이 힘들어 스스로 토스트를 만들어 먹었다는
작고 단순한 이야기였다.
귀엽게도 친구가 만든 토스트 사진까지 첨부되어 있었다.
햄, 치즈, 양배추를 차곡차곡 쌓고
커피 한 잔과 함께 먹는 그 장면이
읽는 내내 머릿속에 선명하게 그려졌다.
그 글은 분명 친구가 자신의 일상을 소중한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서 쓴 것이었을 텐데,
그 순간 그 글은 내 마음을 따뜻하게 건드렸다.
짧고 담백한 그 글 한 편이,
다시 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을 되살려줬다.
그리고 나는 오랜만에 노트북 앞에 앉았다.
더 이상 내 재능 없음에 괴로워하지 않기로 했다.
누군가 내 글을 읽어준다면 고맙고,
그렇지 않더라도 나는 내가 살아낸 삶의 조각들을
담담히 남기려 한다.
예전처럼 익명의 독자들을 의식하며
섀도복싱 같은 글을 쓰는 대신,
소중한 친구에게 오늘 있었던 일을 조잘거리듯
어깨에 힘을 빼고, 조금 더 나답게.
잘 쓰는 것보다
진심을 담는 쪽으로.
쉴 새 없이 흘러가는 내 삶을
가만히 붙들어 정리하고,
그 순간을 소중히 기억하기 위해
다시 글을 쓴다.